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청동 북 - 동남아시아 선사 문화의 상징 : 신영호

인도·동남아시아실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2003년도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청동 북 한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된 청동 북은 높이가 35cm이며, 고면(鼓面)의 지름은 45cm 정도입니다. 청동 북의 고면, 즉 울림 판에는 빛을 방출하는 태양 무늬가 약간 볼록하게 도드라지도록 표현되어 있습니다. 태양 무늬를 중심으로 점차 커지는 동심원들을 배치하였으며, 동심원 사이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새와 함께 각종 기하학적 무늬를 시문하였습니다. 하늘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고면 위에 표현한 것입니다. 고신(鼓身) 부분, 즉 몸통에는 4개의 손잡이를 부착하였으며, 표면에는 기하학적 문양을 시문하였습니다. 지상에 일어나는 사건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청동 북은 당시 사람들이 지녔던 세계관을 하나의 기물로 표현한 결과물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전시된 청동 북은 크기가 작아 외형적인 웅장함이 다소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동 북이 갖추어야 할 일반적인 속성들은 모두 갖추고 있어 청동 북의 전형을 느끼기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청동 북은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전역과 운남, 광동, 광서장족자치구 등 중국의 서남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수량도 현재까지 1,500여개를 넘고 있습니다. 청동 북의 광범위한 분포 범위와 남아있는 청동 북의 수량에서 당시 청동 북이 지니고 있던 문화적 위상과 상징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청동 북, 베트남, 기원전 5세기~기원후 1세기, 구3310

청동 북, 베트남, 기원전 5세기~기원후 1세기, 높이 35.0cm, 구3310

청동 북의 구조

청동 북은 고면(鼓面, 울림판), 고신(鼓身, 울림통) 및 고이(鼓耳, 손잡이) 등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고신은 고면과 접합된 지점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며, 고신은 다시 고흉(鼓胸), 고요(鼓腰), 고족(鼓足) 등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각 부분별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청동 북의 각 부분별 명칭

청동 북의 각 부분별 명칭

• 고면(鼓面, 울림판)

청동 북의 고면(울림판)은 원형이며, 고면에 새겨진 문양들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고면의 정중앙에는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광체(光体)가 위치합니다. 광체를 중심으로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광망(光芒)을 시문하며, 광망(芒)의 숫자는 일정하지 않지만 10~12개 정도가 일반적입니다. 광망이 끝나는 부분에는 원형의 테두리를 돌려 마감하여 광망의 영역을 구분합니다. 광체와 광망을 한꺼번에 일컬어 흔히 “태양문(太陽文)”이라 부릅니다. 태양문의 외곽으로는 동심원상으로 중심부에서 고면의 외연 쪽으로 여러 겹의 원을 시문하는데, 이 원형의 가는 선을 가리켜 현(弦)이라 부릅니다. 현은 대체로 세 개 혹은 네 개씩 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과 현 사이에는 각종 문양들을 시문하지만 일부는 빈 공간으로 남겨 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훈권(暈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말에 해무리 또는 달무리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무리’라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면의 바깥쪽 테두리 부분에는 소조(塑造)로 제작한 다양한 모습의 입체 장식물을 부착합니다. 이때 가장 전형적인 장식으로 개구리(혹은 두꺼비)를 사용합니다.

• 고신(鼓身, 울림통)

고신은 청동 북의 몸통 부분에 해당합니다. 몸통은 크게 고흉(鼓胸), 고요(鼓腰) 그리고 고족(鼓足) 등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뉩니다. 고흉은 상부가 고면과 맞닿아 있습니다. 고흉의 아랫부분은 약간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는데, 이 부분을 ‘고요’라고 부르며, 청동 북의 허리부분에 해당합니다. 고요는 보통 상하 양단이 각각 흉부와 족부로 나뉘는 경계가 됩니다. 고요의 아래 부분은 고족이라고 부릅니다. 고족은 보통 상부의 지름이 작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취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고요와 고족과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 고이(鼓耳)

고흉과 고요 사이에는 서로 대칭이 되는 위치에 고이(鼓耳, 손잡이)가 부착되어 있는데, 청동 북을 옮길 때 사용하거나 혹은 청동 북을 공중에 매달 때 고리로 사용합니다. 고이의 단면 모습은 원경(圓徑)이거나 혹은 편경(扁莖)입니다.

