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나팔모양 술잔[觚, Gu]   : 오세은

나팔모양 술잔[觚, Gu]은 중국 상(商) 왕조부터 서주(西周) 왕조 초기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한자로 미루어 볼 때 본래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骨角器]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대부분 청동기로 제작되었고 간혹 토기도 발견됩니다. 위로 향한 나팔모양 입부분과 외관으로는 가늠되지 않지만 높은 굽다리, 가늘고 긴 원형의 몸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혹 방형(方形)으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나팔모양 술잔[觚], 중국 상 말기, 높이 30.5㎝, 입지름 16.0㎝, 바닥지름 8.8㎝, 구3335

나팔모양 술잔[觚], 중국 상 말기, 높이 30.5㎝, 입지름 16.0㎝, 바닥지름 8.8㎝, 구3335

나팔모양 술잔의 용도와 사용 기간

 세발 술잔[爵, Jue], 높이 18.2㎝, 접수289,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세발 술잔[爵, Jue], 높이 18.2㎝,
접수289,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나팔모양 술잔은 기원전 16세기 중국 상 왕조 초기부터 제작되었습니다. 상대 말기 은허(殷墟) 지역 무덤에서 나팔모양 술잔과 세발 술잔[爵, Jue], 세발 술그릇[斝, Jia]이 각 2개씩 쌍으로 출토되어 주기(酒器)가 당시 고기 삶는 세발 솥[鼎, Ding]·곡식 담는 그릇[簋, Gui]과 함께 중요한 청동예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예기(靑銅禮器)는 중국 상주시기(商周時期)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기(祭器)를 말합니다. 또한 1984년 중국 문물출판사에서 출간된 『은주청동기통론(殷周靑銅器通論)』에 「따뜻한 술은 작(爵)에 마시고 그렇지 않은 술은 고(觚)에 마셨다. (如需溫酒而飮則用爵, 不需溫酒而飮則用觚.)」라고 있어 당시 실제로 술을 데우고 마실 때 사용한 그릇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팔모양 술잔은 서주시대(西周時代)에 수량이 갑자기 감소하며 중기(中期) 이후 홀연히 자취를 감춥니다. 이는 서주 사람들은 상왕조가 술로 망했다고 생각하여 절주(節酒)를 하고 예기(禮器) 제작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팔모양 청동술잔의 기형 변화

활비비를 이용한 구멍 뚫기(출처: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송국리』, 2017)

1. 나팔모양 술잔[觚], 중국 상 초기, 중국 안후이성박물관[安徽省博物館] 소장
2. 나팔모양 술잔[觚], 중국 상 말기, 높이 25.5, 입지름 15.0cm, 신수142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 나팔모양 술잔[觚], 중국 상 말기, 높이 30.5, 입지름16.0cm, 구333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 나팔모양 술잔의 상단부 파초잎무늬 탁본, 구333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5. 나팔모양 술잔[觚] 중간마디의 도철문, 구333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6. 나팔모양 술잔[觚], 중국 서주 초기, 높이 30.5cm, 접수150,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7. 굽다리 술잔[觶], 중국 서주 초기, 높이 11.2cm, 접수477,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나팔모양 술잔의 초기 모양은 그림 1처럼 목 부분에서 입으로 벌어지는 경도가 비교적 완만하고 중간 마디는 하단부에 치우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말기에는 점차 기형이 길고 가늘어 지며 입부분이 바깥방향으로 크게 벌어져 전체적으로 나팔모양에 한층 더 가까워집니다. 또한 나팔모양 술잔은 상대 말기 두 가지 형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나는 그림 2와 같이 전체 높이는 앞 시기와 비슷하나 중간 마디가 위쪽으로 올라옵니다. 일반적으로 중간 부분과 굽다리에만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초기에 제작된 나팔모양 술잔과 차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형태는 그림 3과 같이 전체길이가 길어지고 목 부분과 중간 마디, 굽다리에 모두 문양이 새겨 지는 경우입니다. 특히 목 부분에 파초잎무늬가 위쪽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어 기형의 곡선미아 멋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그림 4) 중간 마디와 굽다리에는 네 개의 세로돌기[扉棱]가 있어 구역을 나누고 그 사이에 도철무늬[饕餮文: 청동기에 새겨진 괴수문(怪獸文), 수면문(獸面文)의 일종]를 새겨 넣었습니다.(그림 5) 또한, 앞 시기의 것보다 하단에 굽이 있어 듬직하고 견고해 보이며 안정성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림 6과 같이 서주(西周) 초기(初期)에 제작된 나팔모양 술잔은 입 부분이 굽다리 넓이에 비해 넓어지고 문양도 단순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과장되게 넓어진 입부분과 한없이 몸통은 얇아져 술을 많이 담지 못하게 되었고, 서주 중기 이후에는 굽다리 술잔[觶, Zhi]을 대신 사용하게 됩니다. (그림 7)

나팔모양 술잔의 명칭 유래와 후대 사용

나팔모양 술잔의 '고'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송대(宋代)에 집필된 『고고도 권오(考古圖卷5)』에서입니다. 여기에 ‘노강이씨(盧江李氏) 소장 고(觚)는 작(爵)의 용량의 2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송대 이후 상주 시기의 청동기를 모방하여 제작한 방제고동기(倣製古銅器)가 유행합니다.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에 나팔모양 술잔에 꽃을 꽂아 가구 위에 올려놓은 화면이 자주 등장하여 꽃병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팔모양 술잔에 새겨진 금문(金文)

나팔모양 술잔(구3335) 굽다리에 새겨진 금문

나팔모양 술잔(구3335) 굽다리에 새겨진 금문

나팔모양 술잔의 굽다리 안쪽에는 부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부호는 상대 말기 가족이나 혈연관계에 있는 씨족의 성씨를 아자형(亞字形)과 결합하여 새겨 넣은 금문(金文)입니다. 이러한 금문은 상대 초기부터 청동기에 새겨지기 시작하였으며, 상대 말기부터는 대부분 해석이 가능한, 한자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합니다. 이 금문은 청동기 주조 시 함께 새겨져 새김선이 매우 투박하지만, 금문이 새겨진 방식, 글자체, 문양 등으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같은 상대(商代) 금문은 서주시대에 역사적 사실이나 당시의 관제, 군사제도 등 사회적 상황을 기록한 장편의 문장으로 발전하며, 진대(秦代)에 문자를 통일하고 한자(漢字)를 완성하는데 기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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