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삼가인수부」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 다른명칭

    粉靑沙器「三加仁壽府」銘印花銘紋大楪, 분청사기 「삼가인수부」명 인화문 대접

  • 전시명칭

    '삼가 인수부'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분청

  • 분류

    식생활 - 음식기 - 음식 - 대접

  • 크기

    높이 5.2cm, 입지름 18cm, 바닥지름 5.9cm

  • 소장품번호

    동원 314

  • 전시위치

    도자공예-분청사기-백자실

인수부(仁壽府, 1400∼1556년)는 정종 2년 2월 2일 책봉된 세자(정안군, 훗날 태종)의 예우 등 봉공을 위하여 2월 4일 부여된 관청 이름이다. 이 관청은 당시 국왕과 세자 간의 의견 전달이 중요한 임무였다고 본다. 이후 태종이 즉위하면서 혁파되었다가 세종 즉위(1418)년 8월 15일에는 세자의 관부인 순승부(順承府)를 다시 인수부(仁壽府)라는 이름으로 고쳐 상왕(태종)의 봉공 특히 상왕과 국왕(세종)과의 업무 전달 등을 맡게 되었다. 태종 사후 인수부의 기능은 세자부로서의 기능이 아닌 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와 같이 왕실의 어고(御庫) 역할을 하였다.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이들에 대한 판비를 담당하거나, 중국에 진헌할 세마포(細麻布)와 면주(綿紬)를 직조하는 경우도 있었음에서 보듯 일정한 업무 이외에도 왕실과 국가의 특별한 행사에 일부 업무도 담당하였다. 세조 원(1455)년 윤6월 12일 인수부(仁壽府)는 덕녕부(德寧府)로 이름이 바뀌고 상왕(단종)을 위한 관청이 되었는데, 단종이 유배를 간 뒤 사망하자 세조 3(1457)년 6월 25일 다시 인수부로 고쳤다. 그 후, 세조 10(1464)년에 혁파되었다. 따라서 인수부 글씨가 담긴 도자기는 1418년 8월에서 1455년 윤 6월 사이와 1457년 6월에서 1464년 2월까지 제작된 도자기임을 알 수 있다. 인수부 글씨가 있는 도자기는 경남 양산시 가산리 상리 마을 요지, 경남 창녕 청암리, 경남 합천 외사리, 합천 장대리 경북 고령 사부리 산 16번지 요지, 경북 칠곡 학상리 산 67번지 다공마을 요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상장안 요지, 장안읍 장안리 산 48-1 요지, 세종특별자치시(구 충남 연기군) 금사리 사기소 고개 요지, 울산광역시 울주 하잠리, 울주 태기리 241번지 전남 영암 상월리, 충남 보령 평라리 산 27-14, 충북 영동 사부리 금보마을의 도요지에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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