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윤두서가 그린 노승도(老僧圖)

윤두서(尹斗緖, 1688~1715)가 그린 <노승도(老僧圖)>는 신선이나 불교의 고승, 나한 등의 인물을 그린 그림[道釋人物畵]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비스듬히 구성한 공간에는 두꺼운 장삼(長衫)을 걸친 노승이 오른손에 긴 지팡이를 짚고, 왼손에는 염주를 쥐고 맨발로 비탈길을 걸어가는 모습과 성근 대나무와 잡초가 간략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노승의 얼굴이나 손과 발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데 비하여 옷 주름과 지팡이는 짙은 먹으로 거칠게 붓질한 선종화풍(禪宗畫風)으로 그렸습니다. 대조적인 필치와 안면의 표정이나 세부 묘사는 마치 어느 노승의 초상화를 보는 듯합니다.
<노승도(老僧圖)>의 바탕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매끄럽고 광택이 있으며 옅은 은회색을 띠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탕 종이는 은가루[銀粉]를 바른 은종이[銀紙]로 알려져 왔습니다.

윤두서, <노승도(老僧圖)>, 조선 후기, 종이에 먹, 전체 149.5×50.4cm, 그림 57.7×37.0cm, 본관262

윤두서, <노승도(老僧圖)>, 조선 후기, 종이에 먹, 전체 149.5×50.4cm, 그림 57.7×37.0cm, 본관262
오른쪽은 적외선 사진입니다. 화면 위에서 아래로 넓은 붓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은종이[銀紙]

옛 그림의 정교하고 세밀한 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바탕 종이와 붓이 중요합니다. 종이가 거칠고 치밀하지 못하면 먹을 쉽게 머금고 번져 세밀한 선의 표현이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예부터 희고 매끄러우면서 치밀한 종이를 좋은 종이로 여겼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의 옛 종이는 섬유가 굵고 길어 종이를 뜨면 표면이 거칠고 보풀이 많습니다. 그래서 매끄럽고 치밀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 한 번 더 표면처리를 하였습니다. 다듬잇돌 위에 젖은 종이를 여러 장 겹쳐놓고 두드리는 도침(搗砧)이 대표적인 표면처리 방법입니다. 이 외에도 종이 표면에 기름, 아교, 전분 또는 금(金), 은(銀), 운모(雲母), 패각(貝殼) 등을 발라 표면을 처리하기도 하였습니다. 윤두서가 활동하였던 18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금지(金紙)와 은지(銀紙)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은(銀)은 다른 금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식이 느리고 안정적이지만 자연 환경 속의 황 등과 반응하여 황색, 다갈색, 흑색으로 쉽게 변합니다. 따라서 바탕 종이에 은을 발라 표면처리를 하였다면 현재 화면이 짙은 회색 등으로 변색되었을 것입니다. <노승도(老僧圖)>의 바탕이 변색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보존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표면의 성분을 분석하고 확대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종이 표면에서 광택을 발하는 다각형으로 조각난 미세한 입자들이 관찰되었습니다. 또한 현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은(Ag)이 검출되지 않고, 칼슘(Ca)과 철(Fe)이 검출되었습니다.

노승도 바탕 종이를 확대하면 광택을 띠며 다각형으로 조각난 미세한 입자들이 관찰됩니다

노승도 바탕 종이를 확대하면 광택을 띠며 다각형으로 조각난 미세한 입자들이 관찰됩니다.

<노승도(老僧圖)>의 바탕 종이

<노승도(老僧圖)>의 바탕 종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은종이가 아니라는 것이 성분 분석과 확대 관찰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사 결과와 같이 칼슘(Ca)과 철(Fe)을 포함하면서 종이의 첨가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패각류(貝殼類)입니다. <노승도(老僧圖)> 바탕에 사용한 패각을 알아보기 위해 홍진주 껍질, 전복 껍질 등 5종류의 패각을 곱게 조각내어 실제 종이에 발라 관찰하였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홍진주 껍질 등 4종은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가루가 되었을 때 다각형으로 조각난 입자를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전복 껍질을 곱게 조각내어 바르면 다각형으로 조각난 입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유구(徐有榘)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종이에 첨가물을 바르는 두 가지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종이에 아교와 명반을 바른 뒤 금가루 등을 체로 걸러서 뿌린 다음 눌러서 평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교와 명반을 바른 뒤 미세한 분을 갈아 아교와 섞어 바르는 것입니다. <노승도(老僧圖)>에 남아 있는 넓은 붓 흔적으로 보아 전복 껍질을 곱게 조각내어 아교와 섞어 종이의 표면에 바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윤두서가 말년을 보냈던 해남 완도 지역은 지금도 전복의 산지입니다. 다른 지역보다 전복 껍질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독특한 종이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유사한 종이로 해남 녹우당 소장의 《윤씨가보(尹氏家寶)》,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적표마도(赤驃馬圖)> 등이 있습니다.

두께별 전복 껍질 도포 전․후 비교
전복 껍질 두께 300 ㎛ 800 ㎛
분쇄 전 분쇄 전 300 ㎛ 분쇄 전 800 ㎛
분쇄 후 분쇄 후 300 ㎛ 분쇄 후 800 ㎛
도포 전 도포 전 300 ㎛ 도포 전 800 ㎛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국립중앙박물관이(가) 창작한 윤두서가 그린 노승도(老僧圖) 저작물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