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籩)
왕실일생/천릉(遷陵)·천봉(遷峰)·천원(遷園)
흉례(凶禮)/천릉(遷陵)·천봉(遷峰)·천원(遷園)
무덤 조성_부장품: 생활용품과 예물
제례_제사용 그릇
익종수릉천봉도감의궤 (4)(翼宗綏陵遷奉都監儀軌 (四))
1846
변(籩)은 조선시대의 각종 국가·왕실 제례에서 사용된 중요 제기(祭器) 중의 하나로서, 과일, 생선포, 육포, 떡, 인절미 등 각종 마른 음식을 담는 데 사용하였던 제기 겸 찬기(饌器)이다.
찬기는 반찬이나 부식(副食)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각종 젖은 음식을 담는 제기 겸 찬기인 두(豆) 와 짝을 이루어 제사상에 같은 수량으로 진설(陳設)되었다. 조선시대의 각종 국가·왕실 제사의 상차림에서는 신주를 기준으로 왼쪽에 변이, 오른쪽에 두가 놓였는데, 제사의 규모와 격식, 등급 등에 따라 변과 두가 각각 12개씩, 10개씩, 8개씩, 4개씩, 2개씩, 1개씩 2열 내지 3열로 진설되었다.
마른 음식을 담는 변은 대나무로 만들고, 젖은 음식을 담는 두는 나무로 만들었다. 변의 덮개로 사용되는 멱(冪) 은 거친 갈포(葛布) 1폭(幅)을 둥글게 둘러서 만드는데, 겉은 검은색이고 속은 붉은색이다. 변을 ‘변개구(籩蓋具)’라고도 부르는데, 변개구는 ‘변의 몸체와 덮개[개(蓋)]가 함께 갖추어진 한 벌’을 뜻한다. 보통 ‘변’이라고만 표현하여도 변의 몸체와 덮개를 모두 지칭하지만, 간혹 이와 같이 몸체와 덮개를 모두 따로따로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가 장례에서 변은 부장품(副葬品)의 한 종류인 명기(明器)로 사용되어, 무덤 안에 다른 부장품들과 함께 부장되었다. 명기는 ‘신명(神明), 신령(神靈)의 그릇’이라는 의미로서, 망자를 위해 무덤에 함께 묻는 각종 그릇을 말한다. 명기는 생전에 사용하던 그릇들을 모방하여 부장용으로 다시 만드는데, 재질과 크기를 달리하여 생전의 그릇들보다는 좀 더 작고 소박하고 단출하게 만들었다.
변(籩)은 조선시대의 각종 국가·왕실 제례에서 사용된 중요 제기(祭器) 중의 하나로서, 과일, 생선포, 육포, 떡, 인절미 등 각종 마른 음식을 담는 데 사용된 제기 겸 찬기(饌器)이다. 찬기는 반찬이나 부식(副食)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절인 채소[침채(沈菜)], 어젓, 육젓, 죽, 삶은 고기 등 각종 젖은 음식을 담는 제기 겸 찬기인 두(豆)와 짝을 이루어 제사상에 같은 수량으로 진설(陳設)되었다. 변과 두는 서로 긴밀하게 짝을 이루어 사용되기 때문에, ‘변두(籩豆)’로 합쳐서 부르기도 하는데, ‘변두’는 변과 두의 합칭일 뿐 아니라, 제기 일반을 지칭하기도 한다.
변과 두는 쌀[도(稻)]과 찰기장[양(粱)]을 담는 네모난 제기인 보(簠), 메기장[서(黍)]과 조[직(稷)]를 담는 둥근 제기인 궤(簋), 희생(犧牲)을 삶는 데 사용되는 제기 겸 취기(炊器: 음식을 삶거나 끓이는 데 사용되는 그릇)인 정(鼎: 세발 달린 큰 솥), 삶아진 희생의 고기를 담는 도마 모양을 닮은 제기인 조(俎), 고깃국을 담는 제기인 등(㽅)과 형(鉶) 등 다양한 제기들과 함께 음양(陰陽)과 수량의 조화를 이루면서 제사상 위에 배열되었다.
조선시대의 각종 국가·왕실 제사의 상차림에서는 신주를 기준으로 왼쪽에 변이, 오른쪽에 두가 놓였는데, 제사의 규모와 격식, 등급 등에 따라 변과 두가 각각 12개씩, 10개씩, 8개씩, 4개씩, 2개씩, 1개씩 2열 내지 3열로 진설되었다. (즉 변두를 합쳐 최다 24개, 최소 2개가 [2~3]×2열로 진설된다.) 변·두가 12개씩 진설될 때에는 6×2열이나 4×3열을 이루었고(즉 신주의 왼쪽에 변의 6×2열, 오른쪽에 두의 6×2열, 혹은 신주의 왼쪽에 변의 4×3열, 오른쪽에 두의 4×3열이 진설된다), 10개씩 진설될 때에는 5×2열 내지 신주를 기준으로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4-3-3개의 3열을 이루었다(즉 신주의 왼쪽에 변의 5×2열, 오른쪽에 두의 5×2열, 혹은 신주의 왼쪽에 변의 4-3-3열, 오른쪽에 두의 4-3-3열이 진설된다. 8개 이하도 동일하다). 8개씩 진설될 때에는 신주를 기준으로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2-3-3개의 3열을 이루었고, 4개씩 진설될 때에는 2×2열, 2개씩 진설될 때에는 2×1열을 이루었다.
