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진씨 등 13인 조상비[陳氏合右十三人造像碑]:강건우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새로운 형태의 시각 조형물인 조상비(造像碑)가 등장했습니다. 조상비는 상비(像碑), 비상(碑像), 불비상(佛碑像)이라고도 불리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386~589)부터 당대(唐代, 618~907)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중국의 전통 조형물인 비(碑)와 다르게 조상비의 제작과 조성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비(碑)가 한정된 상류층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이었다면, 조상비는 지배 계층뿐만 아니라 읍의(邑義) 즉 민간 신도 단체의 구성원들이 발원자로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상비(덕수5664) 1점도 민간 신도 단체가 발원한 문화재입니다.

아로새긴 염원의 결정체, 조상비

이 조상비는 수(隋) 개황(開皇) 2년(582)에 진씨(陳氏) 등 읍자(邑子) 13명이 조성한 것으로, 현재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가 일부 결손된 상태입니다. 석질은 여느 조상비와 달리 약간 밝은 갈색빛을 띠고 부분적으로 붉은빛이 보입니다. 양쪽 면의 상단과 중단에는 크고 작은 감실을 배치했고, 하단에는 상의 제작 내력을 적은 조상기(造像記)를 새겼습니다.

 진씨 등 13인 조상비, 수 개황 2년(582), 대리암, 높이 111.58cm, 폭 52.36cm, 두께 18.97cm, 덕수5664 진씨 등 13인 조상비, 수 개황 2년(582), 대리암, 높이 111.58cm, 폭 52.36cm, 두께 18.97cm, 덕수5664

 진씨 등 13인 조상비 앞면 실측도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 앞면 실측도면


앞면은 중심축을 따라 위아래로 큰 감실 2개를 배치했습니다. 위쪽 감실에는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제자상을 안치했습니다. 중앙의 불좌상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손갖춤을 취하였고 의복은 포의박대식(褒衣博帶式, 또는 쌍령하수식雙領下垂式)으로 입었습니다. 포의박대식이란 오른쪽 어깨에서 넘어온 가사가 가슴을 덮지 않고 배까지 늘어지다가 왼팔에 걸쳐지고, 이로 인해 노출되는 가슴 부분에 내의와 띠 고름을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복 양식은 중국 운강(雲岡)석굴 제16굴(5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용문(龍門)석굴에서 유행했습니다.
아래쪽 감실에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제자상 2구와 보살상 2구를 묘사했습니다. 본존불의 긴 허리와 다소 경직된 자세 등은 허난박물원[河南博物院] 소장 <도속오백인조상주(道俗五百人造像柱)>(개황 원년, 581)에 새겨진 불상과 유사합니다. 본존불 아래에 대좌를 들고 있는 키 작은 인물인 주유상(侏儒像)을 중심으로 양쪽에 사자를 표현했습니다.
감실 위에는 탑이 있고 탑 아래 괴수의 입에서 꽃줄기가 나오는 것처럼 묘사했고, 상단과 중단 사이 가로로 긴 공간에는 중앙의 연꽃 모티프를 중심으로 생황(笙簧), 비파(琵琶), 적(笛), 횡적(橫笛) 등을 연주하는 주악천(奏樂天)과 무희(舞姬)를 빼곡하게 묘사했습니다.
앞면 하단에는 얕은 부조로 조상비를 발원한 공양자를 표현했습니다. 얼굴이 다소 길고 옷깃을 열어젖힌 번령포(翻領袍)를 입은 공양자와 그 뒤 산개를 든 시자(侍者)의 모습이 확인됩니다. 하단 중앙부에는 ‘수 개황 2년(582) 여러 명의 진씨가 참여한 13인의 신도 단체가 발원하여 석가상 1구를 조성했다’는 내용의 조상기를 새겼습니다. 조상기에 기록된 석가상 1구는 조상비 앞면 아래쪽 감실의 본존불로 추정됩니다. 이 본존불은 다른 상들에 비해 비중 있는 크기이며, 비 몸체 중앙 부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상으로 생각됩니다.

 진씨 등 13인 조상비의 뒷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의 뒷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 뒷면 실측도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 뒷면 실측도면


뒷면 상단 중심축에 배치된 감실에는 반가사유상을 본존으로 하는 삼존을 새겼습니다. 반가사유상 위쪽에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표현했는데, 이것은 미륵불(彌勒佛)이 설법할 때 배경이 되는 용화수(龍華樹)를 연상케 합니다.
중단에는 불입상을 본존으로 하는 삼존상을 묘사했는데, 가운데 불입상의 얼굴 부분은 파손되었고 양손의 지물(持物)은 마모된 상태입니다. 감실 옆으로 불비상의 가장자리에는 보살입상 1구씩을 안치했습니다. 두 보살상은 장방형의 얼굴에 무릎 앞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는 천의(天衣)를 착용했습니다. 나머지 공간에는 여러 개의 작은 감실을 조성하고, 그 안에 복두의(覆頭衣)를 입고 선정에 든 승려, 병향로를 든 공양자, 포의박대식 의복을 갖춘 불좌상 등을 표현했습니다. 상단의 작은 감실 사이 공간에서 ‘망부모(亡父母)’, 중단의 감실 옆 공간에 ‘위모(爲母)’, ‘양주(養主)’, 하단에 ‘읍자(邑子)’ 등의 글자가 확인됩니다.

 진씨 등 13인 조상비의 오른쪽 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의 오른쪽 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의 왼쪽 면 진씨 등 13인 조상비의 왼쪽 면


오른쪽 측면에는 석가모니 생애의 주요 사건을 다룬 불전도(佛傳圖)를 표현했습니다. 무우수(無憂樹)를 잡고 있는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싯다르타(Siddhārtha) 왕자가 태어나는 ‘탄생’ 장면과 싯다르타 왕자가 태어난 후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물을 뿜어 씻겼다는 ‘구룡관정(九龍灌頂)’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이 두 장면은 중국의 불전도에도 빈번하게 묘사된 주제로, 일반 불교 신도들이 석가모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왼쪽 측면에는 여러 개의 작은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좌상, 불입상, 역사상(力士像) 등을 표현했습니다.
중국 조상비는 주요 교차로, 마을 입구, 사원 등 대외적이고 공적인 장소에 주로 세워졌습니다. 황제와 조상의 안녕을 기리고 나아가 자신의 성도(成道)를 기원하기 위해 조상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조상비는 당시 유행했던 불교 도상(圖像)에 발원자의 염원을 담아 새긴 종합적인 결과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진씨 등 13인 조상비 저작물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