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한구자(韓構字) - 한구가 글씨를 쓰고 김석주가 만든 활자

한구자는 숙종(肅宗, 재위1674~1720)대의 문신이며 권세가였던 김석주(金錫胄, 1634~1684)가 만든 금속활자입니다. 한구자라는 이름은 이 활자의 글자체를 당시의 명필인 한구(韓構, 1636~1715)의 글씨로 만들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활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석주가 편저해서 한구자로 간행한 『행군수지(行軍須知)』를 1679년(숙종 5)에 숙종에게 바친 기록이 있어, 그 얼마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활자의 글자체는 마치 가는 붓으로 정교하게 쓴 것처럼 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이처럼 섬세하고 가늘며 크기가 작은 활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구자, 조선 1782년, 1858년, 낱활자, 1.0×1.1×0.7㎝, 본관3363

한구자, 조선 1782년, 1858년, 낱활자, 1.0×1.1×0.7㎝, 본관3363

활자체로 남은 한구라는 이름

한구가 글씨를 잘 썼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예가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그가 쓴 서예도 오늘날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1675년(숙종 1)에 문과에 합격했을 때, 그의 집안에서 9대만에 문과 합격자가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의 필체가 한구자로 만들어진 것은 김석주와의 인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석주와 한구는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요? 김석주는 한구가 문과에 합격한 그 시험의 시험관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구가 충청도에서 상경하여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 집에 문객(門客)으로 있으면서 집안사람들이 남긴 글을 정리하고 정서하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 신익성은 김석주의 외할아버지입니다. 외할아버지 집에서 두 사람이 만나서 그의 글씨를 보고, 그 글씨로 활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겠지요.
한구자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활자가 조선 전기에 만든 여러 활자체나 중국의 판본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개인이 쓴 글씨체로 만든 활자라는 점입니다. 물론 조선 전기에도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의 글씨로 만든 경오자(庚午字)나 강희안(姜希顏, 1417~1464)의 글씨로 만든 을해자(乙亥字) 등 당대 명필의 글씨로 활자를 만든 예는 있습니다. 하지만 활자를 글씨체의 주인공 이름에 따라 안평대군자, 강희안자와 같이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한구자의 경우는 오늘날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글씨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활자 이름으로 붙였습니다. 더욱이 한구는 안평대군이나 강희안과 같이 당대에 유명했던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김석주의 안목 덕분에 한구의 글자체가 활자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구자, 조선 1782년, 1858년, 낱활자, 1.0×1.1×0.7㎝, 본관3363

