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선세도 - 조상들의 초상화 : 박성혜

<선세도>, 중국 청, 비단에 채색, 287.7×168.4㎝, 구4993

<선세도>, 중국 청, 비단에 채색, 287.7×168.4㎝, 구4993

조상 숭배를 위한 초상화

중국 고대 초상화는 남북조시대의 무덤 벽화에 그려진 주인공의 초상처럼 죽은 자를 기록하기 위해 그리거나, 당나라 엽립본(閻立本, 600~673추정)의 <역대제왕도>같이 훌륭한 업적을 남긴 황제는 물론이고 나라를 망친 무능한 황제의 초상까지 교훈적인 목적으로 그리면서 발달하였습니다.
이렇듯 기록과 교훈적인 목적 외에 중국에서 초상화가 발달한 것은 유교의 영향으로 조상 숭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무덤에 묻고, 사당을 세워 목판에 이름을 적은 신주(神主)를 모셔 섬기는 관습이 있습니다. 신주에는 조상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보통 4대에 걸쳐 100년간 모시며, 제례 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불교조각, 불화 등 인체 표현에 기초한 불교미술이 발전하였고, 중국에서 불교는 조상 숭배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둔 ‘효’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불교 사찰에 부모의 초상을 모셔 제의(祭儀)를 지내는 것이 널리 성행하였고, 유교에서도 ‘신주’ 대신 사실적으로 그려진 초상화를 모시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초상화는 조상 숭배 제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대의 조상을 군상으로 묘사한 선세도

중국에서는 조상 숭배를 위해 여러 대에 걸친 인물들을 한 화면에 묘사하여 제작한 선세도(先世圖)가 유행하였습니다. 대도(代圖), 절좌(節坐), 선세도상(先世圖像), 제조종보(祭祖宗譜) 등으로 불리는 이 독특한 형식의 초상화는 적게는 네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조상들을 커다란 화면에 가득 그리기도 합니다. 현재 전해지는 선세도는 대부분 청대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산서(山西) 지방에서 크게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형식의 선세도 초상을 제작한 이유는 조상 한 명마다 초상화를 한 폭씩 제작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와는 달리 대대로 번창한 집안임을 과시하려는 후손의 의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대개 후대에 한꺼번에 그린 것이기에 개별 인물의 특성은 잘 표현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혈연 관계임을 강조하듯 얼굴이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조상과 후손들을 마치 단체 사진처럼 한 폭의 그림에 표현한 것은 매우 특이한 발상입니다. 핏줄로 맺어진 집안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적이고 엄숙한 초상화

선세도에는 대부분 낙관이 되어 있지 않아서 언제 누가 그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대개 직업화가가 그렸으나 화가에 대한 정보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 제작 기법이나 양식적 변화를 파악하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문인화가와 직업화가 사이의 구분이 뚜렷했고, 문인화가들이 초상화를 즐겨 그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초상화 이론이나 방법론은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등 다른 회화 장르에 비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정적인 분위기로, 얼굴 표정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움직임이나 몸짓도 거의 없게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초상화는 왜 엄숙한 분위기에 정적으로 그렸을까요? 이는 초상화의 기능과 관련이 있습니다.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 제작된 초상화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에 후손들은 그 앞에서 경의를 표했으며, 초상 자체가 주술적인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불교나 도교의 신상처럼 근엄하고 엄숙한 형상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선세도에 등장하는 각종 기물과 복식

선세도에는 대개 인물 주변과 배경에 다양한 물건과 가구들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주인공들의 실제 생활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생전에는 사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소유할 수 없었던 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복식도 평상복이 아닌 관복이나 예복을 입고 있으며, 평민이 문관 관복을 입은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품계를 나타내는 흉배는 대개 생전의 지위보다 높은 것으로 올려서 그렸다고 합니다. 이는 선세화의 목적이 현실의 조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후의 조상을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현세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후세계에서 복을 누리도록 복식이나 기물을 갖추어 드림으로써 죽은 조상에 대한 예우를 더하고 동시에 후손의 효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선세도 자세히 살펴보기

이 초상화는 대형 가계 초상으로, 인물들이 3단에 걸쳐 배치되었습니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7명으로 화면 왼쪽에 여자 8명, 오른쪽에 남자 7명을 그렸고, 시녀와 시자(侍者)를 좌우에 각각 1명씩 그렸습니다. 화면 맨 위에는 10폭의 산수도 병풍이 펼쳐져 있는데 10폭 중에서 가운데 6폭에는 수묵산수화가 그려져 있고, 2폭은 접혀서 보이지 않으며 좌, 우측의 맨 가장자리 화폭에는 국화와 대나무 그림이 있습니다. 화면 왼쪽에 그려진 시녀는 두 손으로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불수감(佛手柑)과 복숭아가 놓인 붉은 쟁반을 들고 있고, 오른쪽의 시자는 고상한 취향을 표현하는 찻잔이 놓인 붉은 쟁반을 들고 있습니다.

<선세도>의 병풍과 화병 세부

<선세도>의 병풍과 화병 세부


병풍 바로 앞 제단 중앙에는 ‘역대선조신주(歷代先祖神主)’라고 적힌 신주가 있고 그 좌우로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 화병이 있습니다. 그 앞쪽의 또 다른 제단에는 향로와 2개의 바구니에 불수감과 과일이 놓여 있으며, 좌측에 청고현고비신주(淸故顯高妣神主), 청고현증비신주(淸故顯曾妣神主)라고 적혀있는 신주가, 우측에 청고현고조신주(淸故顯高祖神主), 청고현증조신주(淸故顯曾祖神主)라고 적힌 신주가 놓여 있습니다.
인물의 얼굴 표현은 엷은 먹선으로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 주름살 등을 그린 후 선을 따라 옅은 채색으로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살렸습니다. 눈썹과 수염은 바탕을 옅은 먹으로 선염(渲染)하고 그 위에 세필로 가늘게 한 올씩 그렸습니다. 옷 주름도 먹선으로 처리하고, 주름 안쪽 선을 따라 음영을 넣어 입체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 같은 초상화 기법은 중국 명대부터 많이 나타나며, 이 그림은 청대 초상화에 명대의 화법을 반영하여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 8명의 여성 인물들은 손과 발이 모두 옷으로 가려져 있는 반면, 7명의 남성 인물들은 손과 신발이 드러나게 그려 당시 남녀 신체 노출에 대한 차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세도>의 여성 인물 표현 <선세도>의 여성 인물 표현

 <선세도>의 남성 인물 표현 <선세도>의 남성 인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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