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 : 이재열

신라 금관은 황남대총 북분, 금관총, 서봉총, 천마총, 금령총 등 출토지가 분명한 5점과, 교동 출토품으로 전하지만 도굴되었다가 압수된 탓에 출토지가 분명하지 않은 1점 등 총 6점이 있습니다. 신라는 4세기 중반 마립간의 등장과 함께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마립간 시기는 6세기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신라 마립간의 대표적인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입니다. 신라의 무덤에는 금관(金冠), 관모(冠帽)와 관식(冠飾),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화려하게 장식된 큰칼, 신발 등 묻힌 인물의 권위를 드러내는 금공 위세품(威勢品)이 부장되었습니다. 대관(帶冠)은 머리 부분에 쓰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얼굴을 덮어 가리는 모습으로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이런 부장품들은 매장 시 목관에 주검을 넣을 때, 혹은 목관 없이 바로 매장할 때의 공헌물(供獻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위세품들은 평소에도 중요 의례 때 사용함으로써 신분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백제나 고구려 등 다른 지역의 것과 구별되고 신라권역에서는 비슷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어 정형화된 신라식 위세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재발굴조사 중인 금령총 전경(2019년 2차 조사)

재발굴조사 중인 금령총 전경(2019년 2차 조사)

금령총(金鈴塚)의 재발굴

금령총은 노동리 고분군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노서리 고분군, 황남리 고분군, 황오리 고분군, 인왕리 고분군 등 전체를 하나로 묶어 경주 대릉원 일원(옛 지정번호 사적 제512호)으로 재지정(2011. 7. 28.)되었습니다. 마립간 시기의 대표적인 무덤인 돌무지덧널무덤이며, 1924년 일본인에 의해 조사된 매장주체부에서 금제 방울이 확인되어 ‘금령총’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축조 연대는 6세기 초 무렵으로 보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유적들을 대상으로 원형 복원과 유적의 재해석을 위한 발굴조사(2018~2020)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라 금관

신라 금관은 시베리아 샤먼(shaman)이 착용했던 관과 장식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시베리아 유목 민족이 신라로 이주하면서 전해진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신라인들이 북방의 황금문화를 수용하면서 자체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는 2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금관의 기본적인 구조는 관테[帶輪]의 정면과 좌우 측면에 세 개의 맞가지[對生枝] 또는 출(出)자형 장식을 세우고, 뒤쪽에는 좌우로 두 개의 엇가지[互生枝] 또는 나뭇가지모양[樹枝形]이나 사슴뿔모양[鹿角形]으로 불리는 세움장식[立飾]을 하였습니다. 표면에는 곱은옥[曲玉]과 달개[瓔珞]를 달았으며, 관테의 아래쪽 좌우에는 1쌍의 드리개[垂飾]를 매달았습니다. 관테의 양 끝에는 서로 연결하여 묶는 데 필요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금속선이나 못으로 고정한 예가 많은 금동관과는 달리 금관은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금관의 맞가지 형태 세움장식은 산(山)자형 장식이 3단 또는 4단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또 장식된 달개나 곱은옥의 수량과 금판에 베풀어진 무늬도 다른데, 간단한 무늬가 점차 복잡하고 화려해집니다. 특히 금령총 금관에만 곱은옥이 달려 있지 않으며, 엇가지 형태의 세움장식도 역시 1장의 금속판으로 만들지 않고 별도의 가지 장식을 만들어 붙인 것이 특이합니다.
금관은 왕릉뿐만 아니라 왕비, 왕자, 왕족 여성의 무덤에서도 확인되어 금관이 곧 왕관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작 기법이 매우 거칠고 부장 방식이 특이한 점 등을 들어 장송 의례용 부장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라의 황금문화는 6세기 중반 마립간기가 끝나면서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였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고 군사력 증강과 영토 확장이 추진되면서,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과정에서 돌무지덧널무덤 같은 큰 무덤과 각종 황금 장식이 차츰 사라지게 되었으며, 금관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령총 금관의 특징

 금령총 금관, 경주 금령총, 신라 6세기, 높이 27.0cm, <br/> 무게 356.4g, 보물, 본관9663

금령총 금관, 경주 금령총, 신라 6세기, 높이 27.0cm,
무게 356.4g, 보물, 본관9663

금령총 금관은 관테의 가운데 부분에 3개의 맞가지 세움장식을 달고 양 옆에 2개의 엇가지 세움장식을 부착한 형태입니다. 5개의 세움장식은 각각 2개씩의 금못을 이용하여 부착하였습니다. 다른 금관과 비교하면 크기가 다소 작고, 곡옥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관테 가장자리에는 2줄의 연속점무늬와 둥근 볼록 장식이 베풀어져 있습니다. 맞가지 세움장식의 곁가지는 4단으로, 천마총 금관을 포함한 6세기 금관의 일반적 특징입니다. 세움장식 가장자리에도 2줄의 연속점무늬와 둥근 볼록 장식을 새겼으며, 둥근 볼록 장식에는 달개를 달았습니다. 엇가지 세움장식은 전체를 하나의 금판으로 만들지 않고 곁가지를 별도로 만들어 금못으로 접합하였으며 금령총 금관만의 특징입니다. 금관에 표현되어 있는 장식들은 지상과 천상을 잇는 매개체로서 나무와 사슴을 상징화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관 전체에 직경 1.0cm 가량의 원형 달개가 달려 있습니다. 달개에는 가장자리 쪽에 한 개의 구멍(직경 약 1mm)을 뚫어 금사를 꿴 뒤 시계방향으로 5~7회 꼬았습니다. 이어서 꼰 금사를 금관의 둥근 볼록 장식 가운데 마련된 2개의 구멍에 꽂아 안쪽에서 끝을 구부려 고정하였습니다. 달개는 금관으로부터 약 1cm가량 돌출되도록 부착하였는데, 작은 움직임에도 많이 흔들려 화려하게 반짝거립니다.
금관의 모든 가장자리에는 2줄의 연속점무늬가 안쪽에서 바깥 방향으로 타출되어 있습니다. 연속점무늬는 장식을 위한 문양 효과도 있지만 얇은 금판으로 만든 세움장식이 쉽게 꺾여 무너지지 않도록 강화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금관 세부 사진 ①

