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청화 투각 모란당초무늬 항아리―귀하고 귀한 마음을 담아

불교를 믿는 문화권에서 상당히 일찍부터 널리 읽힌 경전 중의 하나가 바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하 『화엄경』)입니다. 부처가 되기 전의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잠긴 끝에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서술한 경전입니다. 다른 경전들이 부처의 말씀을 듣는 청중의 수준에 맞추어 다양한 예시나 비유를 들기도 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여러 보살(菩薩)의 행적을 소개하기도 하는 것과 달리, 『화엄경』에서는 석가모니가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된 바로 그 순간의 내면 상태와 깨달음의 위대한 경지를 직접 묘사하고 있습니다.

통도사 팔상도 초본 '수하항마도(樹下降魔圖)'-부처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 조선, 세로 230.5×145.0cm, 구10261-6

통도사 팔상도 초본 '수하항마도(樹下降魔圖)'-부처가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 조선, 세로 230.5×145.0cm, 구10261-6

더불어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까지 어떠한 수행을 거쳤는지, 부처와 같이 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어서 불교의 근본 철학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손꼽힙니다. 그런 까닭에 『화엄경』은 중국에 소개된 이래로 굵직굵직한 주요 불교 사상을 잉태해낸 기반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때부터 줄곧 불교 교학 연구와 신앙 및 수행의 근거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특히 목판 인쇄술이 발달한 고려시대 이후로는 경전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더욱 널리 유통되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는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증3458) 또한 목판으로 인쇄한 고려시대 경전입니다.

『화엄경』의 번역과 ‘정원본’

처음에 『화엄경』은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였다가 기원후 5세기 초 중국에 소개되면서 한문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북인도의 승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418~420년 동진(東晋)에서 전체 60권으로 번역한 것이 처음인데, 총 60권이라고 해서 ‘60화엄’, 동진에서 번역했다고 해서 ‘진본(晋本)’이라고도 부릅니다. 다음은 당(唐)나라 때인 695~699년에 우전국(于闐國) 출신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80권으로 번역한 것으로 ‘80화엄’ 또는 ‘당본(唐本)’이라고도 불리며, 당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당나라 국호를 주(周)로 바꾸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주본(周本)’이라고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번역된 『화엄경』은 796~798년 반야삼장(般若三藏)이 40권으로 완성한 것으로 ‘40화엄’ 또는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785~804)에 번역했다고 해서 ‘정원본(貞元本)’이라고 부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증3458)이 바로 이 ‘정원본’ 『화엄경』입니다.
사실 ‘정원본’은 원본 『화엄경』 전체를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화엄경』은 총 34개 또는 39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가장 마지막 단락이 「입법계품(入法界品)」입니다. 어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난 후 부처와 같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러한 경지를 이루기 위한 수행 방법을 터득해가는 이야기입니다. 53명이나 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신(神), 보살들을 만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수행법을 배워가는 여정이 구체적이면서도 매우 극적이어서 불교 경전 전체를 통틀어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선재동자가 보타락가산으로 가서 관음보살(觀音菩薩)을 만나는 장면은 고려와 조선시대 불화의 단골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 고려, (화면) 세로 80.0cm×42.7cm, 증9354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 고려, (화면) 세로 80.0×42.7cm, 증9354

이처럼 인기가 높았던 「입법계품」만을 따로 떼어내어 내용을 보완한 후 새로 번역한 것이 ‘정원본’ 『화엄경』인 것입니다.


제작 시기와 형태 특징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증3458)은 ‘정원본’ 전체 40권 중 20번째 권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 고려, (표지)31.0×12.0cm, 보물, 증3458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 고려, (표지)31.0×12.0cm, 보물, 증3458

납작한 나무판에 경전을 새긴 후 닥종이에 찍어낸 목판본입니다. 해인사(海印寺)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정원본’ 『화엄경』 목판(국보)을 바탕으로 후대에 다시 새겨 인쇄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에는 해인사의 목판을 고려 숙종(肅宗, 재위 1095~1105) 초에 만든 것으로 보기도 했지만, 최근 연구에서 13세기 중엽에 판각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증3458)은 그보다 조금 늦은 13세기 중엽 이후에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약 48.0×31.0cm 크기의 종이 17장을 순서대로 길게 이어붙인 후 종이 1장마다 4면이 나오도록 부채처럼 접고, 처음과 끝부분에는 종이를 두껍게 발라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접어서 책을 만드는 방식을 절첩장(折帖裝)이라고 하는데, 13세기 전후한 시기부터 고려시대 불교 경전에서 주로 보이는 특징입니다. 남색 표지에 금니(金泥)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제이십(卷第二十)”이라는 경전 제목을 쓰고 그 아래에 “정(貞)”이라고 표기했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 표지, 고려, 31.0×12.0cm, 보물, 증3458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 표지, 고려, 31.0×12.0cm, 보물, 증3458

“정”은 이 경전이 ‘정원본’이라는 표시이며, 경전 제목 위에 있는 따옴표 같은 부호는 불교에서 경전을 읽기 전에 외우는 주문인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표지를 펼치면 첫 줄에 경전 제목이 먼저 나오고, 두 번째 줄에는 이 경전의 번역자 이름이 나옵니다. “계빈국(罽賓國)의 삼장(三藏) 반야(般若)가 황제의 칙명을 받들어 번역하였다”라고 밝혔습니다.


내용과 의의

번역자 이름 다음으로 권20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선재동자가 35번째로 ‘보구호일체중생위덕길상신(普救護一切衆生威德吉祥神)’이라는 밤의 신을 만나 어떻게 해서 부처와 같은 해탈의 경지를 얻었는지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선재동자의 질문에 보구호일체중생위덕길상신은 한없는 시간 동안 세상에 출현하신 수많은 부처님에게 모두 공양한 끝에 해탈의 도(道)를 얻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선재동자는 보구호일체중생위덕길상신에게 절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이후로 권21부터 권40까지는 선재동자가 더 많은 인물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普賢菩薩)에게서 최종의 깨달음을 얻어 수행을 완성하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내용입니다. 문수보살에서 시작하여 보현보살로 끝나는 여정에서 선재동자가 얻은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생명을 두루 이롭게 하는 자비(慈悲)의 마음을 기르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재동자도 처음에는 그저 한 집안의 평범한 아들이었듯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도 선재동자가 얻은 수행법에 따라 실천한다면 부처나 보살과 같이 될 수 있음을 ‘정원본’ 『화엄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경지를 묘사하는 부분이 중심인 ‘진본’ 및 ‘주본’과 비교하면 ‘정원본’은 『화엄경』의 일부 내용만을 담은 것이지만, 그처럼 위대한 부처의 경지는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을 다루고 있어서 승려 및 신도들의 수행 지침서로 널리 읽혔습니다. 특히 미래에 또는 다음 생에 큰 복을 받기 위해 경전 구절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손으로 옮겨쓰는 사경(寫經)으로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정원본’ 『화엄경』 사경, 고려, 28.7×11.0cm, 본관12728

‘정원본’ 『화엄경』 사경, 고려, 28.7×11.0cm, 본관12728

현재까지 남아 있는 『화엄경』 사경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수량이 ‘정원본’ 『화엄경』을 베낀 것으로, ‘진본’이나 ‘주본’은 전체를 베껴 쓰기에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분량도 더 적고 내용도 한 가지 주제로 되어 있는 ‘정원본’을 선호하였던 것입니다. 목판본으로 제작한 사례는 더욱 많아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각 사찰에서 판각하여 인쇄한 경전이 지금도 수백 권 전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려시대의 것으로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제20(증3458)이 지니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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