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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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집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
  • 전시명

    국립중앙박물관 특집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

  •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 전시기간

    2007-11-20~2008-01-27

  • 담당부서

    역사부 서성호

    (02-2077-9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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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집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

  ㅇ전시명 : 특집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 Seonbi Lee Hyeon Bo
  ㅇ전시 기간 : 2007. 11. 20(화) ~ 2008. 1. 27(일)
  ㅇ전시 장소 : 상설전시 역사관
  ㅇ전시 유물 : 이현보 초상화(보물 제872호) 등 총 20건 30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은 오는 11월 20일(화)부터 2008년 1월 27일(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에서 특집전시 <때때옷의 선비,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를 개최한다. 농암 이현보 집안의 종택 유물들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중 소장품을 널리 소개하고, 이들 유물에 내재한 우리 역사의 여러 면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친근한 소통 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유교의 나라 조선을 이끈 선비들은 학식과 교양 외에도 권력 앞의 당당함과 몸에 밴 도덕성, 출세나 벼슬에 대한 초연함을 지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어부가(漁父歌)’로 잘 알려진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 1467~1555)도 문인(文人)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훌륭한 선비였다. 그는 소신 있는 신하이자 백성을 소중히 여긴 목민관(牧民官)이었으며, 살가운 효성을 보인 아들이요, 벼슬과 출세에 매달리지 않은 자유인이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이현보의 삶을 살피고, 이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선비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보려는 것이다. 전시는 이현보의 삶에서 특징적인 부분들을 보여주되, 되도록 생애의 시간적 전개를 살릴 수 있는 7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새내기 사관(史官)’에서는 소신에 찬 당당한 관리의 면모를, 이어 ‘소주 담은 질그릇’에서는 호방하고 질박한 외모와 맑은 인품, 그리고 동료 관리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 세 번째 주제 ‘보내고 싶지 않은 사또’는 청렴한 민본주의자로서의 지방관 이현보를, 네 번째  ‘이런 효도’에서는 가슴에서 우러난 이현보의 효성을 살폈고, 그의 은퇴에 대해서는 다섯 번째 주제 ‘낙향’에서 알아보았다. 이어 만년의 지조와 강호지락(江湖之樂), 그리고 그 문학적 성과와 임종에 대해서 여섯, 일곱 번 째 주제인 ‘강호에서’와 ‘남겨진 노래’에서 살펴보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농암종택 유물 중에는, 16세기 전반에 그려진 이현보 초상화(보물 제872호)를 비롯하여, 은대계회도(銀臺契會圖)와 홍패를 포함한 다수의 전적류(보물 제1202),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현보 만년의 편지와 중종(中宗)이 하사한 금서대(金犀帶) 등이 들어 있어, 흔치 않은 실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들 외에도 표암 강세황의 도산도(陶山圖, 보물 제522호)를 비롯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일부와 『동각잡기(東閣雜記)』 등 국립중앙도서관 소장품도 함께 전시된다.

원칙 없이 대립·갈등하고, 물질이나 권세로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기 쉬운 오늘날, 농암 이현보는 올곧으면서도 따스하고, 욕심 없이 담박하면서도 멋이 넘치는, 자유롭고 살가운 선비로 다가올 것이다. 농암 이현보 집안의 종택 유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가, 각 문중이 소장한 귀한 역사 유물을 일반에 널리 소개하는 작업의 일환이자,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인 선비 정신과 그 문화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작은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전시와 관련된 강연회가 12월 14일(15:00~16:30)에 개최될 예정이다. 강연회 주제는 농암 이현보와 선비 문화이며, 강사는 주승택 교수(안동대학교 한문학과)이다.



