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말 탄 사람을 그린 벽화편

1913년 남포시 용강군 용강읍 북쪽 언덕에서 돌방무덤을 발굴 조사하던 일본 학자들은 널길 벽에 그려진 인물 행렬도에 속하는 벽화편(壁畫片) 하나를 수습했습니다. 그곳에는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남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2개의 새 깃 모양 장식이 있는 고깔 모양 관모(冠帽)를 쓴 이 인물은 활과 화살통을 양쪽에 매단 채 고삐와 채찍을 쥐고 말을 몰고 있습니다. 깃과 도련, 소매 끝에 다른 천을 덧댄 왼쪽 깃저고리와 오늘날 한복 바지와 비슷한 형태의 통 넓은 바지를 입었습니다. 생김새와 차림새로 보아 전형적인 고구려인의 모습입니다.

 말 탄 사람을 그린 벽화, 쌍영총, 고구려 5세기, 51×44cm, K157

말 탄 사람을 그린 벽화, 쌍영총, 고구려 5세기, 51×44cm, K157

이 벽화편이 발견된 무덤은 앞방과 널방 사이에 두 개의 팔각 돌기둥이 세워져 있어 쌍영총(雙楹塚)이라 불립니다. 쌍영총은 널길, 앞방, 이음길, 널방으로 이루어진 두 방 무덤으로, 돌방의 천장과 벽면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간결하고 섬세한 필치로 벽화를 그렸습니다. 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무덤에 그려진 벽화에는 사신(四神)과 공양 행렬 그리고 주인 부부의 실내 생활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비교적 신분이 높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 인물은 재갈과 고삐를 이용해 달리는 말을 부리며, 말 위에서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장과 발걸이[鐙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띠드리개와 말띠꾸미개로 말을 장식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기마인물(騎馬人物)은 무용총이나 덕흥리 무덤 등 고구려 무덤 벽화의 사냥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 그림들에는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던 고구려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널방에서 본 쌍영총 내부 모습

널방에서 본 쌍영총 내부 모습

새 깃 장식을 한 고구려인

 금동관장식, 고구려, 5세기, 덕수5193

금동 관꾸미개, 고구려 5세기, 덕수5193

사냥 장면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무사들 중에는 쌍영총 벽화편의 인물과 마찬가지로 새 깃 장식의 관모를 쓴 모습이 많습니다. 고구려의 관인(官人)은 절풍(折風)이나 소골(蘇骨)이라 불리는 고깔 모양의 관(冠)에 새 깃 모양 장식 2개를 꽂고 금테나 은테를 섞어 둘렀습니다. 이처럼 고구려 특유의 관모인 조우관(鳥羽冠)에는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려 깃의 재질이나 수를 달리해 꽂았습니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 일대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금동 관 꾸미개는 두껍게 도금된 상태로 대부분이 세움 장식[立飾] 가장자리를 촘촘히 오려 낸 다음 하나씩 꼬아 새의 깃털처럼 표현하고 세잎무늬[三葉文] 등을 맞새김해 장식했습니다. 개마총(鎧馬塚) 개마행렬도(鎧馬行列圖)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 꾸미개 형태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뿐 아니라 감신총(龕神塚)에 등장하는 무사들의 투구 꼭대기에서도 새 깃 장식을 볼 수 있습니다.

개마행렬도 모사도, 개마총(고구려), 본관6511 개마행렬도 모사도, 개마총(고구려), 본관6511
 
 

 새 깃 장식 투구를 쓴 무사 모사도, 감신총(고구려), K191 새 깃 장식 투구를 쓴 무사 모사도, 감신총(고구려),
K191

고구려의 기마 무사

뛰어난 기마 전술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은 고구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성장의 동력이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말갖춤[馬具]은 고대 동아시아의 말갖춤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말갖춤에는 말을 부리기 위한 재갈과 고삐, 말 위에서 몸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안장과 발걸이[鐙子], 말을 장식하기 위한 말방울・말띠드리개・말띠꾸미개 등이 있습니다. 말을 길들여 타는 데 가장 먼저 고안된 도구는 고삐일 것이나, 오늘날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재갈은 말의 입안에 단단한 물질을 넣고 이를 당겨 말의 혀를 자극하는 통제 수단입니다. 따라서 말에 대한 제어력을 높이기 위해 점차 더욱 단단한 재질로 만든 재갈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지지대가 앞뒤로 달려 있는 안장과 양쪽의 발걸이가 제작되어 격렬한 전투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처럼 금속제 재갈과 견고한 재질의 안장, 발걸이를 사용하면서 기병의 전투력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쌍영총 벽화편에 등장하는 말 탄 사람의 발등 위쪽에 선명하게 그려진 발걸이와 말 위의 그를 지지하는 안장은 이 시기 고구려 기병의 수준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이들이 사용한 말갖춤은 무덤과 산성 등에서 실물로도 확인됩니다.

죽음의 공간, 삶을 담은 벽화

우리에게 고구려인의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채 대열(隊列)을 이루어 행진하는 이들, 점무늬 옷을 입고 팔을 뒤로 내저으며 춤추는 사람들, 달리는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무사들, 시중드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반듯이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무덤 주인 등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이처럼 고구려인은 그들 스스로 벽화에 옮긴 삶의 여러 장면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고구려 무덤 벽화는 장의미술(葬儀美術)로서 완성도 높은 예술 작품일 뿐 아니라 고구려인의 삶을 생생히 전하는 중요한 사료(史料)입니다.
벽화가 그려진 고구려 무덤은 옛 수도 일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한 가지 또는 여러 주제가 혼합되는데, 생활 풍속이나 장식무늬, 사신도(四神圖) 등을 주제로 택했습니다. 이 중 생활공간과 인물, 일상의 여러 장면을 묘사한 생활풍속도는 고구려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말해 줍니다. 이들은 돌방의 모서리와 천장 고임 일부에 기둥・도리・보 등 목조(木造) 건물의 뼈대를 그려 무덤 안을 생전(生前)의 주택처럼 꾸미고, 그 안에 주인 부부가 시중 받는 장면, 대행렬(大行列)에 둘러싸여 출행(出行)하는 장면, 사냥하는 장면, 연회를 베풀어 가무(歌舞)와 놀이를 즐기는 장면 등을 그렸습니다. 여기에는 무덤 주인의 풍요로웠던 현세의 삶이 내세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과 죽은 뒤의 세계에서도 죽기 전 세계와 같은 생활이 계속된다는 고구려인들의 관념이 담겨 있습니다. 불교의 천상(天上) 관념을 담은 여러 표현과 도교의 색채가 짙은 제재들에서도 고구려인의 종교, 사상, 나아가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무덤 주인 부부 모사도, 쌍영총(고구려), K76

무덤 주인 부부 모사도, 쌍영총(고구려), K76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와 접촉하며 형성된 고구려 무덤의 벽화 예술은 무덤 내부를 장식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유한성에 직면했던 고구려인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와 관련해 던졌던 의문과 해답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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