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당백전

1866년(고종 3) 11월 흥선대원군이 극심한 재정난을 해결하고 경복궁을 다시 짓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것이 상평통보 당백전이다. 당백전 앞면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라 새겨져 있고, 뒷면 좌우측에는 ‘당(當)’과 ‘백(百)’이 새겨져 있다. 또한 윗부분에는 주조 관청인 호조(戶曹)를 의미하는 ‘호(戶)’, 아랫부분에는 ‘대(大)’라고 새겨져 있다. 구멍이 네 곳에 뚫려 있거나 팔각으로 재가공된 것도 있고, 안료로 색을 칠한 것 등도 포함되어 있다. 당백전은 호조의 관할 아래에 있는 금위영에서 주조되었다. 명목상으로는 상평통보 1문(文)의 100배에 해당한다고 하여 이름을 당백전이라 했지만, 실제 가치는 상평통보의 5-6배에 지나지 않았다. 당백전과 상평통보가 함께 유통됨으로써, 당연히 당백전은 악화(惡貨)가 되고 상평통보는 양화(良貨)로 되는 ′그레셤의 법칙′이 적용되어 상평통보는 모습을 감추게 되고 당백전만이 유통되는 등 혼란이 발생하였다. 또한 당백전의 유통은 당연히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 1866년 12월 경에 쌀 한 석당 7-8냥(兩) 하던 것이 1867년에는 40냥 이상으로 급등하였으며, 이로 인해 일반 서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그러다가 1867년 10월 최익현의 상소로 당백전의 유통이 금지되었고 유통되었던 당백전은 상평통보 또는 청전(淸錢)으로 교환되었으며 환수된 당백전은 철재로 사용되었다. 당백전의 주조 총액은 약 6개월 동안 1,600만냥에 달했다. 결국 왕조 재건을 위해 발행된 당백전이 오히려 왕조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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