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인왕제색도-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걸작

1751년 76세의 노대가 정선(鄭敾, 1676~1759)이 인왕산의 비 갠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바로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입니다. 그로부터 270년의 세월이 흐른 2021년 4월, 고(故) 이건희(李健熙, 1942~2020)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인왕제색도>의 명성이 더 널리 알려졌습니다.

정선,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족자, 종이에 먹, 79.2×138.0cm, 2021년 이건희 기증, 국보

정선,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족자, 종이에 먹, 79.2×138.0cm, 2021년 이건희 기증, 국보

정선에게 특별했던 작품, <인왕제색도>

<인왕제색도> 오른쪽 위에 있는 글과 인문(印文)

<인왕제색도> 오른쪽 위에 있는 글과 인문(印文)

<인왕제색도> 오른쪽에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첫 줄의 “인왕제색(仁王霽色)”은 “인왕산 비가 개다”이고, 다음 줄의 “겸재(謙齋)”는 정선의 호를 쓴 것이고, 마지막 줄의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은 “신미년(1751년) 윤5월(양력 7월) 하순”이라는 내용입니다. “겸재” 아래에는 이름인 “정선(鄭敾)”과 자(字)인 “원백(元伯)”을 새긴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화가 스스로 무엇을 누가 언제 그렸는지 친절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세로 79.2cm, 가로 138.0cm로, 조선 회화 중 규모가 큰 편인 이 그림은 크기와 높은 완성도, 화가가 직접 쓴 글로 보았을 때 정선에게 매우 중요한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인왕제색도>에 표현된 공간감과 실체감

<인왕제색도> 속 안개구름 <인왕제색도> 속 안개구름

<인왕제색도> 속 인왕산 주봉 치마바위 <인왕제색도> 속 인왕산 주봉 치마바위

 <인왕제색도> 속 진한 먹의 표현 <인왕제색도> 속 진한 먹의 표현

<인왕제색도>는 한국 전통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상을 놀랍도록 똑같이 그린 것도 아니고, 붓놀림이 정교하거나 현란하지도 않고, 그림에 눈길을 끄는 세부 요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왕제색도>에 매료되는 이유는 공간감과 실체감, 그리고 먹의 깊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림 앞에 서면 내 앞에 산이 펼쳐진 듯 가상의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화면 아래쪽 안개구름을 따라가다 고개를 들면 우뚝 솟은 검은 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338.2m 높이의 인왕산 주봉인 치마바위입니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인왕산 규모는 인근에서 인왕산을 바라봤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웅장한 인왕산이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정선은 진한 먹을 묻힌 붓을 여러 차례 쓱쓱 그어 내려 치마바위를 표현했습니다. 검게 칠해 물기 머금은 상태로 표현함으로써 바위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높고 낮음이 반복된 치마바위 주변 산세 표현도 거침이 없습니다. 먹물을 묻힌 붓질을 덜 하여 바위가 솟아 보이도록 하고, 붓질을 더 하여 그늘진 골짜기를 표현했습니다. 군데군데 나무를 간략하게 그려 넣고 여기저기 점을 찍어 산의 표면을 더 풍부하게 했습니다. 물기 많은 붓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다루면서 화면에 공간과 깊이를 연출했습니다.
<인왕제색도>를 한참 바라보면, 정선의 그림을 놓고 “건장하고 웅혼하며 끝없이 넓고 원기 왕성하다(壯健雄渾浩汗淋漓)”라고 평한 『송천필담(松泉筆談)』의 기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림이 그려진 지 270년이 지났는데도 산세를 표현한 기세가 살아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안개구름에 싸인 산이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그림 아래쪽에 있는 집 집 주변을 감싸며 산허리까지 차 있는 안개구름도 금방 몽글몽글 피어오를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인왕제색도>의 매력입니다.

<인왕제색도> 속 인왕산 명소

북악산과 인왕산 근처에 살던 조선 사람들은 아침에는 북악산 안개를, 저녁에는 인왕산 노을을 마주했습니다. 인왕산에는 경치 좋은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왕산은 금강산처럼 그림으로 즐겨 그려지던 명승지는 아니었습니다. 동네 뒷산인 인왕산을 그린 정선은 <인왕제색도>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보이는 여러 바위의 특징을 잘 살렸고, 한양 성곽도 점으로 툭툭 찍어 표현했습니다. 정선은 인왕산 북쪽인 북악산 아래 지금의 청운동에서 태어나 줄곧 살다가 52세인 1727년에 인왕산 아래 옥인동으로 이사했습니다. 인왕산 인근에서 평생 살아온 정선의 머릿속에는 인왕산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 속 모든 요소가 실제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치마바위는 본래보다 더 높이 솟아 있으며, 치마바위 좌우의 물줄기는 비가 오면 물이 채워지는 수성동 계곡과 청풍계를 표현한 듯합니다. 두 곳은 멀리서 봤을 때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인왕산을 더 멋지게 보이려고 그려 넣었을 것입니다.

