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허재 석관 : 서성호

사람이 죽으면 일정 절차에 따라 유해를 갈무리하고 명복을 기원합니다. 이런 의식절차들을 뭉뚱그려 상장례라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지역과 시대, 계층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상장례의 일부인 유해 갈무리 방식도 그렇습니다. 고려중기 관료 허재(許載, 1144년 사망)의 석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고려 석관들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서 불교식으로 화장한 유골을 갈무리하여 지하에 묻던 일종의 장골용기(藏骨容器)였습니다.

사진. 허재 석관

허재 석관, 고려 1144년, 37.0 x 93.0 x 54.3 cm
불교식 화장과 고려 석관

삼국시대부터 조금씩 행해지던 불교식 화장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오면서 지배층을 중심으로 확대되어갔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화장한 유골을 빻아 산천이나 바닷물에 흩어버리는 산골(散骨)과 화장한 유골을 용기에 넣어 지하의 화장묘(火葬墓)에 안치하는 장골(藏骨)이 병존하였는데, 장골의 경우 유골을 직접 담는 내용기(內容器)와 이 내용기를 수납할 외용기(外容器)가 필요하였습니다. 고려 석관은 대부분 이러한 장골용 외용기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물론 시신을 불태우지 않고 그냥 탈육(脫肉)시킨 후 남는 유골을 수습하여 석관에 넣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존 석관들 중 묘지명과 함께 발견된 사례들에 대한 분석 연구에 따르면, 고려의 석관들은 대부분 불교식 화장의 장골용 외용기임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허재 석관은 현존 석관 중 화장 유골의 외용기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입니다. 이는 석관으로서는 드물게 안쪽에 돌아가며 새긴 묘지명에서 주인공 허재의 화장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고려석관들이 그 주인공을 알 수 없는 데 비해, 묘지명의 지석과 함께 발견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에서도 허재 석관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묘지명이 석관 자체에 품격 있는 서체로 새겨져 있는 데다 석관의 조형성도 뛰어난 보기 드문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석관 조립하기

고려 석관은 장골용 골호를 담은 통일신라시대 석함과 달리, 여러 판석이 맞물려 이루어진 이른바 조립식 석관입니다. 즉 점판암 계통의 판석 6장을 잘 다듬어 짜 맞추면 전후좌우의 사벽(四壁)과 천판(天板, 뚜껑), 지판(地板, 밑판)으로 이루어진 평균 길이 1m 안팎, 폭 45cm 안팎의 직육면체 모양의 석관이 되는 것입니다(이들 석관의 부분 명칭이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자의 용어대로 전후좌우 네 벽 중 좌우의 긴 벽을 이루는 판석은 장벽석(長壁石), 전후의 짧은 벽을 이루는 판석은 단벽석(短壁石)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석관을 조립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홈을 이용하는 것으로, 판석 가장자리에 길게 홈을 파고 여기에 판석을 끼워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즉 지판의 가장 자리 네 모서리에 돌아가며 길게 홈을 파고, 여기에다 장벽석 2개, 단벽석 2개의 긴 모서리를 끼워 세운 후, 그 위에 이들 장, 단벽석의 다른 쪽 긴 모서리들을 끼울 수 있게 긴 홈을 파놓은 천판을 덮는 것입니다. 이 때 장벽석의 양끝 모서리들은 단벽석 좌우에 수직으로 판 홈에 맞추어 끼워 단벽석과 결합합니다.

사진. 허재 석관의 지판(좌). 가장자리를 따라 홈이 파여 있습니다. 오른쪽은 허재 석관의 우측 장벽석으로 돌기부분이 능화형으로 다듬어져 있고, 반대편 구멍 주변도 당초 문양이 베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허재 석관의 지판(좌). 가장자리를 따라 홈이 파여 있습니다. 오른쪽은 허재 석관의 우측 장벽석으로 돌기부분이 능화형으로 다듬어져 있고, 반대편 구멍 주변도 당초 문양이 베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돌기방식인데, 판석에 긴 홈 대신 판석의 짧은 쪽 모서리에 돌기와 구멍을 만들어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구멍 뚫린 돌기를 판석 끝 중간쯤에 만들고, 결합할 상대 판석의 좌우 가장자리에 세로로 뚫어 놓은 구멍에다 이 돌기들을 끼우는 방식 입니다. 이 때 판석의 구멍을 통과하여 삐져나온 판석 돌기의 구멍에 쐐기를 끼워 판석들이 빠지지 않고 결합을 유지하게 합니다. 허재 석관은 다른 석관들과 달리 돌기 부분이나 돌기 반대쪽 끝부분이 각각 아름다운 능화형(菱花形)과 당초문으로 처리되어 있어 아름다운 것이 특징입니다. 석관의 판석은 경우에 따라 양쪽 끝이 모두 돌기가 있거나, 혹은 세로 구멍이 난 것들도 있습니다.