 

경상도 관찰사 시절의 초상화
옥준상인(玉峻上人), 조선(朝鮮) 중종 32년(1537), 126.0×105.0cm, 보물 제872호, 농암종택

이현보의 경상도 관찰사 시절(71세) 초상화로서, 특유의 크고 거무스름한 얼굴은 거칠 것 없는 당당함과 호방함이 느껴진다. 대구 동화사의 화승(畵僧) 옥준상인(玉峻上人)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이 그림은, 벼루갑과 서책이 놓인 경상(經床), 손에 쥔 불자(拂子), 허리띠 장식과 높은 모자 등 16세기 고위 지방관의 복식과 소도구를 보여주고 있어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인물의 전체 분위기와 달리 유난히 가늘고 여성스런 손가락은 불화(佛畵) 속 보살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날을 아껴 효도하겠다는 뜻의 현판
조선후기(朝鮮後期), 59.3×126.0cm, 농암종택

이현보는 46세 때인 중종 7년(1512), 고향 집 옆 분강(汾江) 기슭의 농암(聾巖) 바위 위에 애일당(愛日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명절마다 이 곳에서 때때옷 차림으로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렸다. 이 현판은 그 애일당에 걸려 있던 것으로, 애일당이란 이름은 얼마 남지 않은 날을 아껴[愛日] 어버이께 효도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현판 자체는 후대의 것이지만, 글씨는 이현보 당시의 그것과 동일하다. 글씨 쓴 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현보의 제자가 중국의 제2 명필에게 받아왔다는 얘기가 전한다.

 

부모와 고을 노인들을 위한 양로 잔치를 그린 그림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보물 제1202호) 중에서]
작자 미상, 조선(朝鮮) 19세기, 27.7×42.6cm, 농암종택

중종 14년(1519) 안동부사(安東府使) 이현보(53세)가 중양(重陽 : 음력 9월 9일)을 맞아 부모와 안동의 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양로 잔치를 그린 그림이다. 이 잔치에는 이현보의 양친을 주빈(主賓)으로 하여, 80세가 넘은 수백 명의 노인들이 남녀귀천 없이 초대되었는데, 이곳에서도 이현보는 부모를 위해 때때옷을 입었다. 이 그림은 당시의 상황을 후대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떠나는 이현보에게 임금이 하사한 금서대(金犀帶)
조선(朝鮮) 중종 37년(1542), 띠폭 3.5cm, 시도유형문화재 63호(안동시), 농암종택

낙향하는 이현보에게 중종(中宗)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관복 띠이다. 띳돈(띠의 납작한 장식)을 물소뿔로 만든 이 띠는 당초 금포(錦袍 : 비단 도포)와 함께 하사되었으나 금포는 남아 있지 않다. 본래 서대(犀帶), 즉 물소뿔 장식을 쓴 띠는 1품관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낙향 당시 2품관이던 이현보에게는 임금이 특별한 은사(恩賜)로 내려준 것 같다. 다만 복식 규정이 엄격히 지켜진 것이라면 명종 4년(1549)에 명종 임금이 이현보의 품계를 숭정대부(崇政大夫 : 종1품 하)로 올려줄 때 하사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고향 분강촌(汾江村)이 보이는 도산(陶山) 그림
강세황(姜世晃), 조선(朝鮮) 영조 27년(1751), 26.8×138.0cm, 보물 제522호,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2672)[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보물 제1202호) 중에서]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와병 중에 있던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부탁을 받고 도산(陶山)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가운데 부분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이 보이고, 그 왼쪽에 이현보가 은퇴 후 생활하던 분강촌(汾江村)이 묘사되어 있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이 곳을 “도원(桃源)”이라 표현하였다. 그림에 ‘분강촌(汾江村)’, ‘분천서원(汾川書院)’, ‘애일당(愛日堂)’ 등의 지명과 건물 명칭이 표기되어 있다. 본래 분강촌은 도산서원에서 1Km 가량 하류 지점에 위치하였으나, 훗날 안동댐의 건설로 옛 모습을 찾을 길 없게 되었다.
※ 도원(桃源) :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 무릉도원(武陵桃源).

 

타계 1년 전에 쓴 편지
이현보(李賢輔), 조선(朝鮮) 명종 9년(1554), 20.5×30.0cm, 농암종택

이현보가 타계하기 1년 전인 명종 9년(1554)에 사돈 김유(金綏, 1491~1555)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의 자식 혼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다음날, 혼사를 다시 한 번 축하하고, 전날 잔치 자리에서 감기를 염려하여 일찍 빠져나온 것에 대한 해명도 하고 있다. 아직 미혼의 자손이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웃으며 밝히는 모습이 예의 시원시원한 성품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