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중국명인초상첩(中國名人肖像帖) - 중국 당나라의 인물 열두 명을 그린 초상화첩 - : 박성혜

이 화첩은 중국 당나라(618-907) 때 활동한 열두 명의 유명한 인물을 그린 초상화 화첩입니다. 열두 명의 인물에는 정사에 뛰어난 재상, 시인, 문학가 등이 있으며, 적인걸(狄仁傑), 요숭(姚崇), 송경(宋璟), 곽자의(郭子儀), 이백(李白), 두보(杜甫), 맹교(孟郊), 가도(賈島), 백거이(白居易), 유종원(柳宗元), 안진경(顔眞卿), 한유(韓愈)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 초상은 모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좌측을 향하여 비스듬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반신초상으로 그려졌습니다.

필자미상, <곽자의 초상>, 《중국명인초상첩》 제2면, 청, 비단에 채색, 34.4×30.5cm, 동원2215 필자미상, <곽자의(郭子儀) 초상>, 《중국명인초상첩》 제2면, 청, 비단에 채색, 34.4×30.5cm, 동원2215

<중국명인초상첩> 의 형식과 특징

중국 명인 열두 명의 반신초상화는 모두 비단에 그렸고, 화법으로 보아 모두 한 사람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각각 인물에 대한 업적을 별도의 푸른 색지에 아주 가는 선으로 가로, 세로 1.7cm인 정사각형의 방안을 만들어 전서체로 적어 놓았으며, 글씨체로 보아 역시 한명이 쓴 것으로 보입니다.

열두 점의 초상화는 동일한 화풍을 지니고 있는데, 얼굴의 이목구비를 표현한 필법과 얼굴면에 색을 칠하는 선염법, 관모의 음영처리, 수염과 눈동자의 표현, 의복에 나타나는 선묘법과 음영처리법 등이 명대의 초상화에서 많이 나타나는 화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명대의 초상화는 실제의 인물과 비슷하게 그리는 것을 중요시했고, 게다가 외형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인품까지 전달해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에 의해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얼굴의 묘사에서 주로 나타나고 신체와 배경은 간략하고 단조롭게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명대 초상화를 그린 기법을 살펴보면 초상화 인물이 쓰고 있는 관모의 명암처리라든가 흰점으로 표현하고 있는 눈, 강조 부분을 붉은색 등으로 칠한 이목구비 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명인초상첩> 에도 이러한 표현법들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명대 초상화의 표현기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유> 의 초상화 살펴보기

필자미상,<한유의 초상>, 《중국명인초상첩》 제2면, 청, 비단에 채색, 34.4×30.5cm, 동원2215 필자미상, <한유(韓愈)의 초상>, 《중국명인초상첩》 제2면, 청, 비단에 채색, 34.4×30.5cm, 동원2215

명대기법을 따른 청대 초상화

한유의 초상을 살펴보면 우선 엷은 먹선으로 얼굴의 윤곽과 이목구비, 주름살 등을 그리고 붉은색 선으로 코끝과 입술이 맞닿는 부분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마와 눈가의 주름살 부분이나 코끝 좌우에서 입가로 길게 뻗친 법령에 분홍색의 담채로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살리고 있습니다. 눈썹과 수염은 바탕에 담묵으로 선염하고 그 위에 세필로 가늘게 한 올씩 그렸고, 귀의 표현을 보면 귓불 아래를 볼륨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목구비의 형상, 주름살의 위치라든가 귓불 등의 표현은 초상화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도식화된 양상이기도 합니다. 동공은 검은색으로 먹점을 찍어 표현했으며 홍채는 진한 갈색 그리고 흰자위는 백색의 점으로 찍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와룡관은 5개의 세로골마다 음영을 표시하고 있으며, 옷주름은 먹선으로 처리하였고, 굵고 가는 선을 모두 사용하였으며 주름 안쪽을 따라 음영을 넣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은 기본적으로 명대의 초상화에서 많이 나타나는 화법입니다.

사적을 통해 알 수 있는 한유의 청결한 성품

전서체로 구사한 사적을 통해서 그의 청결한 성품을 엿볼 수 있고, 관직을 지내며 좌천되었다가 다시 임명이 되는 등 여러 관직을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韓文公名愈字退之唐之文宗李漢序云日光玉潔周情孔思千態萬貌卒於道德仁義炳如也宋璟贊云以六經之文爲諸儒倡 學者仰之如泰山北斗爲御史以論宮市貶後遷刑侍又諫佛骨謫潮州召拜祭酒遷吏侍謚文公號昌黎先生
한문공의 이름은 유(愈), 자는 퇴지(退之)이다. 당 문종 이한(李漢)은 서문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옥처럼 깨끗하며 주공의 마음에 공자의 생각을 가졌다. 갖추고 있는 모든 면이 결국 도덕과 인의로 빛난다.”라고 하였다. 송경(宋璟)은 “육경(六經)의 문장으로 뭇 선비들의 선구가 되어 학자들이 태산과 북두처럼 떠 받든다.”고 찬양하였다. 어사로 있을 때 궁시(宮市)의 문제를 논하다 강등되었고 또 부처의 사리 문제에 대해 간하다 조주(潮州)로 좌천되었으며 다시 불려와 제주(祭酒)에 임명되어 다시 벼슬에 올랐다. 시호는 문공이며 호는 창려선생이다.

<중국명인초상첩>은 왜 제작했을까?

중국에서 역대 명인들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기록에 의하면 한대 이전부터입니다. 주로 성현, 공신 등의 초상을 그렸으며, 이러한 화첩 형식의 초상화는 송대에 시작하여 명대 중엽 목판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본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역대 명인의 초상으로 그려진 대상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제왕과 충성스러운 신하, 그리고 높은 학식과 덕망을 지닌 유학자들입니다. 역대 명인의 훌륭한 모습에서 후대 사람들이 받들고 따라야할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제작하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회화가 발달하면서 화첩 형태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판화의 발달로 명인의 초상이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감계적인 목적과 동시에 심미적인 감상화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사람들의 모습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었을 것입니다. 곧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인물을 시각적인 매체를 통하여 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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