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金剛內山總圖, 《辛卯年楓嶽圖帖》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섬유 - 견
- 작가
정선(鄭敾, 1676-1759)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크기
세로 35.9cm, 가로 37cm
- 소장품번호
덕수903 - 11
이 그림은 연대가 밝혀진 정선(鄭敾, 1676~1759)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1711년(36세)에 그려진 것이다. 이 화첩이 제작되게 된 배경은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지지하던 사천(?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과 관계가 있다. 정선의 나이 35세 되던 1710년에 이병연은 금강산 초입인 김화(金化)에 현감으로 부임하고, 바로 다음해인 1711년에 정선은 금강산을 방문한다. 이때 정선은 백석(白石)이란 아호(雅號)를 가진 인물과 동행하며 13폭의 금강산 일대 경치를 그려 《신묘년 풍악도첩》을 남기게 된다. 금강내산(金剛內山)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그린 듯한 시점으로 포착하였다. 구도적으로는 관찰한 것을 되도록 많이 그려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주객과 강약의 안배가 안 되어 평이하고 산만한 양상을 보이기도 하며, 정선 회화 후기의 과감한 필치보다는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그려졌다.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봉우리들 때문에 상악(霜嶽)이라고도 불렸던 금강산의 특징을 뾰족한 형태와 흰 채색으로 묘사하였는데, 아직 정선 특유의 힘찬 수직준(垂直?)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화법 모색기의 양상을 보인다.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적어놓고 길을 뚜렷이 표시한 것은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말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