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테마전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天地造化
  • 전시명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天地造化

  •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2층 회화실

  • 전시기간

    2009-09-08~2009-11-22

  • 담당부서

    미술부 이혜경

    (02-2077-9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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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테마전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天地造化



ㅇ전시명 : 서거 250주년 기념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天地造化>
ㅇ전시기간 : 2009. 9. 8(화)~11. 22(일), 11주간
ㅇ전시장소 : 상설전시실 2층 미술관 회화실
ㅇ전시유물 :  최초 공개하는《북원수회도첩北園壽會圖帖》등 30건 142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에서는 정선 서거 2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리기 위하여 테마전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天地造化”를 개최한다.  9월 8일(화)부터 11월 22일(일)까지 미술관 회화실에서 열리는 이번 테마전에는 모두 30건 142점의 정선 작품들이 전시된다.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은 우리 나라 회화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으로 서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84세까지 장수하였다. 하양(河陽, 대구 근처) 현감縣監, 청하(淸河, 포항시 소재) 현감, 양천(강서구 가양동 일대) 현령陽川縣令을 지냈으며 81세에는 종 2품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36세부터 82세에 이르는 제작 연대가 있는 작품이 보여주듯 그는 붓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의 30년 지기인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은 정선에 대해서 “금강산 및 영남 지방을 두루 여행하고 사생하여 산수의 형세를 얻었으며 사용한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룰 정도”라고 말하였다. 또한 “임금(영조)께서도 정선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그 호로 부르시니, 위로는 재상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에 이르기까지 정선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그의 삶을 기록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정선의 초기 화풍을 알려 주는 중요한 두 작품이 출품된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신묘년풍악도첩, 辛卯年楓嶽圖帖, 1711년에 그린 금강산 화첩>>이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 중 가장 이른 36세 때의 화첩으로 14면의 작품을 모두 전시하여 그의 초기 진경산수화풍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화첩에는 탐승의 경유지를 따라 장소의 현장성과 감동을 표현하고자 모색한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어 정선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작품이다.  

둘째는 <<북원수회도첩, 北園壽會圖帖>>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 관람객에게 처음 공개된다. 정선 41세 때인 1716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전 공조판서 이광적(李光迪, 1628~1717)의 과거급제 60주년(回榜)을 맞이해서 북악산 및 인왕산 기슭에 거주하던 70세 이상의 노인들과 그 자손들이 모여서 장수를 서로 자축했던 모임이다. 이때 숙종 임금이 꽃과 술을 내린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 사대부에게는 최고의 경사였다.   

참석자의 목록인 좌목에 보면 주인공인 광적을 포함하여 70대 이상의 기로 15인, 이들의 아들과 손자 15인, 여항 시인 장응두(張應斗, 1670~1729) 등이 있다.

정선이 이 모임을 그리게 된 배경에는 이 모임의 발의자 박견성(朴見聖, 1642~1728)이 정선의 외숙부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는 정선의 평생지기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 부자도 참석하는데 당시 정선이 북악산 기슭에 살았기 때문에 서화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던 이들이었다. 

특히 이 서화첩에는 발의자 박견성의 시를 차운(次韻)하여 참석자들이 지은 시들이 있으며 제일 마지막에는 정선의 외사촌 되는 박창언(朴昌彦, 1674~?)이 그림 속의 노인들과 노비들, 여종들의 모습까지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정선의 인물화 중 가장 시기가 빠른 것이며 기록화로서 드문 예이다. 또한 정선이 진경산수화의 창안자일 뿐만 아니라 풍속화 분야의 전개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특별한 자료이다. 또한 당시 문예계를 이끌었던 인왕산과 백악산 기슭에 거주하던 유력 가문들의 교유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러한 두 작품을 통해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분야에서 선도적인 활약을 한 정선의 초기 모습을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선은 흔히 진경산수화의 대가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진경산수화뿐만 아니라 관념산수화, 고사인물화, 문학적 소재를 그린 그림으로 나누어 다각도로 조명해 보았다.

정선의 회화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중국 남종화법南宗畵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생을 통해 이를 새롭게 발전시켜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예술형식을 창출하였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진경산수화를 관찰과 체험에 바탕한 산수화라고 한다면 ‘관념산수화’는 간접적인 체험과 학습 및 상상에 의한 정신적, 개념적인 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정선은 일찍부터 중국 남종화南宗畵의 대가들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각종 화보 등을 연구하여 새로운 개념과 기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점米點, 피마준披麻皴 등의 남종화법과 절파계浙派系 화풍의 필묵법 筆墨法 등을 자기식으로 소화, 재해석하여 진경산수화와는 또 다른 격조가 있으면서도 기세가 있는 정선 특유의 관념 산수화풍을 이루었다. 중국의 산수화를 학습하는 단계를 기초로 하여 주변의 산천과 명승지를 수없이 유람하며 터득한 관찰과 경험의 안목을 조화시켰을때 그는 기존의 상투적인 산수화의 단계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밖에 중국 당唐 말의 시인 사공도司空圖(837~908)의 시론試論을 스물 두 장의 그림으로 제작한 《사공도시품첩 司空圖詩品帖》은 74세 때의 작품으로 미학적 이론을 회화로 형상화한 신선한 상상력과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하게 전개된 이러한 그의 예술세계는 동시대 및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정선파”라는 시대양식을 형성하여 한국 회화사의 흐름을 바꿔 놓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1925년 독일인 신부 베버(Norbert Weber, 1870-1956)에 의해 독일에 건너가 성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다가 2006년에 반환된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화첩》이 10월 13일부터 전시된다. 그동안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 화첩을 실견하고자 하는 요구가 높았는데 소장 기관인 왜관수도원에서 이번 전시를 일반 관람객에게 처음 공개하는 자리로 삼았다.     

이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맞아 간송미술관 소장 <청풍계도>와 <금강내산총람도>이 전시되고 개인 소장 <비로봉도>가 최초 공개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의 예술 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 그림의 독창성을 재인식하는 기회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