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비파모양 허리띠고리 - 고대 복식의 단추:오세은

비파모양 허리띠고리는 고대 중국에서 왕실과 귀족, 문인과 무사들이 허리띠를 고정할 때 썼던 의복 장신구입니다. 원래는 초원의 유목민족이 사용하던 장신구였지만,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중원(中原) 지역으로 전파되어 진한대(秦漢代)까지 사용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비파모양 허리띠고리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제작된 허난성[河南省] 자오쭤시박물관[焦作市博物館] 소장 금은착록송석대구(金銀錯綠松石帶鉤)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여 동일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파형 허리띠고리, 중국 춘추전국시대, <br/>  길이 20cm·높이 1.8cm, 본관6576 비파형 허리띠고리, 중국 춘추전국시대,
길이 20cm · 높이 1.8cm, 본관6576

 비파형 허리띠고리, 중국 춘추전국시대, <br  />길이 20.5cm, 중국 허난성 자오쭤시박물관 소장  비파형 허리띠고리, 중국 춘추전국시대,
길이 20.5cm, 중국 허난성 자오쭤시박물관 소장


제작 방법

허리띠고리는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었고 전체를 금은으로 상감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비파모양 허리띠고리도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몸체에 갈고리가 달린 형태로, 측면에서 보면 살짝 구부러진 S자의 긴 비파모양입니다. 구부러진 머리와 몸체의 뒷면에는 원형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표면에는 은실과 금판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문양을 가득 삽입했습니다. 금판은 두드려 얇게 펴서 문양에 맞춰 새겨 넣었고 두터운 금판이 탈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를 정(釘)으로 눌러 박아 처리했습니다. 이러한 면 처리 기법은 중국 중원 지역에서 춘추시대부터 유행하던 것으로, 당시 상감 공예 기술의 높은 수준을 알려 줍니다.

 비파형 허리띠고리 세부, 본관6576 비파형 허리띠고리 세부, 본관6576

 비파형 허리띠고리 측면, 본관6576  비파형 허리띠고리 측면, 본관6576


청동 대신 금, 은, 철, 옥, 돌로 제작된 허리띠고리도 있습니다. 비파모양[琵琶形] 이외에도 용·봉황모양[龍鳳形], 동물모양[動物形], 대나무모양[竹葉形], 숟가락모양[匙形]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크기는 보통 10cm 전후인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50cm이고 제일 작은 것은 2cm인 것도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약 20cm 정도로 중간 크기입니다. 허리띠고리의 크기와 장식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고 실용성과 함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추구하여 신분 과시용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

허리띠고리 사용 기록

『시경·조풍(詩經·曹風)』에 중국 상주(商周) 시기(기원전 15세기 ~ 기원전 771년)에 ‘군자는 흰색 비단의 허리띠를 사용하였다. [淑人君子, 其带伊丝]’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중원 지역에서 최소한 서주(西周) 이전까지는 허리띠고리나 단추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비단 천으로 만든 허리띠로 옷을 여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용도

 허리띠고리 착용 방법

허리띠고리 착용 방법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허리띠고리는 점점 비단 끝을 대신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허리띠를 묶어 옷을 여미는 것보다는 허리띠고리를 사용하여 고정시키는 것이 더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부터는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허리띠고리 사용이 본격적으로 유행했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새로운 형태의 고리모양 허리띠고리가 나타나면서 비파모양 허리띠고리는 없어지게 됩니다.
또 허리띠고리는 천 허리띠를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 이외에 검을 끼워 착용하거나 칼집, 거울 주머니, 도장, 화폐, 진귀한 옥석 장신구 등을 매다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남성은 주로 물건을 몸에 지닐 수 있도록 고정시키는 용도로, 여성은 대부분 장신구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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