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수어영상] 한국 3대 고미술품 수장가의 선택 - 기업가 이홍근
  • 등록일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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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영상] 한국 3대 고미술품 수장가의 선택 - 기업가 이홍근

[수어영상] 한국 3대 고미술품 수장가의 선택 - 기업가 이홍근

그는 오래전 떠났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안팎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의 유산을 만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입상>과 <장명등>도, 청자실의 귀한 고려청자도, <고종어진>도 그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유산이다. 5천 건이 넘는 문화재를 기증한 인물 바로 동원 이홍근 선생이다.
개성 출신인 이홍근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종합물산회사와 양조회사를 운영하며 젊은 나이에 이미 크게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일찍부터 관심을 가진 것이 우리 문화재였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이홍근 선생은 돈이 많다고 수집한 것이 아니에요. 문화재에 애정을 가지고 ‘문화재를 수집하는 게 애국하는 일이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계셨어요.

 

선생은 개성 출신 문화재 관련 인사들과 교류가 많았다.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 인터뷰>
고유섭 선생도 개성 분이고, 황수영 선생도 개성 분이고, 최순우 선생도 개성 분이니까.

 

이홍근 선생은 30대부터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화재가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스스로 안목을 쌓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다.
누구의 감정을 받지 않고 내 눈으로 보고 샀다. 그래야만 감식안이 생긴다.
반세기 동안 문화재 수집에 몰두한 이홍근 선생은 한국 3대 고미술품 수장가로 꼽힌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는 5천여 건. 하루에 한 점씩 사들인다 해도 15년 가까이 걸리는 방대한 양이다. 동원 컬렉션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정수영의 해산첩, 단 세 점만 남아있는 평탈 기법 거울인 금은 평탈 보상화 무늬 거울, 그 외에도 수많은 도자기와 서화 등 문화재들이 그의 안목 덕분에 가치를 되찾았다.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인터뷰>
우리나라 미술사 전반을 이분의 소장품만 가지고도 서술할 수 있을 만큼 두루 갖춘 그런 컬렉션입니다. 한 화가의 기준작이면서 대표작인 작품을 기증하셨고 그 자체는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비어있는 부분을 메꿀 수 있는 그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죠.

 

동원, 미술관을 만들다.
한국 최초 기업 미술관 동원미술관 설립
1967년, 이홍근 선생은 자택에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미술관인 동원미술관을 설립하고 습도와 온도를 관리할 수 있는 수장고를 만들었다. 수집품들은 딸과 며느리가 바느질해서 만든 비단 주머니에 싸서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이홍근 선생이 박물관을 하려고 이층집을 잘 지었어요. 이홍근 선생 거실이 박물관의 2층이에요. 항상 거실에 계시거든요. 이홍근 선생이 거실에 앉아계시면 앞을 지나가야지 수장고에 들어갈 수 있어요.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곳에 계셨어요.

 

이홍근 선생의 문화재 사랑은 각별했다. 이정의 <대나무> 5폭이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직접 일본 왕실에 출입하는 표구상을 찾아가 표구를 요청할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한번은 일본의 한 재벌총수가 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를 사겠다고 사흘을 조르고 돌아가는 공항에서도 전화를 걸어서 간청했지만 이홍근 선생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우리 문화재를 해외로 유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문화재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다. 문화재는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집만큼 정성을 다 한 보존.
수집 문화재는 자손에게 상속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의 문화사업으로 영구히 남는 일이 되어야 한다.

 

기증으로 남긴 영원한 유산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1980년, 1995년, 2002년, 2003년 네 차례에 걸쳐 총 5205건, 10192점의 유물을 기증했다. 은행 주식 약 7만 주를 출연해 한국 고고학과 미술사 연구에 기여한 연구소도 설립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이홍근 선생이 자식들에게 ‘이것은 국가 것이니까 너희들 것은 없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들 이상용(이홍근 선생 둘째 아들) 선생은 이홍근 선생의 평소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인터뷰>
이상용 씨가 ‘정 선생, 빨리 가져가시오.’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 거죠.

 

<이수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동원 이홍근 선생님 컬렉션이 박물관에 들어온 다음에 굉장히 연구가 활성화됐는데요. 선생님의 후손인 이상용 선생님이 기금을 대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목록집이 발간됐습니다. 이상용 선생님은 아버님의 뜻을 이어가길 원하셨고 저희한테 계속 연구비 지원을 해주실 정도로 한 번에 끝나는 기증이 아니었던 거예요.

 

한국 3대 고미술품 수장가의 마지막 선택, 기증.
이홍근 선생의 이야기는 오늘날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의 문화재 사랑과 노력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는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문화재 사랑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동원의 유산
‘선생 수집의 문화재가 이제 이렇게 우리 민족문화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민족 전체가 보고 배우고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은 다 이 선생이나 선생 가문의 보람과 경사일 뿐 아니라 나라와 우리 전체의 기쁨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 동원 이홍근 선생 기념비 비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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