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테마전
대한제국, 근대 국가를 꿈꾸다.
  • 전시명

    대한제국, 근대 국가를 꿈꾸다.

  • 전시장소

    테마전시실

  • 전시기간

    2015-07-21~2015-09-13

  •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서윤희

    (02-2077-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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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 선포

1897년 고종은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실현하고자 환구단圜丘壇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이에 걸맞게 황제가 사용하는 국새를 새롭게 제작하였고 <대한예전大韓禮典>을 편찬하여 의례를 정리하였다. 황제의 명으로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제정, 공포하여 대한제국에 맞는 규범체계를 마련하였다. 황궁인 경운궁을 도심의 중심으로 삼아 워싱턴을 모방한 방사선 도로망을 구축하였다. 근대 국가의 상징물을 만들기 위해 1883년 제정한 태극기와 함께 대한제국 애국가를 새로 만들었다.


제2부: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한 노력

대한제국은 동도서기東道西器적 관점에서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서양 근대국가의 모델을 따르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을 강조하며 근대화를 꾀하였다. 고종은 궁내부宮內府의 권한을 강화하여 근대화 사업의 중심으로 삼았다. 재정권을 장악하여 부국 정책을 펼치고 군사, 행정, 경제,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에서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전차, 통신, 철도 등 근대 문물이 속속 도입되면서 서울은 근대적 도시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근대교육을 표방하는 학교들이 건립되고, 신문이나 잡지 들이 발간되어 국민들의 근대적 의식을 일깨웠다.


제3부: 좌절된 근대국가의 꿈

근대화를 위해 도입된한 제도와 시설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도시를 변모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 및 수탈의 도구가 되었다.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일방적으로 ‘을사늑약’을 맺고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에 밀사를 보내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하지만 일본은 이 일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킨다. 이에 대한 반발로 대대적인 항일 투쟁이 전개되자 일본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09년 순종의 남․서북순행을 단행하였고 다음해 8월 22일 불법적이고 강제적인‘한일병합늑약’을 체결, 29일 늑약문을 공포하였다. 


에필로그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은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실제로 이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였다. 이토는 죽었지만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 아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민족문화가 말살되는 시련 속에서도 나라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