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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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의 옹관묘(甕棺墓)
  • 전시명

    한국(韓國)의 옹관묘(甕棺墓)

  • 전시장소

  • 전시기간

    1992-11-06~199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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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전시장소 : 국립광주박물관

ㅇ 전시내용 : 옹관묘 또는 독무덤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무덤쓰기의 한 방식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체 즉 주검이나 뼈를 묻은 토기를 말하는 옹관(甕棺)은 넓은 의미로는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든지 흙으로 빚어 구운 것에 주검을 묻는 것을 말한다. 한편 뼈만을 추려서 묻은 것은 뼈단지(骨壺), 기와를 사용하였으면 기와널(瓦棺), 집이나 신발·배 모양의 네모진 형태의 것은 토관(土棺)이라고 부르고 있어 좁은 의미의 옹관과 구별하고 있다.
인류가 토기를 만들어 쓰게된 것은 정착생활의 단계에 들어선 신석기시대인데 생활용기로 토기를 생산하면서 주검을 묻는데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中國)에서는 양사오(仰昭)문화의 시안 빤포춘에서 집단적으로 발견된 바 있으며 일본(日本)에서도 신석기단계인 죠몽시대 중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시기의 옹관묘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송국리형(松菊里形) 토기문화권(土器文化圈)안에서만 발견되고 있는데 토기를 바로 세워묻고 그 위에 판돌을 덮은 직립식(直立式)에 바닥이나 몸전체의 아랫부분에 조그만 구멍을 일부러 뚫어 놓았다. 이러한 형태의 옹관묘는 공주군 남산리, 송학리에서도 확인된바 있다.
초기 철기시대에 새로이 등장하는 이음식 옹관묘는 외부로부터 들어 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옹관묘라는 모제는 ?쉽게 쓸 수 있는 것이므로 자주적(自主的)으로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이시대의 옹관(甕棺)은 대체로 크기가 비슷한 2개의 토기(土器)로 아가리를 맞대거나 약간 삽입 시킨 이음식과 주옹에 막음용 토기를 결합시킨 합개식(合蓋式)이 많지만 하나의 토기를 옆으로 뉘어 주검을 넣고 돌로 아가리를 막은 외독 무덤도 있으며 일부지역에서는 3개의 토기를 이어 붙인 옹관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에 이르면 철기가 많이 보급되고 농경이 발달하면서 밀폐된 가마에서 구운 토기가 마들어지고 묘제(墓制)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이 사라지고 널무덤, 덧널무덤, 작은돌덧널무덤이 나타나고 있다. 원삼국시대의 옹관묘는 나무널무덤이나 작은돌덧널무덤과 더불어 쓰인 경우가 많다.
옹관묘는 거대한 규모의 분구를 갖춘 고분(古墳)이 축조되는 삼국시대에도 이루어지는데 영산강유역의 경우 그것이 고분 그 자체로 크게 발전한 반면 이외의 북방에서는 다른 중심의 묘제에 종속되거나 부수되어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佛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반에 수용되고 확산되면서 묘제상에도 화장(火葬)의 풍습으로 화장골호(火葬骨壺)가 널리 쓰이고 이후 어린아이의 주검을 이장(理葬)하는데 부분적으로 옹관묘가 쓰여지고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독특한 묘제인 '옹관묘 특별전시'에는 부여 송국리 출토 옹관, 광주 신창동·삼천포 늑도·김해 예안리 등에서 출토된 옹관, 화순(和順)에서 출토된 현대(現代) 옹관과 토기류·옥류(玉類)·칠기류(漆器類) 등 함께 출토된 유물·나주(羅州) 신촌리(新村里)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金銅冠)과 금동신발도 전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