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특별전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
  • 전시명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

  •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고려실

  • 전시기간

    2006-07-11~2006-08-27

  • 담당부서

    전시팀 서성호

    (02-2077-9275)
  • 전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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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별전5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기간 : 2006.7.11(화) ~ 8.27(일)

 

전시 개요

묘지명이란 말 그대로 무덤에 남기는 기록입니다. 그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 무덤의 주인공은 원래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다갔는지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기록인 것입니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발견된 지석도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묘지명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무덤 주인공의 가계와 벼슬, 가족관계, 인품과 주요 행적 등을 기록한 일반적인 의미의 묘지명은 고려시대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묘지명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훨씬 많이 만들어지고 그 형태도 다양해집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가치 면에서 고려의 묘지명은 조선의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고려시대의 역사와 삶을 전해주는 자료 자체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현존 고려 묘지명들 가운데 다수가 고려의 역사를 이끌어간 고려 지배층 유명인사들의 것으로서, 『고려사』 등 문헌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고려 묘지명을 가장 많이 소장한 기관으로서, 올해 다섯 번 째 기획특별전으로 “다시 보는 역사 편지, 고려 묘지명”전을 개최합니다. 이 전시에서 고려 묘지명들은 고려의 문화와 역사를 특징 지워주는 몇 가지 범주로 나뉘어 전시됩니다. <해동천자의 나라>, <가족과 여성>, <정신세계> 등의 주제들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번 전시 기간에는 고려시대 묘지명의 현황과 가치, 그리고 그것에 나타난 사회상에 대해 한림대학교 김용선 교수님의 강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는 큰 사료적 가치를 가진 고려 묘지명의 공개라는 의미와 함께, 고려시대를 이끌어간 지배계층 인사들이 남긴 역사 편지를 통해, 고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과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한 사람의 생애와 그 기록의 문제를 성찰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표 전시 작품>

복녕궁주묘지명 (신수 5854)

고려(高麗) 인종 11년(1133)

 

 

고려 숙종(肅宗, 재위 1095~1105)의 넷째 딸이자 예종(睿宗)의 친동생인 복녕궁주 왕씨(福寧宮主 王氏 : 1096 ~1133)의 묘지명이다. 이 묘지명은 중국 송나라의 연호를 쓰면서도 복녕궁주를 “천자의 딸”이라고 쓰고 있다. 사대(事大) 외교의 형식 속에서 스스로를 천자의 나라로 자부한 예이다.

 

<묘지명 중에서>

천자(天子)의 따님이여, 보름달 같으셨네.

 저 흰 구름 타고 하늘 위에 오르셨는가.

 

 

'복녕궁방고’명 은제접시 (덕수 131)

-고려(高麗) 12세기

-최대지름 11.5, 높이 2.4cm

 

 

복녕궁주의 거처인 복녕궁방에서 쓰던 은제 접시이다. 접시 바깥쪽 윗부분에 ‘복녕궁방고(福寧宮房庫)’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복녕궁방의 창고에 귀속된 물건이란 뜻이다. 고려시대의 궁방은 토지를 비롯한 별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복녕궁주는 그 재산이 당시의 종실 가운데 가장 많았다고 한다.

 

 

호장지원녀낙랑김씨묘지명 (덕수 2580)

연대 미상

개경 부근 출토

 

 

경주(慶州) 호장(戶長 : 향리의 우두머리) 김지원(金智源)의 딸 김씨의 묘지명이다. 아버지의 신분만 밝힌 것으로 보아 그녀는 미혼이었을 것이다. 딸에 대한 애틋함인 듯, 단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 묘지명은 품관 계층의 일반적인 묘지명과 달리 그 내용이 매우 간단하다. 개경 근처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데, 경주 향리의 딸이 이 지역에 묻히게 된 연유는 잘 알 수 없다.

 

 

염경애 묘지명 (신수 5843)

고려(高麗) 의종 2년(1148)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최누백(崔婁伯 : ?~1205)이 죽은 첫 부인 염경애(廉瓊愛 : 1100~1146)를 위해 직접 지은 묘지명이다. 수원 향리의 아들로서 과거를 통해 벼슬에 오른 최누백은 이 묘지명에서, 가난한 하급 관료 시절 가계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아내와의 대화를 추억하고, 그녀를 결코 잊을 수 없다며 애통해한다. 아내를 잃은 아픔과 외로움이 컸던지 얼마 후 그는 재혼하여 새로 3남 2녀를 둔다.

 

<묘지명 중에서>

아내의 이름은 경애(瓊愛)라… 평소에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뒷날 불행히도 내가 천한 목숨을 거두고, 당신은 많은 녹을 받아 모든 일이 잘 되더라도 내가 살림하는 재주가 없었다 하지 마시고 가난을 이겨내던 일은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고는 크게 탄식을 했다.

믿음으로 맹세하건대 당신을 감히 잊지 못하리라.

함께 묻히지 못함이 매우 애통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