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도용 - 채색말과 삼채말

고대 중국인들은 문자가 탄생하기 전부터 어떠한 방법으로던 자신들의 생각과 모습을 후대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현세와 내세에 대한 생각과 다산, 전쟁의 승리 기원 등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을 바위에 그림으로 남겼고, 토기에 문양으로 새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2차원적인 그림으로는 어떠한 상황을 극복하고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훗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는 점차 발전되어 구체적인 대상품으로 만들어 무덤에 매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용입니다. 순장용 도용, 호위무사 도용 등이 상대(商代, 기원전16~기원전11세기)부터 청대(淸代, 1644-1911년)까지 꾸준히 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도용은 단순한 부장품을 뛰어 넘어 당시 사회 상황과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참고)  남녀노예용(男女奴隸俑), 중국 상나라 말기(기원전11세기), 길이 5.5~6cm, 중국 하남성박물관 소장

남녀노예용(男女奴隸俑), 중국 상나라 말기(기원전11세기), 길이 5.5~6cm, 중국 하남성박물관 소장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졌지만 손발이 묶인 남녀 노예를 형상화한 것으로, 도용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여 사람 대신 순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장품으로서의 중국 도용

중국 상(商)나라 때 순장 제도가 매우 성행하여 산 사람이나 동물을 함께 묻는 경우가 많아지자, 처음에는 이를 대신할 목적으로 도용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도용은 무사나 노비의 모습을 단순하고 간단한 형태로 제작하여 순장자와 함께 무덤에 매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770~기원전221)에 봉건사회가 성립된 이후, 유교가 발전하면서 여러 성인(聖人)들의 성찰 속에 잔혹한 순장 제도는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무덤에 점차 많은 수의 도용을 부장하기 시작하였고,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475~기원전221)에는 도용의 수량과 종류가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중국에서 도용은 진(秦, 기원전221~기원전206)‧한대(漢代, 기원전206~기원후220)에 크게 발전을 합니다. 중국 최고 걸작인 진시황제(秦始皇帝) 병마용(兵馬俑)이 만들어졌고, 진나라의 법령과 경제 제도를 기반으로 한나라는 초기부터 사회가 안정되어 자연스럽게 부장품을 많이 매장하는 장례 풍습이 유행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생전의 부귀영화를 사후에도 누리고자 생전에 향유한 일체를 모방하여 무덤에 부장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도용의 소재가 점차 풍부해지고 다양하게 변모하였습니다. 매장되는 도용은 죽은 자를 공양하는 역할자로 시녀, 사병(私兵), 무사 등과 동물을 함께 부장했습니다. 이러한 부장품들은 한대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도용은 비록 진나라의 것보다 크기가 현저히 작아졌지만 수량은 결코 뒤지지 않아, 여전히 가치가 높습니다.

채색말

번영과 안정을 누리던 한대에 이어 여러 나라로 분열된 남북조시대(420~589)는 중국 역사상 가장 전쟁이 빈번했던 기간입니다. 황허[黃河] 유역의 한족과 북방에서 내려온 소수민족이 전쟁을 일으키고 또 민족 간에 융합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원래 한족(漢族)의 풍습이었던 도용은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가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조조(曹操)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반영되어 부장품으로 애용되던 도용 역시 일시적으로 쇠퇴하였습니다. 결국 이 시기에는 도용의 수량이 현저히 감소하였고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혼란기임에도 불구하고 뤄양[洛陽] 지역에 위치한 북위(北魏)는 유일하게 상장예의(喪葬禮義) 제도를 정비하여 부장되는 도용에 새로운 규범을 적용시켰습니다. 우선 무덤에 매장하는 도용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규정하였습니다. 진묘용(鎭墓俑, 진묘수와 무사용), 의장용(儀仗俑, 우마차와 의장용 말), 인물용(人物俑, 시중드는 시종용과 악무용), 동물용(動物俑, 돼지, 개, 닭 등 가축용)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비록 한대(漢代)처럼 화려한 모습의 도용은 아니지만, 하남성 뤄양을 중심으로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하였습니다. 이 조합은 훗날 당대(唐代)까지 이어져 발전되었습니다.

