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궤열람> 오례별 > 존호(尊號)·존숭(尊崇)>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1686년(숙종 12) 인조(仁祖)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1624~1688)에게 존호(尊號)를 올린 과정과 절차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특별히 경사가 있거나 왕의 특별한 업적이 있을 때 생존한 왕이나 왕후에게 휘호를 올리는 의식을 행했는데, 이를 존숭의식이라고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왕이나 왕후에게 존호를 올릴 때에는 추급해 올린다는 의미에서 추상존호(追上尊號) 의식이라고 하였으며, 존호를 올려 지위를 변경할 때에는 추숭(追崇)의식이라고 하였다. 존호를 올리기 위해 설치된 도감은 존호도감(尊號都監), 존숭도감(尊崇都監), 진호도감(進號都監), 상호도감(上號都監)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장렬왕후는 본관이 양주(楊州)이며,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 조창원(趙昌遠)의 딸이다. 1638년(인조 16) 12월 원비였던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에 이어 계비로 책봉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인조가 승하한 후 효종연간에는 왕대비로, 현종(顯宗)연간과 숙종연간에는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가장 웃어른 역할을 하였고, 여러 차례 존호를 받았다. ‘자의(慈懿)’라는 존호가 그 첫째여서 통상 자의대비로 불리웠다. 1659년(현종 즉위) 효종(孝宗)의 국상과 1674년(현종 15) 효종비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국상 때에 각각 자의대비가 어떤 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두 차례의 예송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1688년(숙종 14) 8월 26일 창경궁(昌慶宮) 내반원(內班院)에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능호는 휘릉(徽陵)으로 동구릉 안에 있다.
이 의궤는 1686년 윤4월부터 5월까지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서 장렬왕후에게 네 번째 존호를 올린 절차와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이 해에 장렬왕후는 주갑(周甲)을 맞이하였다. 숙종(肅宗)은 지존의 주갑에 존호를 올리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이에 대한 대신들의 수의(收議)를 살펴본 후 존호의식을 거행하도록 하였다. 존호는 ‘강인(康仁)’으로 결정되었다. 이보다 앞서 받은 ‘자의공신휘헌(慈懿恭愼徽獻)’이라는 여섯 자 휘호에 두 글자가 더해져 모두 여덟 자의 존호를 받게 되었다. 존호도감의 일은 민정중(閔鼎重)이 도제조로서 총괄하였다. 존호의식은 대왕대비의 연여와 의장을 진설한 공간에서 대왕대비전에 옥책과 옥보를 올리고, 숙종과 중궁전, 외명부가 각각 대왕대비에게 각각 하례를 올리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옥책문의 제술은 대제학 이민서(李敏敍)가 서사는 조사석(趙師錫)이 맡았다. 악장문은 김만중(金萬重)이 지었고, 옥보의 전문(篆文)은 김수증(金壽增)이 썼다. 존숭도감 도청(都廳)에서는 예행연습[습의(習儀)] 및 존숭의식 준비와 관련하여 왕의 재가를 받고, 각 행정 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받는 등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도감의 사무는 세 부서에서 나누어 맡았다. 우선 일방(一房)에서는 옥책 8첩 및 관련 기물의 제작 및 수리, 하례를 올릴 때 차비의녀의 대령, 대전·중궁전·내외명부의 치사(致詞)를 첩으로 꾸며 제작하는 일도 담당했다. 이방(二房)에서는 옥보와 보통(寶筒) 등 관련 기물의 제작 및 수리를 담당하였다. 삼방(三房)에서는 책보를 올릴 때 쓸 가마와 의장의 제작 및 수리를 맡았다.
의궤 권두에 목록이 있다. 서두에 존숭의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한 윤 4월 8일자 비망기(備忘記)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 존숭도감 도청의궤가 있다. 도청의궤는 존숭의식의 거행 날짜와 장소, 습의 일정 등을 기록한 부분으로 시작되고 도감의 일을 맡은 관원의 명단을 적은 이조별단(吏曹別單)으로 이어지는데, 시일 부분과 도제조와 제조의 명단을 기록한 한 면이 결락되었다. 이어 도감의 운영 원칙을 적은 도감사목(都監事目)이 나온다. 계사질(啓辭秩)에는 1686년 윤 4월 12일부터 5월 12일까지 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계사(啓辭)와 왕의 비답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 예관질(禮關秩)에는 의식 절차와 관련하여 예조(禮曹)에서 올린 문서들이 실려 있다. 예관질 말미에 정존호백관상전의(定尊號百官上箋儀), 상존호책보의(上尊號冊寶儀), 상존호후전하친진표리하의(上尊號後殿下親進表裡賀儀), 상존호후중궁전친진표리하의(上尊號後中宮殿親進表裡賀儀), 상존호책보후명부하의(上尊號冊寶後命婦賀儀) 등 존숭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를 기록한 의주(儀註)가 있다. 이문내첩질(移文來牒秩), 품목질(稟目秩), 감결질(甘結秩)에는 인력 동원이나 물자 조달 등 업무 협조를 위하여 도감과 여러 관서가 주고 받은 문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의궤 편찬과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해 놓은 의궤사목(儀軌事目)이 나온다. 의궤는 어람용(御覽用) 1건과 의정부(議政府), 춘추관(春秋館), 예조, 강화부(江華府), 태백산(太白山), 오대산(五臺山), 적상산성(赤裳山城)에 분산 보관할 분상용 7건, 총 8건이 제작되었다. 다음 존숭의식이 모두 끝난 후 도감의 일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을 적어 올린 서계(書啓) 및 이들에 대한 포상 내역을 기록한 전교(傳敎)가 실려 있다. 이상의 도청의궤 다음에는 일방, 이방, 삼방 등 각방의궤(各房儀軌)가 실려 있다. 각방별로 담당한 일의 내역과 담당자들의 명단을 적고, 작업의 진행 과정, 소요 물품, 공장의 명단 등을 기록하였다. 일방의궤에는 옥책, 옥책함, 외궤, 배안상(排案牀), 독책상(讀冊牀) 등의 도설이, 이방의궤에는 옥보, 보통, 주통, 보록(寶盝), 주록(朱盝), 호갑(護匣) 등의 도설이 있다. 반차도는 없다. 의궤 마지막 장에는 의궤 편찬을 관장한 도제조, 제조, 도청, 낭청의 관직명과 성, 수결(手決)이 있다.
이 의궤는 1686년에 거행된 장렬왕후 존숭의식에 대해 기록한 8건의 의궤 중 가장 정성스레 제작된 어람용 의궤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7건의 분상용 의궤 중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의정부본(〈奎 14889〉), 태백산본(〈奎 13262〉), 오대산(〈奎 13263〉), 소장처 미상본(〈奎 13261〉) 등 4건이 소장되어 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적상산본(〈K2-2834〉)이 소장되어 있는데 내용상의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이 어람용 의궤의 도청의궤 첫 면이 결락되었다. 저주지를 사용한 여타 분상용 의궤와 달리 초주지를 사용하여 오랜 세월에도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도화서 화원이 일일이 그린 붉은 인찰선(印札線)에 특별히 발탁된 서사관(書寫官)이 쓴 단정한 글씨, 섬세하게 채색된 도설 등에서 특별한 정성을 엿볼 수 있다.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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