한구자, 조선 1782년, 1858년, 낱활자, 1.0×1.1×0.7㎝, 본관3363

17세기 활자 제작을 주도한 김석주 집안

김석주가 편저한 병서(兵書)인 『행군수지』의 서문에 “사숙에서 책을 인쇄한 끝에 다시 장인을 모아 수백 본을 간행했다(私塾印書之餘。復鳩工印出數百本)”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숙종에게 바친 『행군수지』가 이 때 간행된 것이겠지요.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구자는 김석주 집안에서 주조하여, 집안에서 필요한 책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활자로 1681년(숙종 7)에 외할아버지의 문집인 『낙전당집(樂全堂集)』을 간행하고, 다음 해에는 외삼촌인 신최(申最, 1619~1658)의 문집인 『춘소자집(春沼子集)』을 출간했습니다. 이어서 할아버지 김육(金堉, 1580~1658)의 문집인 『잠곡집(潛谷集)』, 신익성의 동생 신익전(申翊全, 1605~1660)의 문집인 『동강유집(東江遺集)』 등 집안사람들의 문집을 간행했습니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비롯한 유교 서적, 문학 서적도 이 활자로 간행했습니다.
조선시대에 금속활자는 국가와 왕실의 보물이자 전유물이었고, 공식적으로 국가나 왕실에서 필요한 책을 간행하는 데 사용하려고 만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민간에서 함부로 만들 수 없었으며,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데 많은 비용과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만들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가가 활자를 제작하고 출판을 주도할 여력이 없게 되자 유력 가문에서 금속활자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석주 집안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김육은 대동법(大同法) 시행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김좌명(金佐明, 1616~1671), 작은아버지는 현종의 장인이 되는 김우명(金佑明, 1619~1675)입니다. 외가 역시 당대의 명문가였습니다.
할아버지 김육은 여러 책을 간행했고, 직접 활자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활자가 금속활자는 아닌 것 같지만, 동전 주조 기술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전 주조와 활자 주조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아버지 김좌명은 1668년(현종 9)에 수어사(守禦使)로 있으면서 수어청(守禦廳) 군사들을 동원하여 금속활자 6만 6천 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활자는 세종(世宗, 재위1418~1450) 때 만든 갑인자(甲寅字)의 글자체로 만든 활자로, 양란 이후 처음 만든 금속활자입니다. 김육의 문집인 『잠곡유고(潛谷遺稿)』 등을 간행하는 데 사용하다가, 김좌명이 죽은 뒤 1672년(현종 13)에 교서관으로 옮겨 숙종과 영조(英祖, 재위1724~1776)대에 유교 경전을 비롯한 여러 서적 간행에 사용했습니다.
김석주가 한구자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집안의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김좌명이 만든 활자가 조정으로 들어가자 새로 활자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김석주가 죽고 나서 1695년(숙종 21)에 호조에서 이 활자를 사들여 영조 때까지 사용했습니다.
양란 이전에도 민간에서 목활자로 책을 간행한 사례는 있었지만, 이처럼 개인이 금속활자를 만든 것은 양란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개인이 만들어 자신들이 필요한 책을 먼저 간행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종전과는 분명 달라진 현상입니다.

정조, 한구자를 다시 만들다

정조는 출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활자 제작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수많은 활자를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한구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782년(정조 6)에 평안도관찰사 서호수(徐浩修, 1736~1799)에게 명하여 한구자의 글자체로 다시 8만여 자를 제작하게 했습니다. 김석주가 만든 활자가 오래되어 인쇄가 잘 안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활자를 만든 해가 임인년(壬寅年)이어서 임인자(壬寅字)라고도 부르며, 두 번째로 주조한 한구자라서 재주한구자(再鑄韓構字)라고도 합니다.
큰 활자는 사용처가 한정되기 때문에 정조는 문집이나 가벼운 책자를 만들기 위한 소자(小字)로 한구자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 때 큰 활자란 세종이 만든 갑인자의 글자체로 만든 활자를 말합니다. 오늘날 책을 간행할 때 책의 성격에 따라 글자체를 달리 하는 것처럼 예전에도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갑인자 계열의 활자는 주로 유교 경전이나 왕실 관련 서적을 찍는 데 사용했습니다. 정조는 이런 활자로 문집 등을 찍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영조도 왕의 글을 모은 어제(御製)를 간행할 글자를 선택하면서 어제는 중요한 것이므로 문집을 간행하는 활자와 같은 것으로 간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 정조 때 한구자는 규장각(奎章閣) 문신들의 글모음인 『규화명선(奎華名選)』 같은 가벼운 책을 간행하는 데 주로 사용했습니다. 한구자는 크기가 작아 활자 제작과 인쇄비용 절감의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문집이나 가벼운 책자 인쇄에 적합했던 것 같습니다.

『규화명선』, 조선 1792년, 28.6×18.2㎝, 신수19996

『규화명선』, 조선 1792년, 28.6×18.2㎝, 신수19996

1857년(철종 8)에 활자를 보관한 주자소(鑄字所)에 불이 나면서 상당수의 한구자가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에 이듬해 한구자 3만여 자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현재 한구자 4만여 자가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한구자는 대부분 사용 흔적이 없는데, 철종 때 다시 만든 뒤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로 전해오기 때문입니다.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한구자(韓構字) - 한구가 글씨를 쓰고 김석주가 만든 활자 저작물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