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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 다른명칭

    斥和碑

  • 국적/시대

    한국

  • 재질

    돌 - 화강암

  • 분류

    사회생활 - 기념 - 비 - 기타

  • 소장품번호

    본관4371

19세기 중엽 서구 열강은 청나라와 일본의 문호를 개방시켰고, 이어 조선에도 접근하였다. 서해 연안에는 이양선(異樣船)의 출몰이 잦아 민심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청나라와 일본에서 들려오는 서구 열강과의 협약, 문호 개방 등의 소식은 결국 조선이 쇄국정책을 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척화비는 바로 이러한 쇄국정책을 나타내는 비석이다. 1871년(고종8)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이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웠다. 비석 표면에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라는 글을 큰 글자로 새겼고, 그 옆에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1866)에 짓고 신미년(1871)에 세우다]라는 글자를 작게 새겼다. 1882년(고종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홍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자, 일본공사의 요구에 의해 척화비들은 철거되거나 파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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