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우마(Umā) -자애로운 여신의 미소 : 노남희

우마,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13세기, 사암, 높이 82.0cm, 구4431 <br/>                             힌두교에서 시바신의 배우자인 우마를 표현한 여신상입니다. 미소를 머금은 부드러운 얼굴과 정면을 향한 자세가 빚어내는 절제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압권입니다.

우마,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13세기, 사암, 높이 82.0cm, 구4431
힌두교에서 시바신의 배우자인 우마를 표현한 여신상입니다. 미소를 머금은 부드러운 얼굴과 정면을 향한 자세가 빚어내는 절제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압권입니다.

흔히 힌두교에는 3만 3천 종류의 신이 있다고들 합니다. 여성신, 남성신, 동물신은 물론 여러 속성이 합쳐진 신, 자연물을 형상화한 신, 심지어 특정한 신의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실로 놀라울 만큼 다양한 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힌두교에서는 신을 ‘눈으로 본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신앙 행위이므로, 숭배 대상인 신을 실물의 ‘상(像)’으로 만드는 것은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힌두교가 전해진 곳에서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다양한 신상(神像)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조각상도 그런 힌두 신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멋진 상입니다.

고요한 분위기와 절제미의 조화

이 조각상은 13세기 무렵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떨쳤던 크메르 제국(Khmer Empire)에서 만들어진 ‘우마(Umā)’ 상입니다. 우마는 힌두교에서 시바(Śiva)신의 배우자가 되는 여신으로, 특히 남편인 시바신의 자애롭고 철학적인 면모를 나타낸 여신입니다. 파르바티(Pārvatī)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우마는 시바신의 여러 배우자들 중에서도 이상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하였기 때문에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상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먼저 몸을 살펴보면 상체가 완전한 나신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아담하지만 분명하게 솟아오른 가슴과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는 이 상이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것임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체에는 삼포트(sampot)라고 부르는 긴 치마를 입고 있으며, 치마 한가운데에는 갈고리 같은 모양이 있습니다. 이것은 치마를 착용할 때 접어서 앞으로 낸 주름을 나타낸 것이지만, 납작하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실제 주름과 같은 입체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마의 옆모습 우마의 옆모습
 
 
 

 파르바티, 인도 촐라 왕조 13세기, 청동, 높이 52.2cm, 구8556                             촐라 왕조에서 만들어진 파르바티 상은 과장된 신체 표현과 움직임이 돋보입니다. 파르바티, 인도 촐라 왕조 13세기, 청동, 높이 52.2cm, 구8556
촐라 왕조에서 만들어진 파르바티 상은 과장된 신체 표현과 움직임이 돋보입니다.


한편, 자세는 비교적 경직되어 있습니다. 다리 아래가 깨져 나갔지만 양쪽 다리에 동일한 무게를 싣고 서 있음을 알 수 있고, 몸 전체에서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 팔 역시 대부분 깨져 나갔지만 원래는 비교적 각진 어깨 밑으로 곧게 뻗어 있었거나 혹은 앞으로 살짝 내밀어 무언가를 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머리와 몸의 뒤쪽이 편평한 편이어서 다소 기둥 같은 느낌을 줍니다.

비슷한 시기에 인도 촐라 왕조에서 만들어진 파르바티 상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한층 두드러집니다. 촐라의 파르바티 상은 한쪽 다리에 살짝 힘을 뺀 채 자연스러운 자세로 편안하게 서 있으며, 가슴과 엉덩이는 과장되게 표현했습니다. 활짝 뜬 눈에 리듬감과 생기가 넘쳐나는 촐라의 파르바티 상에 비해, 크메르의 우마 상은 보다 절제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강조된 모습입니다.

바이욘의 미소

무엇보다 이 상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얼굴입니다. 편안하게 두 눈을 감고 입꼬리를 살짝 올린 모습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산 모양으로 살짝 올라간 눈썹은 미간에서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고, 콧방울이 넓은 코 밑 양쪽으로 두터운 입술이 시원스레 뻗어 있습니다. 마치 깊은 명상 끝에 깨달음을 얻고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는 모습 같기도 하고, 깜빡 단잠에 든 채 기분 좋은 꿈을 꾸며 슬며시 미소 짓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바이욘 사원의 인면탑, 12세기 말-13세기 초, 캄보디아 씨엠립

바이욘 사원의 인면탑, 12세기 말-13세기 초, 캄보디아 씨엠립

이러한 얼굴은 흔히 ‘바이욘(Bayon)의 미소’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이때는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재위 약 1181-1218년)가 통치하던 시기로, 바이욘은 그가 도성 중심부에 세운 사원의 이름입니다. 이 사원에는 우뚝 솟은 탑에 얼굴을 새긴 소위 ‘인면탑(人面搭)’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우마 상의 미소와 거의 똑같은 표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조각들에서도 동일한 표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자야바르만 7세 시기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중심 사원인 바이욘의 이름을 따 ‘바이욘의 미소’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상적인 배우자, 여신, 왕비의 이미지

흥미롭게도 우마 상의 얼굴이 자야바르만 7세의 첫 번째 왕비였던 자야라자데비(Jayarājadevī)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시대 크메르 비문(碑文) 중에는 신상을 만들면서 왕이나 왕비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언급한 경우가 종종 전합니다. 예를 들어,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의 아버지를 추모하는 사원을 세우면서 그곳에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만든’ 신상을 안치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남겨진 또 다른 숙제입니다.

이처럼 신상에 투영된 세속 인물의 존재를 읽어내는 것은 힌두교 신상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특히 힌두교의 신들은 남편, 부인, 자식 등 가족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특정 신에 세속 인물의 정체성을 대입하기가 더욱 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우마 상의 경우 ‘세계의 주인인 시바신의 이상적인 배우자’라는 우마의 정체성은 세속사회에서 ‘군주의 배우자인 왕비’가 가져야 할 덕목이자 지향점이었습니다. 즉 세속의 권력자들은 종종 이렇게 가족관계로 맺어진 힌두교 신들의 관계에 자신과 가족들을 투영하고 이를 조각으로 남기기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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