석관에 넣은 유골 그릇

석관이 장골용 외용기라면, 화장 유골을 직접 담아 석관 안에 넣는 내용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또는 도기로 만든 골호와 같은 용도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청자호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실제 유적에서 석관과 함께 발견된 것은 아닙니다. 고려 제17대 임금인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이암(泥巖)제 외함과 청동제 내함도 있는데, 일반인이 아닌 왕의 것인 데다 인골 성분이 일절 검출되지 않고 있어 좀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사진. 골호로 추정되고 있는 청자호(좌, 연세대학교박물관 소장). 도기로 된 뚜껑에는 당초 해동통보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은 인종 장릉에서 출토되었다는 이암제 외함과 청동제 내함.

골호로 추정되고 있는 청자호(좌, 연세대학교박물관 소장). 도기로 된 뚜껑에는 당초 해동통보가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은 인종 장릉에서 출토되었다는 이암제 외함과 청동제 내함.

다만, 석관 출토 경위와 관련한 일부 기록을 근거로 목제 용기가 수납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되기는 합니다. 개풍군 월고리 궁녀동에서 발굴되었다는 무신집권기 대장군 송자청(1198년 사망)의 석관에서 청자잔과 백자병, 청동숫가락, 개원통보 등과 함께 목제 내용기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쇠못들이 나오고, 의종 대의 문신 최윤인(1161년 사망)의 석관에서 용두장식을 한 청동자물쇠, 금대편(金帶片), 은대편(銀帶片)들과 함께 역시 쇠못들이 발견된 것이 그 유력한 근거입니다(최윤인 석관의 경우 금대, 은대가 목궤 형태의 내용기를 장식하고, 청동자물쇠로 이 목궤를 잠갔을 것으로 보는 등 추정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어떻든 석관 안에 청자호나 청동함, 혹은 목궤와 같은 일정한 장골용기가 수납되었을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와 형태의 것이었는지는 이들 장골용기와 공반하는 고려석관의 출토 사례가 확보된 후에나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우주, 고려석관

고려 사람들은 죽은이의 유골을 넣은 석관 안팎에 여러 문양이나 그림을 베풀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려석관의 사벽에는 바깥 면을 돌아가며 사신(四神)이나 십이지신을 새기고, 안쪽 면에는 모란이나 연꽃, 국화 등의 꽃과 화분, 꽃나무 위의 새 등 여러 동식물이나 인공물, 자연풍경 등을 선각하였습니다. 또 천판의 바깥에는 비천(飛天)을 새기되 주로 연꽃이나 당초 문양과 함께 베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판의 안쪽에는 해, 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와 같은 별자리를 선각하였고, 지판에는 안쪽 면에 사격자문(斜格子文)을 새긴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 실명씨 사신문석관의 단벽석 안쪽에 새겨져 있는 꽃나무와 새 그림(좌). 가장자리에는 조립을 위한 홈이 수직으로 패여 있습니다. 오른쪽은 이씨녀 석관의 천판 안쪽에 새겨져 있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해와 달. 천판 가장자리에는 돌아가면서 장벽석을 끼우도록 홈이 파여 있습니다.

실명씨 사신문석관의 단벽석 안쪽에 새겨져 있는 꽃나무와 새 그림(좌). 가장자리에는 조립을 위한 홈이 수직으로 패여 있습니다. 오른쪽은 이씨녀 석관의 천판 안쪽에 새겨져 있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해와 달. 천판 가장자리에는 돌아가면서 장벽석을 끼우도록 홈이 파여 있습니다.

