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淳妃金寶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금속 - 금
- 분류
전통과학 - 인장 - 인장 - 새인
- 크기
높이 6.8cm, 가로 10.2cm, 세로 10.2cm
- 소장품번호
신수211
고종(高宗)의 황제의 후궁 순비(淳妃) 엄씨(嚴氏: 1854생)의 인장이며 ‘淳妃之印(순비지인)’이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 (1901년 제작) 순비는 8세 때 궁녀로 들어와 이후 명성황후를 모시는 상궁(정 5품)이 되었다. 그러나 1897년 10월 고종황제의 아들이자 1907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로 책봉될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 1897-1970년)을 낳은 뒤 이틀만에 종 1품 귀인(貴人)이 되었고, 삼년 뒤에는 정 1품인 순빈(淳嬪), 1901년 10월에는 비(妃)로 올라 순비(淳妃)로 올랐으며 처소는 경선궁(慶善宮)이라 하였다. 또 1903년에는 황제의 후궁으로서 가장 높은 황귀비(皇貴妃)로 올라 소위 엄귀비가 되었다. 순비는 명성황후가 없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황후 역할을 대신하였으며 서울에 양정의숙, 진명여학교, 명신여학교(지금의 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11년 돌아가신 순비는 황후 신분이 아니므로 즉 후궁이므로 그 신주(神主)가 종묘에 모셔질 수 없었다. 이에 왕을 낳은 후궁의 신주는 따로 사당을 지어 모셨던 조선 왕실의 전통에 따라 순비의 신주는 덕안궁(德安宮)이란 사당을 지어 모셔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