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 극락왕생을 염원하다 : 김혜경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통일신라 673년, 높이 40.3㎝, 국보, 신수550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통일신라 673년, 높이 40.3㎝,
국보, 신수550

통일신라 초기 옛 백제 지역이었던 연기 지방에서는 돌을 비석처럼 다듬어 불상을 새긴 불비상이 제작되었습니다. 그중 7구(軀)가 현재까지 전해져옵니다. 이 가운데 조성 연대와 조성 발원자(發願者), 불상의 명칭 등이 새겨진 비상(碑像)이 있어 한국 불교조각 연구의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어줍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은 세종시(옛 연기군) 비암사(碑巖寺)에 전해오던 것으로, 장방형으로 다듬은 흑회색 납석(蠟石) 4면에 불상과 글자를 새겨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줍니다.


백제 유민들이 조성한 불비상

1960년 충청남도 세종시(옛 연기군) 전의면의 비암사라는 절에서 3구의 불비상이 확인되었으며,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그중 하나로, 남겨진 명문으로 제작연대와 발원자, 불보살상의 이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명문은 앞면 하단과 측면, 뒷면에 음각으로 새겨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해 모두 판독하기는 어려운 상태이지만, 대략 계유년에 전씨(全氏) 등의 지식(智識)이 함께 국왕, 대신, 칠세부모, 모든 중생을 위해 절을 짓고 아미타불상과 관음(觀音), 대세지상(大勢至像), 화불 20구를 조성한다는 내용입니다.

계유명삼존천불비상, 통일신라 673년, 높이 91.0㎝, 국보, 신수549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정면 하단의 명문

명문에서는 백제의 관등인 달솔(達率)과 함께 신라 관등인 내말(乃末), 대사(大舍) 등 관등 명칭이 함께 확인됩니다. 이것은 신라 문무왕이 통일 후 백제 관리들에게 각 지위에 따라 신라의 관등을 주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보이듯, 이 지역이 신라 영토로 편입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백제 유민들을 중심으로 이 상이 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계유년은 통일신라 초인 673년(문무왕 13)으로 생각됩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을 비롯하여 7구의 불비상이 발견된 연기 지방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옛 백제 땅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불비상이 발견된 사실은 알려주는 것이 많습니다. 모두 같은 재질의 돌을 사용하였고, 조각 수법과 양식도 동일하여 같은 조각가 집단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불비상에 새겨진 조성 연대와 백제와 신라의 관등명이 혼재되어 있는 발원자 명단 등으로 보아, 통일 이후에도 백제 유민들이 옛 백제 지역에서 백제의 조각 전통을 바탕으로 조상(造像) 활동을 이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을 돌에 새겨 극락왕생을 염원하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바닥에 장방형 돌기가 나 있고 윗면에 홈이 파여 있어 원래는 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돌[臺石]과 지붕돌[屋蓋石]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면에는 옷자락이 대좌를 덮는 상현좌(裳縣座) 형식의 불좌상(佛坐像)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대칭이 되게 조각하였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얼굴과 상체 일부만을 내민 모습으로 나한상을 표현하였습니다. 광배는 이중으로 되어 있어 안쪽에 화불(化佛)과 불꽃무늬, 바깥쪽에 음악을 연주하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조각하여 장식미와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본존 하단 연꽃대좌 양옆에 머리를 맞댄 사자 두 마리를 대칭을 이루게 표현했는데, 무릎을 꿇은 일반적인 자세가 아니라 네 발을 딛고 가로로 선 모습을 표현한 점이 특징적입니다.
불비상 양 측면에는 하단에 용(龍)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악천인상을 4구씩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사이에 명문을 새겼습니다. 용은 아미타삼존불이 새겨진 정면을 향해 상반신만 표현되었습니다. 주악천은 요고, 종적, 횡적, 비파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실적인 모습이며, 몸 앞에서 U자형으로 내려와 양 팔목을 감싼 뒤 좌우로 드리워진 천의자락 표현으로 생동감과 율동감을 더했습니다.
뒷면에는 20구의 화불을 4단으로 나누어 배치하였습니다. 화불 사이사이에 이 비상의 조성에 관여한 사람들 이름을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측면 주악상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측면 주악상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뒷면 화불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뒷면 화불

이 불비상 외에 명문에 존상의 이름을 아미타불이라고 새긴 예로 비암사에서 함께 발견된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이 있습니다. 이 불비상들은 한국조각사에서 ‘아미타불’의 존명이 명문으로 새겨진 최초의 예로 중요합니다. 특히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아미타불과 함께 관음과 대세지상을 함께 조성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어 아미타삼존불의 도상이 이미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현세의 수명장수를 이어가 내세에서 극락왕생(極樂往生) 하기를, 즉 부처에 의지하여 극락정토(極樂淨土)에 태어나 깨달음을 얻으려 한 아미타정토신앙이 불비상 제작 당시 유행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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