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동기창의 <산수> 화첩 : 박성혜

이 그림은 중국 명대(明代)의 화가 동기창(董其昌)이 그린 산수 화첩으로,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필법과 풍부한 먹색으로 산, 나무, 바위 등을 묘사하였으며, 화면 구성은 여덟 폭 대부분 근경에는 바위와 나무, 중경에는 강, 원경에는 산을 표현하였습니다. 화면에는 활달한 기운이 충만하며 산수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필묵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동기창의 전형적인 필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화면마다 모두 그의 자(字)인 현재(玄宰)라는 묵서와 함께 동기창인(董其昌印), 현재(玄宰), 동현재(董玄宰), 기(其), 창(昌) 등의 인장(印章)이 찍혀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기의 정치가이자 화가였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의 호 원정(園丁)의 감장인(鑑藏印, 수집가가 찍는 도장)이 있어 한때 이 화첩은 민영익(閔泳翊) 소장했거나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기창, <산수도(山水圖)>, 1607년작, 종이에 먹, 33×22cm, 구2860

동기창, <산수도(山水圖)>, 1607년작, 종이에 먹, 33×22cm, 구2860

서화가이자 수장가, 미술이론가로 활동한 동기창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은 명 말기에 활동했던 서화가이자 수장가 겸 미술이론가입니다. 강소성 화정(지금의 송강)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현재(玄宰), 호는 사백(思白), 향광거사(香光居士), 시호는 문민(文敏)입니다. 그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부단한 노력으로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한림원에 들어갔으며, 지금의 장관급인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올라 세자의 스승까지 역임하였습니다. 높은 지위 덕분에 좋은 그림과 서적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며, 서화 감정에도 안목이 뛰어나 좋은 작품을 대거 소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그림이 있으면 반드시 보고자 하였고 그림에 찬문(撰文)이나 발문(跋文)을 써서 권위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현존하는 중국 그림에서는 종종 그의 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기창과 남북종론

동기창은 관리로서의 명성도 높았지만 시, 서, 화에 모두 능하였으며 옛 그림을 연구하고 모방하면서 이를 기초로 독창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습니다. 특히 서예에 뛰어나 산수화에서 서법을 이용한 필묵법을 발전시켰습니다. 회화는 경치를 사실대로 그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묵의 미를 표현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중국 문인화의 역사를 이론적으로 총괄하는 ‘남북종론(南北宗論)’을 수립합니다.

남북종론이란 중국의 산수화를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고, 당나라의 수묵화가로 알려진 왕유(王維)를 시조로 오대의 동원(董源)과 거연(巨然), 북송의 미불(米芾), 원사대가(元四大家) 그리고 명의 문징명(文徵明), 심주(沈周)에 의해 계승된 남종화를 문인 산수화의 정통이라고 주장한 회화 이론입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문인화의 우월성을 논한 것으로 후대 중국 문인화의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국 회화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추사파와 일본의 남화로까지 그 정신이 계승되어 동아시아 화단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남북종론에 대한 비판과 수용

그가 주장한 산수화의 남북종론은 동시대에 활약한 막시룡의 이론을 도용하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표절설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후대에 와서는 명 말기 문예계의 사조를 반영한 이론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동기창은 문인화 이론을 창작 과정에서 실제로 구현하고자 했던 화가로 높이 평가됩니다. 또한 옛것을 모방하여 창작한다는 복고주의 이론이 후대에 영향을 미치면서, 방작(倣作)의 유행을 선도한 화가로도 주목받게 됩니다. 이로써 동기창은 탁월한 미적 감각과 회화 표현에 있어서 중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동기창, <산수도(山水圖)>,  1607년작, 종이에 먹, 33×22cm, 구2860

동기창, <산수도(山水圖)>, 1607년작, 종이에 먹, 33×22cm, 구2860

시대를 앞서는 산수 화법

동기창은 송대(宋代)의 문학가 소동파로 더 잘 알려진 소식(1037-1101)과 원대의 서화가 조맹부(1254-1322)를 뛰어넘는 명대 최고의 예술가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옛 그림을 모방하며 전통적인 화법을 바탕으로 한 복고주의 이론을 펼쳤는데, 현재 전하는 그의 수많은 방작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 산수화첩에 그려진 산과 나무, 바위의 주름 표현기법에는 중국 전통 산수기법에서 자주 보이는 점묘법(먹점을 찍어 사물의 형태나 윤곽, 명암 등을 표현하는 기법)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반면에 나무 몇 그루만을 화면 앞쪽에 배치하거나, 크고 작은 추상적인 바위의 형태, 그리고 화면의 빽빽함과 듬성등성한 소밀(疏密)구성으로 산수의 기세를 표현한 것은 시대를 앞서는 표현으로도 보입니다.

이와 같이 시대를 앞서는 혁신적인 화법은 뒤를 잇는 청대의 개성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청대의 정통파 화가들에게는 그의 철저한 문인의식이 반영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론과 창작면에서 모두 인정받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대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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