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용 · 봉황 장식 고리자루 큰 칼 – 대가야 지배자의 상징물:최은비

용·봉황 장식 고리자루 큰 칼, 1939년 발굴, 삼국 6세기, 잔존 길이 약 28.0cm, M310

용·봉황 장식 고리자루 큰 칼, 1939년 발굴, 삼국 6세기, 잔존 길이 약 28.0cm, M310

고리자루 큰 칼[環頭大刀]은 삼국시대에 널리 사용된 무기입니다. 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 장식이 있어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고령 지산동 47호(舊 39호) 무덤에서 출토된 고리자루 큰 칼은 둥근 고리뿐만 아니라 손잡이와 칼집까지 용과 봉황 모양으로 장식되었는데, 대가야 지배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리자루 큰 칼은 별다른 장식이 없이 나무와 철 등의 재료를 사용해 만듭니다. 이러한 형태의 칼은 중소형 무덤에서 종종 출토되며, 당시 일반 병사들이 실제 전쟁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고리자루 큰 칼 중에는 여러 장식을 더하고, 재질 또한 금이나 은을 사용한 것도 있습니다. 이는 발견되는 예가 많지 않으며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 무덤에서만 확인됩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된 고리자루 큰 칼은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상징적인 용도로써 지배자의 지위와 권력을 드러내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또한 지방 세력에게 하사함으로써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계층 체제 유지를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대가야의 유물

일제는 가야 유적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령 지산동 47호 무덤 역시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굴되었습니다. 1939년 조선총독부의 외곽 단체였던 조선고적연구회는 대가야의 중심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조사했습니다. 그중 47호 무덤은 봉분의 지름이 49.0m에 달하는 대형 무덤으로, 지산동 고분군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이 발굴에는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 사이토 다다시[齋藤忠] 등이 참여했는데 안타깝게도 보고서를 남기지 않아 상세한 조사 과정과 출토 유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유리건판 자료 가운데 고령 지산동 47호 무덤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있습니다. 무덤 안에서는 목 긴 항아리, 그릇받침, 굽다리접시 등 여러 종류의 대가야 토기가 발견되었고, 금귀걸이, 은팔찌, 금동제 화살통과 허리띠, 고리자루 큰 칼 등 다양한 금속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용·봉황 장식 고리자루 큰 칼의 출토 당시 모습, 일제강점기, 건판19947

용·봉황 장식 고리자루 큰 칼의 출토 당시 모습, 일제강점기, 건판19947

가야 금속공예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다

고령 지산동 47호 무덤에서 출토된 각종 금속 유물 가운데 용 · 봉황 장식 큰 칼은 가장 화려한 자태를 뽐냅니다. 칼의 몸체를 뜻하는 도신(刀身)의 끝부분은 사라졌지만 금과 은으로 장식된 남은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위엄을 드러냅니다. 이 칼의 손잡이 끝부분에는 고리가 달려 있으며, 고리 내부에는 용머리 모양 장식이 들어 있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용의 머리 위로 뿔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용머리 장식은 아말감 도금법으로 도금했으며 바깥 고리 또한 금장을 덮어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바깥 고리는 새김무늬[刻目文]로 면을 나눈 후 안쪽을 꽃무늬[花文]로 섬세하게 채웠습니다. 새김무늬가 교차하는 부분에는 둥근 홈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여기에 유리를 끼웠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같이 고리 장식과 손잡이 사이에 금구가 있는데, 여기에도 고리와 마찬가지로 새김무늬 장식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꽃무늬가 장식된 고리 부분과 달리 육각형으로 나뉜 내부에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개를 펼친 봉황무늬를 표현했습니다. 칼집의 입구인 금구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장식하고 금장을 덮었습니다. 칼의 손잡이를 둘러싼 판은 은으로 제작되었는데, 원통형으로 만든 후 겹쳐진 곳에 못을 박아 고정했습니다. 또한 표면에 사격자무늬를 연달아 투조하여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술이 활용된 용·봉황 장식 큰 칼은 당시 대가야의 모든 금속공예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 용·봉황 장식 큰 칼과의 관련성

용·봉황 장식 큰 칼은 삼국시대 백제 지역에서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무령왕릉 출토품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처음 가야 지역 무덤에서 용·봉황 장식 큰 칼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를 백제에서 제작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가야 유적에 대한 조사가 진전되고, 가야 지역에서 출토되는 용·봉황 장식 큰 칼에 대한 자료가 늘어남에 따라 이전에는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습니다.

가야의 용·봉황 장식 큰 칼은 대부분 대가야 지역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대가야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등에 비해 백제와 가까운 까닭에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용·봉황 장식 큰 칼을 제작하는 문화 또한 이러한 교류를 통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 시기의 대가야는 백제의 영향을 받아 백제의 용·봉황 장식 큰 칼과 유사한 형태의 칼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세력이 커지고 발전하면서 대가야만의 특징을 지닌 용·봉황 장식 큰 칼을 만들게 됩니다.

고령 지산동 47호 무덤에서 출토된 용·봉황 장식 큰 칼은 가야만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손잡이 끝부분의 고리와 내부 장식을 만드는 방식에서 가야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대가야는 고리를 만들 때 백제와는 달리 파이프처럼 속이 비도록 제작했습니다. 또한 고리와 내부 장식을 일체형으로 만드는 백제와는 다르게 고리 안쪽 장식을 따로 제작한 뒤 고리와 결합했습니다. 고령 지산동 47호 출토품은 고리 안쪽의 용머리 장식을 용의 얼굴과 뿔까지 따로 제작하여 결합한 구조입니다.

이렇듯 대가야는 백제에서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용·봉황 장식 큰 칼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점차 독자적인 형태와 기술을 발전시켜 백제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용·봉황 장식 큰 칼을 만들게 됩니다. 고령 지산동 47호 무덤에서 출토된 용·봉황 장식 큰 칼은 이러한 대가야의 발전된 금속공예 기술과 당시 대가야 지배자의 권위를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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