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테마전
다산 정약용
  • 전시명

    다산 정약용

  •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테마전시실

  • 전시기간

    2012-10-30~2012-12-16

  •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이효종

    (02-2077-9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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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테마전
“다산 정약용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오는 10월 30일(화),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테마전 “다산 정약용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를 개최한다. 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보물 제1683호) 등 보물 2점을 비롯한 총 43건 142점의 유물을 통해, 역경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고민했던 대학자 다산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그 인간적인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정약용의 생애를 시간적 흐름과 그가 처했던 상황, 학문 연구와 저술 등을 중심으로 몇 단계로 나누어 주제화하였다. 먼저, “고향, 그리고 한양의 새로운 공부”에서는 태어나 자란 고향(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인근의 풍광과 혼인 후의 한양 생활에서 접하게 된 성호 이익의 학문과 서학西學에 대해 알아본다. 다산 생가에서 가까운 한강변의 모습을 그린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과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  『주교요지主敎要旨』를 비롯한 당시 유통된 천주교 교리서  들이 전시된다.

 

  이어 “성군聖君을 만나: 정조와 정약용”에서는, 28세 때 문과에 급제하고 그 해에 바로 규장각 초계문신에 발탁된 정약용이 수원 화성 축조 공사의 설계 등을 맡는 등 정조 임금의 각별한 신임을 받던 관료 시절을 다룬다. 김홍도가 그린 「규장각도」와 정조가 하사한 철제 은상감 척尺, 『화성성역의궤』, 그리고 그가 지은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 등의 유물을 볼 수 있다.


한편 “살아남아 세운 뜻, 학문의 길”과 “세상을 바루려는 뜻, 1표 2서”에서는, 천주교에 연루된 죄로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의 학문 연구와 저술을 살펴본다. 주역 해설서인 『주역사전周易四箋』와 『경세유표』·『목민심서』 등이  관련 편지와 함께 전시되어 학자이자 개혁사상가로서의 다산의 업적을 말해준다.


이 시기 다산의 일상과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유배지 강진의 생활”에서 엿볼 수 있다. 초의 선사가 그린 다산초당 그림, 다산초당 주변 네 곳의 경치를 다산 자신이 읊어 쓴 시를 모은 「다산사경첩茶山四景帖」(보물 제1683호), 선비 화가인 외증조부 윤두서尹斗緖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약 150년 정도 앞서 제작한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보물 제481-3호), 흑산도의 형 정약전에 대한 걱정을 담은 편지와 승려·제자 등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딸에게 그려 준 「매조도」(부인 홍씨가 혼인 30주년 기념으로 보내온 빛바랜 치마폭에 다산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넣은 것) 등을 초상화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고향 마재로 돌아와서”에서는 무려 18년에 걸친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 마재로 돌아온 다산의 저술과 학문적 교류, 그리고 노년의 일상과 소회 등을 전시한다. 이 시기에 쓴 형사 사건 지침서 『흠흠신서欽欽新書』, 대표적 경학 연구서의 하나인 『매씨상서평梅氏尙書平』, 다산이 제시題詩한 「산수도」와 「어도魚圖」, 그리고 만년에 쓴 편지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약용, 사후 재평가”에서는 사후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정약용의 학문과 사상이 개항 이후의 시대 변화 속에서 재조명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다. 애국계몽운동기에 다산을 크게 소개하기 시작한 「황성신문」과 교사용 교과서 『유년필독석의幼年必讀釋義』, 그리고 다산의 타계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국적인 모금으로 간행된 활자본 『여유당전서』와 그 출판사의 영수증, 다산을 높이 평가한 「동아일보」 등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18년간의 유배라는 큰 어려움 속에서도 깊이 있는 유학 연구를 바탕으로 방대한 규모의 저술로써 제도 개혁과 민생 개선의 방향을 제시했던 위대한 사상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그가 몸담은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해, 쉽고 편안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