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비슈누 상

비슈누 상, 인도 팔라시대, 11~12세기, 2006년 기증, 증6368

비슈누 상, 인도 팔라시대, 11~12세기, 2006년 기증, 증6368

이 비상은 검은 색의 단단한 돌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만든 비슈누 상으로 인도의 팔라 왕조 시기(Pala, 765~1200)에 제작된 것입니다. 인도의 팔라왕조는 굽타 왕조가 망한 뒤 여러 작은 왕조로 분립되었던 인도 대륙의 동북지역에 위치한 벵골과 비하르 지방에 왕국을 세워 이슬람 세력이 침입할 때까지 그 세력을 유지하였던 왕국입니다. 특히 팔라 왕조 시기에는 힌두 미술이 융성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힌두 사원의 건물을 장식하는 많은 조각상이 있습니다. 특히 이 시기는 인간의 신체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생명력 넘치고 존귀한 것이라는 공통된 사회적인 인식이 형성된 시기였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의 조각가들은 조각상을 만들 때 인간의 신체가 지닌 관능미를 최대한 세밀하게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이 비상 또한 당시의 시대적 풍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비슈누 상 세부모습

비슈누 상 세부모습

비상의 모습을 좀 더 살펴보면, 우선 중심에는 ‘비슈누’가 서 있고, 왼쪽에는 부인인 ‘락슈미’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강(江)의 여신인 ‘사라스바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비슈누를 중심으로 양쪽에 위치한 두 신상은 비슈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도상의 배치 방식은 당시의 다른 조각상에서도 흔히 관찰됩니다. 한편 비슈누는 머리에 높게 솟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온 몸에 목걸이를 비롯하여 팔찌, 발찌, 귀걸이 등 여러 가지의 장신구를 걸치고 있습니다. 또한 4개의 손에도 비슈누만의 고유한 지물들을 쥐고 있습니다. 먼저 왼팔의 위쪽 손에는 원초적인 지식을 상징하는 ‘곤봉(gada)’을 들고 있으며, 왼팔의 아래쪽 손에는 정결함, 평화, 아름다움 그리고 생식적인 충동을 상징하는 ‘연꽃(padma)’을 들고 있습니다. 오른팔의 위쪽 손에는 우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악마들의 머리를 벨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인 ‘차크라(cakra, 원반)’를 들고 있으며, 오른팔의 아래쪽 손에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의 근원이 되며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소라 고동(sankha)’을 들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 비슈누는 브라흐만, 시바신과 더불어 3대 신으로 숭배되며 우주와 세상의 만물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신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슈누는 의례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신앙을 통해 구원을 베푸는 부드럽고 인자한 신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더불어 비슈누는 세계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동물이나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顯現, avatar)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인생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비슈누의 왼쪽에 있는 락슈미(Lakshumi)는 비슈누의 부인으로 힌두교에서는 부와 행운을 상징하며 ‘스리(Śrī)’라고도 불립니다. 비슈누의 부인이기 때문에 남편이 각기 다른 아바타로 현현할 때마다 락슈미 또한 비슈누에 맞추어 여러 가지 다른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비슈누가 난쟁이인 ‘바마나’로 나타난 경우에 락슈미는 ‘파드마’ 또는 ‘카말라’라고 알려진 연꽃으로 나타납니다. 비슈누가 도끼를 휘두르며 무사 계급을 무찌르는 ‘파라슈라마’로 현현하는 경우에는 그의 아내인 ‘다라니’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비슈누가 힌두교의 대표적인 서사시로 알려진 ‘라마야나’라는 이야기 속에서 왕으로 등장했을 때에는 락슈미가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라마 왕의 부인인 ‘시타 여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한편 락슈미의 탄생 설화에 따르면, 락슈미는 우유로 된 바다 속에서 연꽃 위에 앉아 손에 꽃을 들고 탄생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탄생 설화의 영향 탓인지 조각상으로 표현된 락슈미는 주로 풍만한 가슴과 넓은 엉덩이를 지닌 여성으로 연꽃 위에 앉아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사라스바티 여신의 모습

사라스바티 여신의 모습

비슈누의 오른쪽에 배치된 ‘사라스바티(Saraswati)’는 힌두교에서 예술, 학문 등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사라스바티는 물 또는 호수의 소유자라는 뜻을 지닙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전의 하나인 리그베다에서 사라스바티는 원래 성스러운 강인 사라스바티 강의 화신이었으나, 후에 강이 변화하여 말, 웅변, 지식 그리고 음악 등을 상징하는 여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라스바티는 언어의 신인 ‘바치’와 동일시되기도 하며, 때로는 음율과 찬가의 여신인 ‘가야트리’와도 동일시됩니다. 사라스바티가 강의 여신인 까닭에 회화에서는 주로 물가를 배경으로 표현됩니다. 사라스바티는 4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데, 한 쌍의 팔에는 염주와 베다를, 그리고 다른 한 쌍의 팔에는 ‘비나(Vina)’라고 불리는 비파와 비슷한 현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 비상에도 역시 현악기와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라스바티는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의 배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본래 브라흐마는 자신의 몸의 일부로 사라스바티를 창조했으나, 사라스바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라스바티는 브라흐마의 구혼을 거부하며 그를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브라흐마는 항상 자신에게서 달아나려고만 하는 사라스바티를 늘 지켜보고자 사방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몸에 4개의 머리를 만들어 달았습니다. 브라흐마는 사라스바티에게 '인간과 수라, 아수라 등 모든 종류의 생명체를 낳자'며 끊임없이 구혼하였습니다. 브라흐마의 구혼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라스바티는 브라흐마와 결혼하여 인류의 시조인 ‘마누’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상에는 왜 브라흐마의 부인으로 알려진 사라스바티가 브라흐마가 아닌 비슈누의 조각상에 함께 등장하는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락슈미, 사라스바티, 강가 여신 모두가 원래는 비슈누의 아내였는데, 락슈미의 질투로 인해 사라스바티는 브라흐마에게, 그리고 강가는 시바 신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비상에서와 같은 도상 배치가 나타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비상은 비슈누를 중심으로 한 신화적인 내용을 밀도 있고 완성도 높게 표현한 것으로 팔라 왕조 시기의 힌두 미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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