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세한도
  • 등록일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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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세한도



<자막>

 국보 제180호, 불세출의 명작 세한도입니다. 세한도는 돌아가신 손세기 선생님이 1970년대부터 소장하셨고 장남 손창근 선생님이 소중하게 간직하시다가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하셨습니다.

 똑똑하고 총명했던 명문가의 자제 김정희는 반대 세력인 안동 김문의 모함으로 55세 때 억울하게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유배형 중에서도 가장 엄중한 절해고도 위리안치입니다. 즉, 멀리 떨어진 섬에서 가족이 함께 갈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감금형에 처해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유배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기한이 없습니다. 3년이 지나도 김정희에게 아무런 소식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정희를 사형에 처하라는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죄인 김정희를 변함없이 대하는 제자가 있었는데요, 바로 중국어 통역관 이상적이었습니다. 이상적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을 제주의 김정희에게 줄곧 보내주었습니다. 

책, 김정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는 늘 책에서 학문과 예술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또한 유배 중인 그에게 책은 고독을 달래주는 친구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김정희는 이상적에 변치 않은 의리를 공자님 말씀을 담은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는 유명한 구절에 빗대어 칭찬하고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세한’은 한겨울 추운 날씨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뜻입니다. 그림 왼쪽에 종이를 이어 네모 칸을 친 부분에 이 그림을 왜 그리게 되었는지를 강하고 굳센 필치로 상세히 적었습니다.

김정희는 이 구절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을까요?
 둥근 문이 있는 허름한 집 좌우로 소나무 두 그루, 측백나무 두 그루를 세워놓았습니다. 쉽게 쓱 그린 그림처럼 보이시나요?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나무줄기와 잎을 표현한 메마르면서 촘촘한 필치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칼칼하게 표현했습니다.

 언뜻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마른 붓을 다루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 필법은 김정희가 오랫동안 갈고닦아 이루어낸 필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김정희는 메마르고 황량한 세한, 가장 추운 겨울날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가장 어울리는 필법을 찾아낸 것이지요. 

 이 그림은 조선시대 그림으로는 드물게 제목과 제작 동기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 ‘세한도’라는 제목을 적고, 이어서 “우선 보시게나. 완당”이라고 써서 자신이 이상적을 위해 그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아래에 ‘정희’라고 찍힌 인장이 있습니다. 김정희는 평소 다양한 인장을 즐겨 사용했는데요, <세한도>에도 4개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정희’ 외에도 호를 새긴 ‘완당’과 ‘추사’ 인장이 있고, 시구를 쓴 ‘장무상망’이 찍혀 있습니다.

 이중 가장 주목할 것은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장무상망’입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의미인데, 김정희는 바로 이 마음을 담아 인장을 꾹 찍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김정희는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제목, 소재, 필법, 인장으로 치밀하게 <세한도>를 완성했습니다. <세한도>가 뜻과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인화 중에서 최고라고 평가 받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상적은 일곱 번째로 떠나는 중국 출장길에 <세한도>를 소중히 챙겨갔습니다. 그리고 평소 친하게 지냈던 청나라 문인이 주최한 모임에서 <세한도>를 꺼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여하거나, 또는 그 그림을 본 청나라 문인 열여섯 명이 감상 글을 적었는데요. 그 글이 세안도 두루마리 중 세 번째 부분에 해당합니다.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준 <세한도>는 이후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이 소장하다가, 그의 아들인 김준학에게 전해졌습니다. 김준학은 오랫동안 앓다가 쾌차한 것을 기념해서 1914년에 ‘완당세한도’라고 쓰고 시를 지었습니다. 그 종이가 김정희의 <세한도> 앞에 붙어 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세한도가 제작된 지 100년이 지난 1944년에 손재형은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에게 <세한도>를 돌려받았습니다. 광복 후 1949년, 손재형은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정인보, 이시영, 오세창에게 <세한도>에 감상 글을 청했습니다.

 <세한도> 두루마리에는 빈 곳이 많습니다. 손재형은 더 많은 글을 받고자 했을 것입니다. 손재형이 채우지 못한 이 공간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한번 채워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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