청동 북의 기능

처음 청동 북은 아마도 악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느 곳에서는 유력자(有力者)의 위세품(威勢品)이나 권력의 상징물로 활용하고, 다른 곳에서는 종교행사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무덤의 껴묻거리로 활용하고 심지어는 통화의 수단으로까지 이용하기도 합니다. 청동 북의 기능이 다양해진 배경에는 청동 북이 지닌 위상 또는 가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청동 북을 연주하면 그 소리가 흡사 벼락이 떨어질 때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또한 음향도 멀리까지 퍼져나가기 때문에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지역에서는 ‘천둥 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특히 청동 북은 단음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소리로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이 탁월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청동 북은 군무(群舞)의 시작을 알리거나 집회나 축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용도로 연주되었으며, 이러한 사례는 미얀마의 카렌(Karen)지방에서 확인됩니다. 또한 사람들을 일터로 보내거나 중요한 집회를 개최할 때도 청동 북을 연주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동고의 연주 모습 : 묘족

동고의 연주 모습 : 묘족

청동 북의 형식과 편년
• 형식

1902년 오스트리아의 민족지 학자인 헤거(Franz Heger)는 청동 북을 몇 개의 형식으로 분류하였습니다. 헤거는 동남아시아 출토 청동 북을 4개의 형식으로 분류하였는데, 외형, 부피, 무게, 장식 문양, 재료의 화학적 성분과 주물에 사용된 기술적인 측면 등을 종합하여 분류하였다고 합니다. 헤거의 분류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할 만큼 청동 북 연구에 있어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1970년대 이후, 청동 북의 발원지인 베트남 현지 학자들이 청동 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새로운 형식 분류를 시도합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베트남 청동 북 대부분이 'HegerⅠ'유형에 속하고, 또한 대표적인 청동 북이 베트남 북부지역의 “동손(Dong son)”이라는 마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청동 북의 명칭을 ‘동손 드럼’으로 변경하여 부릅니다. 나머지 청동 북의 형식은 크게 A, B, C, D, E 등 5개로 나누어서 구분합니다.

형식명 사례 형식명 사례
Heger Ⅰ 표사진. Heger Ⅰ 형식 사례 Heger Ⅲ 표사진. Heger Ⅲ 형식 사례
Heger Ⅱ 표사진. Heger Ⅱ 형식 사례 Heger Ⅳ 표사진. Heger Ⅳ형식 사례

헤거의 형식 분류

베트남 청동 북 형식 분류

베트남 청동 북 형식 분류

• 편년

청동 북의 편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이견들이 있는데, 주로 베트남과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그 핵심은 청동 북의 외형적 형태가 HegerⅠ 유형에 속하면서 표면의 문양이 없거나 소략한 소위 ‘선 동손 드럼’을 가장 초기의 청동 북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입니다. 중국 학자들은 ‘선 동손 드럼’이 최초의 청동 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베트남 학자들은 표면 문양의 간소화가 복잡한 문양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선 동손 드럼’의 존재를 부정하고 ‘동손 드럼’을 최초의 청동 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양측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체적인 청동 북의 편년 안을 살펴보면, 가장 오래된 청동 북은 동손 시기에 만들어진 ‘동손 드럼’이며, 제작 시기 역시 동손 문화가 시작된 기원전 1,0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B형식이 뒤를 이어 등장하며 순차적으로 C와 D형식이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E형식이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청동 북의 등장 시기가 현재 베트남 민족의 기원과 동일한 시·공간적인 궤적을 가지고 있기에 청동 북이 지닌 문화적 상징성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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