채색마용, 중국 남북조시대, 높이 51.3cm, 길이 41.0cm, 구4258

채색마용, 중국 남북조시대, 높이 51.3cm, 길이 41.0cm, 구4258

남북조시대는 국가적인 혼란으로 도용의 명맥만이 이어져 대부분 소략하게 만들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황허강을 중심으로 화북 지역에 위치한 북위는 무덤에 도용을 매장하는 풍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나라입니다. 따라서 이 채색말은 당시 중원 지역의 토종말 형태를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고개를 숙인 말의 표정과 애수에 찬 눈 등이 매우 현실감 있고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안장은 한대와 비교하여 허리 밑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목걸이 장식과 갈기를 묶어 표현한 뿔 모양 등이 잘 표현되어 있어 당시 의식용 말의 장식 형태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외국 말의 수입과 도용 제작

당나라는 중국 대륙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키고 한족이 통일한 국가입니다. 오랜 전쟁으로 초기에는 국가가 보유한 말이 5천 필도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보충하고자 황실은 공납, 무역, 전쟁 등으로 외국에서 말을 대대적으로 수입하였는데 그 종류가 약 80여 종이었습니다. 북부 지역의 몽고와 시베리아 지역 일대에서 돌궐 말, 위구르 말, 말레이시아 말 등 28종이 수입되었고, 서부 지역에서는 토욕혼 말, 페르시아 말 등 30여 종이 수입되었다고 합니다. 동북 지역에서는 거란 말 등이 수입되고 서남 지역에서 인도 말, 투루판 말까지도 수입하였습니다.
이 중에 아라비아 계통의 말이 가장 주목할 만합니다. 『신당서(新唐書)』에 의하면, 당 현종(玄宗, 712~756) 때 대식국(大食國)에서 9차례나 말을 헌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출토되는 삼채말의 위치를 보면 북방의 작은 말과 서역의 의장용 말이 각각 따로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당대 초기에 제작된 채색말은 목과 다리가 짧은 토종말의 형상이며, 대부분 여성이 타고 있거나 짐을 운반하는 모습입니다. 이에 비해 삼채말은 눈이 크고 목과 사지가 긴 체형으로 신체가 균형 잡혀 있는 서역 말의 모습입니다. 이런 삼채말은 주로 묘실 입구 쪽에 배치되어 있어 당나라 때 의장용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한 당삼채

당삼채는 먼저 백색 점토로 기형을 만들어 1,100도의 고온에서 굽습니다. 그 다음 삼색 이상의 유약을 바른 후, 다시 저온인 900도로 굽습니다. 이때 발라 놓은 유약이 산화되면서 구리는 녹색, 철은 황갈색, 코발트는 남색을 띄게 되어 화려한 색채로 표현됩니다.

삼채말, 중국 당 중기, 높이 74.8cm, 길이 87.0cm, 구3349

삼채말, 중국 당 중기, 높이 74.8cm, 길이 87.0cm, 구3349

당나라 삼채말은 서역에서 수입된 말을 모티프로 제작하여, 긴 목에 코가 길고 눈이 크며 신체가 균형 잡혀 있습니다. 발달된 근육과 살집이 잘 표현되어 있고 꼬리는 둥글게 말아 묶어 놓아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는데, 당대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아라비아 계통의 말이 삼채의 전형적인 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특히 유약의 갈색 빛깔과 갈기의 흰색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민첩한 준마의 형상을 하고 있고 마구는 선명하며, 고삐와 녹색 안장, 밀치끈에는 화려한 꽃과 개구리 장식이 되어 있어 의장용으로 부장된 도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삼채말, 중국 당 중기, 높이 52.0cm, 길이 56.0cm, 구3348

삼채말, 중국 당 중기, 높이 52.0cm, 길이 56.0cm, 구3348

일반 삼채말보다 체구가 작지만 삼채 중에 보기 힘든 코발트색입니다. 코발트 안료는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수입된 안료로 우윳빛 유약과 매우 조화롭게 어울려 일반적인 삼채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당삼채 도용 중에 가끔은 이렇게 엉뚱한 색을 사용한 것이 종종 발견됩니다. 갈색 말처럼 자연의 색과 어울리는 안료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문양의 효과를 낸 것도 있지만, 이렇게 원래의 것과 수입 안료를 이용하여 독특한 색을 만들어 낸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도공이 용의주도하게 유약의 결과 색을 미리 예측하고 시유한 것으로, 독특한 삼채말의 멋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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