종묘나 사직 제사와 같은 큰 제사에서는 12개의 변에 12종류의 마른 음식을 담는데, ① 형염(形鹽: 호랑이 모양으로 조각한 소금), ② 어숙(魚鱐: 물고기 포), ③ 건조(乾棗: 말린 대추), ④ 율황(栗黃: 밤), ⑤ 진자(榛子: 개암 열매), ⑥ 능인(菱仁: 마름 열매), ⑦ 검인(芡仁: 가시연밥), ⑧ 녹포(鹿脯: 사슴고기 육포), ⑨ 백병(白餠: 흰 쌀떡), ⑩ 흑병(黑餠: 검은 기장떡), ⑪ 구이(糗餌: 쌀‧보리 경단), ⑫ 분자(粉餈: 쌀 인절미) 등이다. 10개의 변을 진설할 때에는 이 중에서 ⑪과 ⑫가 빠지고, 8개의 변을 진설할 때에는 ⑨~⑫가 빠지며, 4개의 변을 진설할 때에는 ①, ③, ④, ⑧이 진설되고, 2개의 변을 진설할 때에는 ④, ⑧이 담기며, 1개의 변만을 진설할 때에는 ⑧만이 진설되었다.
마른 음식을 담는 변은 대나무로 만들고, 젖은 음식을 담는 두는 나무로 만들었다. 변의 덮개로 사용되는 멱(羃)은 거친 갈포(葛布) 1폭(幅)을 둥글게 둘러서 만드는데, 겉은 검은색이고 속은 붉은 색이다. 변을 ‘변개구(籩蓋具)’라고도 부르는데, 변개구는 ‘변의 몸체와 덮개[개(蓋)]가 함께 갖추어진 한 벌’을 뜻한다. 보통 ‘변’이라고만 표현하여도 변의 몸체와 덮개를 모두 지칭하지만, 간혹 이와 같이 몸체와 덮개를 모두 따로따로 나타내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변은 1846년(헌종 12) 음력 윤5월 20일에 추존왕(追尊王) 익종(翼宗, 1809~1830)의 수릉(綏陵: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東九陵)의 하나로 사적 제193호)을 원래 있던 자리인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부근에서 경기도 양주 용마산 아래로 천장(遷葬)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것이다. 익종은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의 맏아들이자 헌종(憲宗, 1827~1849, 재위 1834~1849)의 아버지로서, 왕세자 시절에 훙서하였기 때문에 보통 효명세자(孝明世子)라고 부른다. 1835년(헌종 1) 음력 5월 19일에 헌종이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여 관련 의례를 봉행하면서, 효명세자의 원래의 무덤이자 왕세자의 무덤인 원(園)의 격식으로 조성되어 있던 연경묘(延慶墓)를 왕릉인 수릉으로 명칭과 격식을 높여 재단장하였다. 1846년에는 풍수가 불길하다는 논의에 의해 수릉을 천장하였고, 이후 1855년(철종 6)에 현재의 위치로 재차 천장하였다.
국가 장례에서 변은 부장품(副葬品)의 한 종류인 명기(明器)로 사용되어, 무덤 안에 다른 부장품들과 함께 부장되었다. 명기는 ‘신명(神明), 신령(神靈)의 그릇’이라는 의미로서, 망자를 위해 무덤에 함께 묻는 각종 그릇을 말한다. 명기는 생전에 사용하던 그릇들을 모방하여 부장용으로 다시 만드는데, 재질과 크기를 달리하여 생전의 그릇들보다는 좀 더 작고 소박하고 단출하게 만들었다. 이 (명기로 사용된) 변은 바다에서 자라는 대나무[해죽(海竹)]를 엮어서 만들며, 입구 부분의 지름은 1촌 6푼(3.3cm), 전체 높이는 2촌(4.1cm)이다. 가로·세로 등의 길이를 측량하는 데 사용된 단위는 주척(周尺: 중국 고대 주나라에서 유래된 표준 자)이다. 주척은 신주(神主)를 만들거나, 측우기(測雨器)를 비롯한 각종 기후·천체·천문 측정기기 등을 제작할 때, 혹은 도로나 토지의 거리·면적 등을 측량할 때 주로 사용된 단위이다. 1 주척은 현대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207mm이다. 미터법 환산과 관련해서는 다수의 이견(異見)들이 있지만, 이 해제에서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신신제척’(庚申新製尺: 경신년인 1740년(영조 16)에 새롭게 제작된 표준 자)의 제1면에 새겨진 주척의 길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환산한 길이의 미터법 수치를 위에서 ( ) 안에 함께 표기하였다.(박봉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