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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식리총 신발
  • 등록일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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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식리총 신발 수어영상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식리총 신발



<자막>

금동신발은 1924년 경주의 어느 무덤에서 발굴된 것인데, 무덤 안에서 주인공과 관련된 자료가 나오지 않아 무덤 이름을 한자로 식리총이라고 지었습니다.
식리라는 말은 어려운 한자이지만, 쉬운 우리말로 하면 화려하게 꾸민 신발이라는 뜻입니다. 신라 무덤에서는 주인공을 알려주는 정보가 나오지 않아, 주로 대표 출토품에다가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 ‘총’자를 붙여 무덤 이름을 짓습니다.
식리총은 무덤 출토품 중 식리가 가장 유명한 유물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습니다.

 

1924년에 일제는 새로운 금관을 찾기 위해 금관총 옆에 있는 2기의 무덤을 새롭게 조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국보 기마인물형토기가 나온 금령총이고, 나머지 하나가 금관보다 더 화려한 금동신발이 나온 식리총입니다.

 

금동신발은 3매의 금동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앞판과 뒤판이 측면에서 결합되는 전형적인 신라 금동신발 제작방법과는 다른 백제의 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좌우 측판이 앞과 뒤에서 결합되는 방법으로 3매의 금동판은 갖가지 무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본적인 무늬 구성은 바깥 테두리 쪽에 불꽃무늬, 안쪽에는 거북등무늬로 구획한 후 그 안에 다양한 동물과 새 무늬 등을 배치하였습니다. 좌우 측판의 동물무늬에는 현무, 주작, 호랑이 등이 확인되고, 특히 발뒤꿈치부분에는 용무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장 화려한 무늬가 배치된 바닥판의 경우, 뿔을 가진 도깨비,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새, 그리고 날개 달린 물고기,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가진 가릉빈가 등 상상속의 동물무늬, 그리고 11개의 연꽃무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무늬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뜻을 금동신발에 담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즉 죽은 이가 편안히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긴 것입니다. 다양한 무늬들로 가득 찬 금동신발은 신라, 고구려, 백제를 통틀어 금동신발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위치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참 아까 전에 이 신발의 제작 기술은 백제라고 했습니다. 그럼 백제의 신발인데, 왜 신라 무덤 안에서 발견되었을까요? 무덤 주인공이 혹시 백제 사람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많이 있습니다만 저는 아마도 백제 왕실에서 신라 왕실로 선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백제 무덤에서도 신라 유물이 가끔 나오는데 이 시기가 신라와 백제가 동맹을 맺은 나제동맹의 시기이고, 이 기간에는 양국이 다양한 교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리총의 주인공은 백제와 긴밀한 교류를 담당했던 사람, 즉 오늘날로 보면 외교관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식리총은 왕릉 아주 가까운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로 볼 때 식리총의 주인공은 당시 왕으로부터 아주 외교 능력을 인정받았던 뛰어난 신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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