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신중도 -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등장인물을 빽빽이 그린 이 그림은 불화(佛畫)의 한 종류입니다. 불화이기는 하지만 부처를 그린 것도 보살을 그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를 그린 것일까요? 이들은 불교를 수호하는 여러 수호신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신들을 ‘신중(神衆)’이라고 부르기에, 이 그림도 보통 ‘신중도(神衆圖)’라고 부릅니다.

신중, 불교의 수호신들

그런데 불교에 부처와 보살 이외에 왜 다른 신들이 있을까요?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는 사실 불교가 생겨나기 전부터 다른 전통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기존 종교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던 불교는 뛰어난 유연성을 발휘합니다. 기존 종교의 인기 있는 신들과 경쟁하는 대신, 오히려 그 신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귀의하였다는 논리로 불교 안에 포용한 것입니다. 여러 불교 경전에서는 이 신들이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받들어 지키겠다고 맹세한 호법신(護法神)이 되어 등장합니다.
이 신들의 이야기는 불교가 전해지는 길을 따라 한반도에도 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강력한 수호신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믿었던 산신(山神), 용왕(龍王) 같은 신도 점차 불교 수호신의 범주에 포함되었습니다. 부처나 보살만큼 높고 위대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수호신. 외적이 침략했을 때, 불길한 징조가 있을 때, 그 밖에 복이나 장수를 빌 때나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을 때도, 사람들은 수호신에게 빌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조선 후기가 되면, 수호신은 한데 모여 ‘신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불화로 그려져 법당 안에 봉안됩니다. 비록 정면의 큰 벽이 아닌 옆면 벽밖에 차지하지 못했지만, 신중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절마다 신중도가 여러 점 있었고 사람들은 신중에게 다투어 예배하며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받기를 기원했습니다.

불전 안에서 신중도를 봉안하는 위치

불전 안에서 신중도를 봉안하는 위치
불교의 수호신을 불화로 그려 법당 안에 봉안하였습니다. 비록 정면의 큰 벽이 아닌 옆면 벽에 걸렸지만, 신중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신중도>, 조선 1750년, 비단에 색, 173.3×204cm, 구4290

<신중도>, 조선 1750년, 비단에 색, 173.3×204cm, 구4290

① 제석천  ② 위태천  ③ 아수라  ④ 용왕 ⑤ 사천왕  ⑥ 가루라  ⑦ 천자 ⑧ 천동·천녀

① 제석천 ② 위태천 ③ 아수라 ④ 용왕 ⑤ 사천왕 ⑥ 가루라 ⑦ 천자 ⑧ 천동·천녀

신중을 그린 그림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신중도> 한 점을 예로 들어 신중도에 그린 대표적인 신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신중도>는 섬세하고 안정된 필선, 밝고 깨끗한 색채 구사가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그뿐 아니라 각각의 신을 짜임새 있게 구성한 것도 특징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주인공은 우아한 손놀림으로 풍성한 모란꽃을 든 제석천(帝釋天)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진 다른 신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석천과 사천왕

제석천은 화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존재로 그렸습니다. 제석천은 본래 고대 인도의 신 인드라(Indra)로 벼락을 무기로 하여 일체의 악마를 정복하는 신입니다. 불교에 수용되면서부터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여러 신 가운데 일찍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상의 중심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수미산의 꼭대기에 도리천(忉利天)이라는 하늘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제석천이 산다고 합니다.
그림의 양쪽 끝으로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양손을 합장한 네 장군이 보입니다. 제석천이 사는 하늘보다 조금 낮은 하늘에 사는 사천왕(四天王)입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사방을 관장하며 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 남방증장천왕, 북방다문천왕으로 구성됩니다. 제석천은 사천왕을 시켜 인간들이 선을 행하고 계율을 지키는지 살피게 하고 보고를 받습니다. 사천왕이 인간들을 살핀 결과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을 공경하며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다고 보고하면 제석천이 크게 기뻐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걱정 근심한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사천왕도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약간 굽혀 마치 제석천에게 보고를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위태천과 천룡팔부

이번엔 제석천의 아래로 내려와 보겠습니다. 독특한 모습의 세 신이 역삼각형을 이루며 서 있습니다. 그 중에서 화려한 새 날개 모양 깃이 달린 투구를 쓰고 양손을 합장하여 무기를 받든 신이 위태천(韋䭾天)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위태천은 사천왕의 32장군 중 우두머리 장수로서 정법을 수호하며, 손에 팔만 사천 근의 금강보저를 들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실 때 불법을 구하고 보호하리라고 맹세하였다고 합니다. 위태천의 특징적인 자세는 이러한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위태천의 옆과 아래에는 눈이 셋에 팔이 여럿이며 해와 달을 든 신, 그리고 용의 머리를 이고 있는 신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아수라(阿修羅)와 용(龍)으로, 천룡팔부(天龍八部)의 구성원입니다. 천룡팔부란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로 이루어진 신들의 집합입니다. 팔부중(八部衆)이라고도 하지요. 이들은 위태천과 함께 신중도에 자주 등장하는 신입니다. 그 중에서도 용, 아수라, 그리고 새의 모습을 한 가루라는 생김새가 독특하여 쉽게 식별할 수 있고, 이러한 신이 있으면 그 무리가 천룡팔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망을 담은 그림

신중은 불교의 수호신이지만 넓게 보면 불교 신도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신도를 보호하고 재앙을 쫓아 주며 복을 내려 주는 존재,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신중을 믿고 신중에게 예배하였습니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만, 사는 동안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은 신중 신앙에서 의지할 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 활발히 그린 신중도는 불교의 종교적 포용력을 보여주는 불화이자 당시 사람들의 삶과 기원을 담고 있는 불화라 하겠습니다.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신중도 -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 저작물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