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테마전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 전시명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신라실

  • 전시기간

    2010-04-20~2010-06-20

  • 담당부서

    고고부 최성애

    (02-2077-9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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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ㅇ전시제목 :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ㅇ전시기간 : 2010년 4월 20일(화) ~ 6월 20일(일)
ㅇ전시장소 : 고고관 신라실
ㅇ전시유물 :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국보 3호), 임신서기석(보물 1141호), 남산신성비 제2비 등 30여점


신라만의 화려한 황금 유물이 우리를 ‘고분의 나라, 신라’로 이끌었고, 이에 더 나아가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일통삼한을 이루어 나가는 6~7세기를 이해하기 위해 신라의 ‘문자’자료를 중심으로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테마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신라는 6세기대에 이르러 급속하게 문자 사용이 증가하여 문자 발달사상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는 6세기대에 이르러 무엇인가 많은 내용의 사실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신라 사회에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6세기 신라는 눈부신 발전을 해 나갔는데, 우경牛耕의 실시를 통한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기반으로 정치체제의 정비를 구체화하였고, ‘왕王’이라는 호칭과 ‘신라新羅’라는 국호國號를 확정하였다. 율령律令의 반포·불교의 공인公認·영토의 확장 등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고대 국가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신라 사회 전반에 걸친 질적 변화가 뚜렷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뿐만 아니라, 역사학의 문헌 연구를 통해서도 6세기대 신라에 대한 매우 많은 연구 성과가 제시되고 있는 데 그만큼 이 때가 신라에서 중요한 시기임을 반증하며, 이러한 사항이 당시 신라인이 남겨 놓은 문자자료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신라에서 문자가 발생한 초기의 모습은 5세기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청동그릇나 청동방울에 새겨진 단어에 해당하는 문자와 고구려에서 제작되어 신라로 전해져 신라 문자생활에 영향을 미친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본격적인 문자 생활을 보여주는 자료가 석문인데, 6세기 석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율령 반포 및 문자의 보급 등과 깊은 관계가 있다. 반영구성을 가진 단단한 돌에 교시하는 내용을 써서 강한 시행 의지를 표명하려 한 것이다. 특히 영토 확장 과정에서 그 주민을 신라인으로 포섭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와 관련된 사항을 주지시키기 위하여 석문이 널리 작성된 것이다. 지방으로 편입된 지역의 주민을 율령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최고(最古)의 비석인 포항 중성리비와 영일 냉수리비, 울진 봉평비 등이 있다. 영역 확장과 관련해서는 진흥왕이 새로 편입된 지역인 창령·북한산·황초령·마운령 등에 세운 4개의 순수비와 단양 적성비 등이 남아 있다. 한편 신라 영역에 들어온 지방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주민들을 성 쌓는 작업에 동원하는 등의 모습은 남산신성비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또한 전국에 댐을 쌓아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켰는데, 영천 청제菁堤를 쌓을 때 세운 청제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비문과 더불어 신라 삼국통일에 기여를 한 화랑도와 관련된 임신서기석(보물 1411호)의 화랑의 맹세를 통하여 통일의 기운도 느낄 수 있다. 


※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 전시 팜플렛 [다운로드]

※ [청소년 활동지]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