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등상(土籐箱)
왕실일생/천릉(遷陵)·천봉(遷峰)·천원(遷園)
흉례(凶禮)/천릉(遷陵)·천봉(遷峰)·천원(遷園)
제례_혼령이 깃드는 곳
인조장릉천릉도감의궤 (4)(仁祖長陵遷陵都監儀軌 (四))
1732
토등상(土藤箱)은 조선시대의 국가·왕실 장례에서 사용된 대나무 껍질[죽피(竹皮)]로 짠 네모난 상자이다.
‘토등방상(土籐方箱)’, ‘ 죽피방상자(竹皮方箱子) ’라고도 부른다. 토등상은 뽕나무로 만든 신주인 우주(虞主)와 우주를 담는 상자인 우주궤(虞主匱)를 담는 데 사용되었다. 간혹 종이로 만든 신주인 지방(紙牓) 과 지방을 담는 상자인 지방궤(紙牓匱)를 담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우주는 왕과 왕비의 관인 재궁(梓宮)을 현궁(玄宮)에 안장하고 당일에 첫 번째 우제(虞祭), 즉 초우제(初虞祭)를 지낸 이후부터 연제(練祭) 전까지 사용하는 신주이다.
토등상은 상자의 몸체와 덮개로 구성되며, 바다에서 자라는 대나무[해장죽(海長竹)]의 껍질을 대각선 방향으로 엮어 짜서 만든다. 해장죽을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 등으로 염색하여 엮기 때문에, 상자는 대각선으로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이 교차하는 미려한 외관을 지닌다. 상자의 내면에는 최고급 한지인 초주지(草注紙)를 바르고, 씨를 제거한 목화솜으로 상자 속을 채워 상자 안에 담기는 우주와 우주궤 혹은 지방과 지방궤를 마모되지 않게 보호하였다. 상자의 네 귀퉁이에는 무두질한 노루 가죽[장피(獐皮)]을 덧대어 흰색 비단실[백진사(白眞絲)]로 꿰맨 다음 검은색 칠을 한다.
토등상(土籐箱)은 국가 장례에서 우주(虞主)를 담는 데 사용된 대나무로 짠 상자이다. 우주는 장지에서 관을 안장한 후 망자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인 우제(虞祭)를 지낼 때 사용하는 뽕나무로 만든 신주이다. 우주를 안쪽 상자인 우주내궤(虞主內匱)에 담고, 우주내궤를 바깥쪽 상자인 우주외궤(虞主外匱)에 담은 다음, 이를 다시 토등상에 담았다. 토등상은 덮개가 달린 육면체의 상자로서, 붉은색·황색·흰색의 대나무 껍질을 대각선 방향으로 엮어 짜서 몸체와 덮개를 만들고, 사방 가장자리를 사슴 가죽으로 감싸며 그 위에 검은색 칠을 한다. 안쪽에는 두꺼운 종이를 바른다. 내부에 우주궤를 담을 수 있도록 여유 있는 크기로 제작한다. 육면체 모양이기 때문에 ‘토등방상(土籐方箱)’이라고도 부른다.
이 토등(방)상은 1649년(효종 즉위) 음력 5월 8일에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가 승하한 후, 9월 20일에 장릉(長陵: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소재. 사적 제203호)에 안장하기까지 약 5개월에 걸쳐 봉행된 국장(國葬) 과정에서 제작·사용된 것이다. 이후 1731년(영조 7) 3월부터 9월 사이에 장릉을 파주(坡州) 운천리(雲川里)에서 교하(交河)로 천장(遷葬)할 때 다른 부장품들과 함께 운반되었다. 길이는 6촌 7푼, 너비는 5촌 5푼, 높이는 2촌 5푼, 내부 용량은 1승(升)이다. 사용된 길이의 단위는 주척(周尺)이다. 두 번째 우제[재우제(再虞祭)]를 지낸 후 토등상을 붉은색 평직(平織) 보자기인 홍초보(紅綃袱)에 싸서 다른 복완(服玩)류와 함께 혼전(魂殿) 뒤편의 깨끗한 장소에 매장하였다. 복완은 망자가 생전에 애용하던 의복[복(服)]과 장신구[완(玩)] 종류를 부장품으로 묻는 것인데, 대체로 평소 착용하던 것을 묻어주며 없는 경우에만 새로 만들되 크기는 실물의 절반 정도로 하였다. 영조(英祖) 대 이후부터는 5분의 1로 줄여 만들도록 개정하였다.(박봉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