금관 세부 사진 ①

관테의 높이는 2.8cm이며 전체 길이는 53.0cm인데 연결하면 0.5cm가 겹쳐집니다. 관테의 양 끝에는 2개의 구멍이 확인되며, 보존처리 과정에서 동사(銅絲)를 이용하여 스테이플러 심 모양( ⫍⫎ )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원형 달개는 관테를 31등분으로 나눈 뒤, 16곳에는 위아래 1개씩 한 쌍을 붙이고, 15곳에는 각각 1개씩을 붙여 총 47개를 달았습니다. 관테에는 드리개를 직접 부착할 수 있는 장치나 구멍이 확인되지 않아 금관에 직접 연결하여 매달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맞가지 세움장식은 관테의 가운데에 3개가 세워져 있으며, 곁가지가 4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심 기둥과 곁가지는 일체형으로 제작하였으며, 각각의 위쪽 끝부분은 꽃봉오리모양입니다.

 금관 세부 사진 ②

금관 세부 사진 ②

각각의 세움장식에서 달개는 각 단을 기준으로 중심 기둥에 2개, 좌우 곁가지에 각각 3개, 중심 기둥 상부의 꽃봉오리모양 장식에 4개 등 총 36개가 부착되어 있으며, 달개의 부착 방법은 관테와 같습니다.

 금관 세부 사진 ③

금관 세부 사진 ③

엇가지 세움장식은 맞가지 세움장식의 양 옆으로 각 1개씩 2개 세워져 있습니다. 직선형인 맞가지 세움장식과 달리 곡선형인 중심기둥에 직선형 곁가지 4개를 금못으로 고정하였습니다. 일체형으로 재단하지 않고 중심기둥과 곁가지를 별도로 만들어 부착하는 방식은 금령총 금관에서만 확인됩니다. 엊가지 세움장식 1개에는 중심기둥에 11개, 끝부분 꽃봉오리모양 장식에 4개, 곁가지에 각각 2개씩 총 23개의 달개가 달려 있습니다. 달개의 부착 방법은 관테와 같습니다. 그 밖에 오른쪽 엇가지 세움장식의 중심기둥 가운데 부분에 달개가 결손되어 금사만 남아 있는 곳이 1곳 있습니다. 또 왼쪽 엇가지 세움장식의 맨 위 곁가지에 실수로 잘못 뚫어 사용하지 않은 못 구멍이 한 개 있습니다.


 드리개(좌, 우)

드리개(좌, 우)

드리개는 1쌍(2개)으로, 오른쪽 드리개 길이가 19.5cm, 왼쪽 드리개 길이가 20.0cm입니다. 드리개에 달린 작은 달개의 직경은 4.5mm로 한쪽 면이 오목한 형태입니다.
오른쪽 드리개의 중심 드리개는 마디 6개가 모두 연결된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각 마디는 가는 금사를 촘촘히 돌려 감아 만들었는데, 달개를 매달 곳에는 달개를 꿴 뒤 금사를 2번 꼬아서 돌출되도록 하였습니다. 각 마디마다 4부분에 3방향으로 돌출되도록 달개를 부착하여 마디 1개에는 총 12개의 달개를 매달았습니다. 그 아래에는 중앙에 길이 5.8cm의 버들잎모양[柳葉形] 장식을 달고 바깥으로 펜촉형 장식 3개를 사방으로 균등하게 배치했습니다.
길게 늘어진 중심 드리개 이외에 2개의 작은 드리개가 더 달려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마디 2개에 끝에는 펜촉모양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다른 하나에는 로만체인*에 금제 구슬이 달려 있고 그 아래에 오목한 형태의 원형 장식 2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금 구슬 표면 10곳에 금실로 눈금문양을 새긴 이중의 원형 장식이 부착되어 있으며, 각 원형 장식의 가운데에는 상감기법으로 유리를 장식했습니다. 10곳 중 1곳의 유리 장식이 탈락되어 없습니다. 왼쪽 드리개는 오른쪽 드리개와 거의 동일하며, 끝에 달린 버들잎모양 드리개 가장자리의 좌우 달개 수와, 금제 구슬과 연결된 로만체인에 금사로 된 작은 고리가 달린 데서 차이가 있습니다.

 드리개 세부 사진

드리개 세부 사진

 금관 실측(3D) 전개도

금관 실측(3D) 전개도

* 고대 서양 장신구 제작에 이용되는 체인의 대표적인 형태로 여러 개의 둥근 링을 연속적으로 연결하여 만듦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 저작물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