① 범바위: 인왕산 호랑이가 엎드린 모습의 바위</br>                             ② 수성동 계곡: 누상동과 옥인동 사이에 있는 물소리가 이름난 계곡</br>                             ③ 코끼리바위: 코끼리를 닮은 바위</br>                             ④ 치마바위: 인왕산 정상의 거대한 암벽으로 벽련봉(碧蓮峯)으로 불림</br>                             ⑤ 한양 성곽: 한양 도성을 지키는 성곽</br>                             ⑥ 청풍계: 푸른 단풍나무가 있던 골짜기</br>                             ⑦ 기차바위: 기차처럼 이어진 바위 능선</br>                             ⑧ 부침바위: 기차바위에 얹힌 둥근 바위

① 범바위: 인왕산 호랑이가 엎드린 모습의 바위
② 수성동 계곡: 누상동과 옥인동 사이에 있는 물소리가 이름난 계곡
③ 코끼리바위: 코끼리를 닮은 바위
④ 치마바위: 인왕산 정상의 거대한 암벽으로 벽련봉(碧蓮峯)으로 불림
⑤ 한양 성곽: 한양 도성을 지키는 성곽
⑥ 청풍계: 푸른 단풍나무가 있던 골짜기
⑦ 기차바위: 기차처럼 이어진 바위 능선
⑧ 부침바위: 기차바위에 얹힌 둥근 바위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이유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린 까닭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림 아래쪽에 집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 집이 누구의 집인지 추정하며 정선이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렸는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먼저 미술사학자 최완수는 이 집을 정선의 평생지기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집으로 보았습니다. 정선이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눈 이병연의 쾌유를 기원하며 병이 나은 상태를 비 갠 인왕산으로 표현했다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찾아 윤5월 하순, 19일부터 25일 오전까지 비가 내렸으므로 이 그림을 25일 오후에 이 그림을 그렸을 거라며, 최완수의 해석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병연과 정선의 관계로 미루어 보아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견해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다른 의견으로 미술사학자 김가희는 정선의 주요 주문자였던 이춘제(李春躋, 1692~1761)의 서원(西園)이 인왕산 기슭의 세심대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인왕제색도>는 이춘제가 주문한 작품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이에 반해 미술사학자 홍선표는 이 집은 정선이 지금의 옥인동에 지은 인곡정사(仁谷精舍)를 그린 것으로, 인왕산 경관을 기념하려고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미술사학자 윤진영은 실제 위치로 보았을 때 그림 속 집은 세심대 아래에 있던 정선의 외할아버지 박자진(朴自振, 1625~1694)의 집인 풍계유택(楓溪遺宅)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여러 의견이 있으나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습니다. 그림 속 집이 제작 사유와 진정 관련이 있는지, 실제 위치를 고려하여 정선이 그림 속 집을 배치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인왕제색도>를 그렸든 간에 인왕산은 정선에게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자신을 위해 그렸다면, 그 순간을 떠올리며, 당시 정선의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부친의 이른 죽음으로 10대부터 집안을 이끈 장남 정선은 청년기를 힘들게 보냈고, 30대에 뒤늦게 화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41세가 되어서야 관직에 올랐습니다. 화가로 성공한 정선은 밀려오는 주문으로 바빴지만, 그만큼 삶은 풍족해졌습니다. 그러나 평생지기 이병연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젊은 나이여도 친한 지인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상황이 내게도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서는데, 70대 후반인 정선에게는 더 그러했겠지요. 이병연이 아팠던 그 시기, 정선은 아마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인왕산은 정선의 시선과 발걸음과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 또한 인왕산 청풍계는 정선을 이끌고 후원해준 안동 김문 어르신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정선은 자기 삶과 삶의 터전이 되어준 인왕산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떠올리며 비 갠 인왕산의 특별한 순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평생의 역작이 되었습니다.

<인왕제색도> 속 세심대와 집

<인왕제색도> 속 세심대와 집

20세기 <인왕제색도> 소장 역사

현재 <인왕제색도>는 족자로 되어 있으나 20세기 전반 이 그림을 소장했던 진호섭(秦豪燮, 1905~1951)이 남긴 사진 속 <인왕제색도>는 낱장이었습니다. 당시와 현재 화면 상태는 거의 같습니다. 화면의 가로선과 세로선은 오랫동안 낱장 상태로 말아서 보관하여 생긴 흔적으로 보입니다. 언제 족자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57년 최초의 한국 문화재 국외 특별전인 “한국미술명품전(Masterpieces of Korean Art)”(미국 순회전, 1957~1959)에 출품된 <인왕제색도>는 지금과 같은 모습입니다. 당시 이 작품의 소장자는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를 일본에서 가져온 20세기 전반 대표적인 수집가이자 서예가인 손재형(孫在馨, 1903~1981)입니다. 이후 <인왕제색도>는 이건희·홍라희 부부의 첫 번째 수집품이 되었고, 2021년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작 <인왕제색도>을 많은 사람이 직접 보면서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그림을 향한 뜨거운 관심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0세기 전반 진호섭이 소장하던 시기의 <인왕제색도>를 보여주는 사진, 엄미술관 소장20세기 전반 진호섭이 소장하던 시기의
<인왕제색도>를 보여주는 사진, 엄미술관 소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미술명품전(Masterpieces of Korean Art)”(미국 순회전, 1957~1959)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미술명품전(Masterpieces of Korean Art)”
(미국 순회전, 1957~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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