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남계우필 선면병풍, 南啓宇筆扇面屛風, 백선군접, 百扇群蝶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섬유 - 견
- 작가
남계우, 박기준
- 분류
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크기
세로 143.9cm, 가로 34.5cm
- 소장품번호
덕수905
백선도 네 폭과 화접도 네 폭을 한 폭씩 교대로 배치한 8폭 병풍이다. 화접도는 한 폭에 ‘一濠’의 인장(印章)이 있어 나비를 잘 그렸던 남계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남계우는 본관이 의령으로 초명이 영시(永詩), 자가 일소(逸少), 호가 일호(一濠)이다.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의 5대손으로 음관으로 관직을 지냈다.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南蝶)라고 불리었고, 평생 나비와 꽃 그림만을 즐겨 그렸다.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묘사와 화려한 채색이 그의 특징이다. 백선도에는 인장이나 관지가 없어 확정할 수는 없으나, 박기준(朴基駿)의 다른 작품과 유사한 구성과 화풍을 보여 그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박기준은 본관이 밀양(密陽), 자가 기숙(驥叔), 호가 운초(雲樵)이다. 화원으로 벼슬이 군수에 이르렀다.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에는 부채 그림을 잘 그려 둥근 부채와 접부채를 한 폭 안에 섞어 그리고 부채에다가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공교롭고 전아함이 특히 뛰어났다고 했다. 현재 병풍의 형태는 한 번 이상의 개장을 거친 것으로 생각되며, 두 화가의 작품이 어떤 연유로 하나의 병풍으로 장황되어 있는지, 본래부터 하나의 병풍을 위한 그림이었는지 아니면 별개로 그려진 것을 합하였는지 등은 알기 어렵다. 사대부인 남계우와 화원인 박기준이 함께 그렸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 별개로 그려진 작품 또는 각각의 병풍에서 산락된 것을 후에 하나의 병풍으로 장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9세기는 미술품이 상품으로서 다양하게 유통되었고, 백납병이나 잡화병 등 서로 다른 분야의 그림들을 취향에 따라 나누거나 합하여 재배치하는 것도 유행했던 만큼 수요자가 두 화가에게 따로 그림을 의뢰했더라도 최종 결과물을 하나의 병풍으로 장황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병풍은 백선도와 화접도의 장식적인 면모가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감각미를 창출하고 있는데, 당시 화단 일각에 화려하고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