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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전시품
전시실 소개
- 고구려, 고대 동북아시아의 강한 나라
- 고구려는 부여에서 태어난 주몽이 세운 나라이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경쟁하면서 강한 나라로 발전했다. 고구려의 최대 영역은 북으로는 오늘날의 중국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부, 남으로는 한반도 중부까지 이르렀다. 일찍부터 주변 나라들과 접촉이 많았던 고구려의 문화는 독자적이면서도 국제적이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나라를 발전시켰다. 특히, 아름답고 생생하게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담고있는 고구려의 무덤 벽화는 고구려 문화를 잘 보여준다. 다양성과 개방성, 국제성을 가진 고구려 문화는 백제, 신라, 가야, 왜(일본)에도 영향을 주었고, 나중에는 그 영향이 발해로까지 이어졌다.
전시 동영상
고구려의 무덤 (02:42)
('고구려의 무덤'에 대한 대체 텍스트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났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무덤을 만들어 떠난 사람을 그리는 마음을 달랬습니다.
처음에는 강가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을 이용하여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시신을 눕히고 그 위를 돌로 덮었지요. 모양이 예쁘지는 않았답니다.
그러다가 점점 원형 혹은 사각형 모양으로 변해갑니다.
이러한 고구려의 무덤을 돌을 쌓아 만들었다 하여 돌무지무덤(積石塚)이라 부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형태의 돌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요.
돌을 사각형 모양으로 다듬어 단을 쌓았습니다.
잘 알려진 이집트의 피라미드 또한 이렇게 한단 한단 쌓아 만든 것입니다.
나라가 커지고 부강해지면서 작은 강돌로 만들기 시작한 고구려의 돌무덤은 이제 여러 단의 계단을 갖춘 큰 무덤으로 변해갑니다.
큰 돌을 반듯반듯 다듬어서 한단 한단 쌓아올려 만든 장군총입니다.
높이가 14m, 네 면이 모두 30m 이상이 되는 거대한 무덤이지요.
돌의 무게가 엄청나기 때문에, 무너지거나 밀려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각 면에 세 개의 돌기둥도 세웠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많이 무너지고 훼손되었지만 장군총보다 더 큰 무덤도 있습니다.
태왕릉이라고 불리는 이 무덤은 장군총보다 두 배 이상 큽니다.
각 면에 세운 돌기둥도 장군총보다 많은 다섯 개를 세웠습니다.
이 거대한 무덤들에 묻힌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아쉽지만 대부분의 무덤들이 도굴되고 훼손되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무덤을 만들 때 들어가는 돈과 인력을 고려한다면
무덤에 묻힌 사람은 아마도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들이 아니었을까요?고구려의 벽화무덤 (03:05)
('고구려의 벽화무덤'에 대한 대체 텍스트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쓴 신집, 유기라는 역사책은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대신 고구려의 또 다른 역사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무덤 벽화는 강돌과 막돌을 이용하여 무덤 방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은 무덤 안에 그려졌습니다.
무덤을 막 만들고 나니 울퉁불퉁한 벽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울퉁불퉁한 벽에 석회를 발랐습니다.
네 벽과 천장까지 회를 바르고 나니 흰색 도화지 같은 하얀 회벽이 생겨 났습니다.
이제 고구려의 내로라하는 화원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인물도, 군대행렬도, 방앗간, 사냥하는 사람, 씨름하는 사람 등 당시 고구려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그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고구려가 망하고 무덤이 방치되면서
무덤 벽에 그려진 벽화들은 벽에서 떨어져 나가고 색이 바래면서 그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도굴꾼들은 무덤에 들어와 그림이 그려진 석회 벽을 통째로 뜯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무덤은 시간이 흘러 색이 바래긴 했지만, 그 형태를 온전하게 간직한 벽화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이런 무덤은 앞선 무덤과는 달리 큰 화강암을 반듯하게 다듬어서 만들었습니다.
벽면에 석회를 칠할 필요가 없이 벽 자체가 도화지가 된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큰 벽에 그려진 벽화는 뜯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도굴꾼들의 손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벽화의 주제도 다양해지기 시작합니다.
일상을 그렸던 고구려의 화원들은 이제 신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동서남북 네 방위에 수호신인 사신이 그려지고 천장에는 고구려의 하늘과 신선들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아마, 주변 나라들과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지쳐 있었던 고구려 사람들이 평화와 안정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내지 않았을까요?
비록 역사책은 전해지지 않지만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남긴 벽화를 통해 우리는 2천 년 전 고구려를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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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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