그런데 허재 석관의 경우는 일반적인 석관과 달리 사벽 안쪽에 그림이나 문양을 베풀지 않고 망자인 허재의 묘지명을 새긴 것이 특징적입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는 따로 묘지명을 만들지 않고 석관 벽면에다 이를 새긴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최고 귀족층에서도 그러한 예들이 있고 허재의 경우도 그가 고위 재상으로 은퇴한 것을 감안할 때, 꼭 경제적 이유보다는 석관과 묘지명 조형에 대한 일종의 디자인적 선택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석관 사벽의 사신은 이를 대체로 선각하지만, 경우에 따라 고급스럽게 돋을새김하기도 하며, 때때로 당초, 연꽃, 구름 등의 문양과 함께 새기기도 합니다. 사신 대신 십이지신을 새기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에는 벽면마다 세 개체의 십이지신들을 새기게 됩니다. 즉 뒤쪽 단벽석에 돼지, 쥐, 소, 왼쪽 장벽석에 호랑이, 토끼, 용, 앞쪽 단벽석에 뱀, 말, 양, 그리고 끝으로 오른쪽 장벽석에 원숭이, 닭, 개가 배치되는 것입니다. 십이지신의 모습은 석관에 따라 다른데, 어떤 석관에서는 사람의 몸과 짐승의 얼굴로 표현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몸과 얼굴은 사람이되 짐승 모양의 관을 쓴 사례들도 있습니다. 사신과 함께 새긴 허재 석관의 십이지신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십이지신은 단정한 모습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지만, 매우 소박하거나 우화적으로 묘사된 예도 있습니다.

사진. 실명씨 사신문석관에 새긴 청룡의 부분 확대 사진(좌). 왼쪽 장벽석 바깥면에 돋을새김하였습니다. 같은 석관의 주작(우). 앞쪽 단벽석 바깥면에 돋을새김하였습니다.

실명씨 사신문석관에 새긴 청룡의 부분 확대 사진(좌). 왼쪽 장벽석 바깥면에 돋을새김하였습니다. 같은 석관의 주작(우). 앞쪽 단벽석 바깥면에 돋을새김하였습니다.

고대 이래 사신이나 십이지신을 망자의 무덤에 배치한 것은 이들이 피장자의 사후 생활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려 사람들은 유골을 모신 길이 1m 안팎, 폭 45cm 안팎의 석관을 피장자의 소우주로 여기고, 사신이나 십이지신을 석관 바깥 면에 배치하여 망자의 영혼을 외부로부터 지켜 주려 한 것 같습니다. 유골이 모셔진 석관 안쪽 벽면에는 모란, 연꽃과 같은 꽃들과, 꽃나무 위의 새 등을 새겨서 죽은 이의 안온한 사후세계를 만들어 주려 했을 것입니다.

사진. 사신도(백호)와 십이지신도(원숭이, 닭, 개)가 함께 새겨진 허재 석관의 장벽(좌), 실명씨 사신문석관에 새긴 돼지, 쥐, 소(우), 맨 오른쪽의 돼지는 화가 뭉크의 <비명>에 나오는 인물과 느낌이 왠지 비슷합니다.

사신도(백호)와 십이지신도(원숭이, 닭, 개)가 함께 새겨진 허재 석관의 장벽(좌), 실명씨 사신문석관에 새긴 돼지, 쥐, 소(우), 맨 오른쪽의 돼지는 화가 뭉크의 <비명>에 나오는 인물과 느낌이 왠지 비슷합니다.
석관의 자료적 가치, 그리고 허재

허재 석관을 비롯한 고려 석관들은 고려시대 불교식 상장례의 표현물이면서, 비천이나 사신, 십이지신, 북두칠성 등에서 보듯이 민간신앙과의 구분이 모호해진 도교적 사후관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의 불교에 민간신앙이나 도교적 요소가 많이 녹아 있던 속에서,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 등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았던 고려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십이지신이나 사신을 포함하여 꽃이나 화분, 꽃나무와 새 등 석관에 베풀어진 문양과 그림들은 그 실물자료가 많지 않은 고려 미술사의 연구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습니다. 허재 석관처럼 유려한 서체의 묘지명이 새겨진 경우라면 서예사 연구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또 앞으로 판석 재료의 원산지나 가공 방식 등을 밝힐 수 있다면, 고려시기 석재 수공업이나 자재 유통의 일단이 드러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순서가 뒤바뀐 감이 있지만 허재 석관의 주인공 허재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허재는 여진과의 전쟁터를 누비며 많은 공을 세운 맹장으로서, 국방과 관련한 풍부한 경험으로 국왕 예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신하였습니다. 인종 대에 이르기까지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는, 가까이 지내던 권신 이자겸의 실각으로 한때 좌천되기도 했으나 곧 명예를 회복하고 재상으로서 영예롭게 은퇴하였습니다. 아들과 손자 등으로 관직을 통해 순조롭게 이어간 가계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 명문을 이루게 됩니다. 불교식 화장과 석관을 만들고 여러 문양과 묘지명을 새기는 일 자체가 많은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가족들이 허재를 위해 특히 아름다운 석관을 만들고 여러 품격 있는 문양과 유려한 서체의 묘지명까지 새길 수 있었던 것은 고위 관료로서 순탄하게 마무리했던 허재의 말년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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