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을 이룬 두 폭의 산수화 가운데 오른쪽 그림에서는 소나무를 앞세우고 뒤를 겹겹이 산과 누각으로 경물(景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화면 뒤에는 원산(遠山)을 내세우고 있으며, 누각 주변의 연무와 원산의 한 줄기 폭포,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막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나뭇잎과 꽃봉오리를 통해 계절이 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점경의 인물들은 모두 중국 고사에 나오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한편, 왼쪽 그림에서는 전경의 나무를 배경으로 갓을 쓴 인물, 나귀를 끌고 다리를 건너는 인물과 가옥 속의 인물이 있습니다. 나무들은 생기가 없고 배경에 우뚝 서 있는 설산이 겨울 풍경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은 조선 시대의 산수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요소로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96.8x48.0cm(화면), 구2879, 구2880
그런데 알고 보면 이 그림은 600여 년 전 일본에서 그린 수묵화(水墨畫)입니다. 낙관이 화면 양쪽에 있는데, 인장을 통해 간테이(鑑貞, 15세기 활동)라는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간테이라는 화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17세기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화전서인 『본조화사(本朝畫史)』에 따르면, 일본 나라 현(奈良縣)에 위치한 율종(律宗)의 총본산인 도쇼다이 사(唐招提寺)의 승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인장의 해독 결과만으로 과연 이 그림이 『본조화사』에서 언급하는 도쇼다이 사의 스님과 동일 인물의 작품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그림을 그린 맥락인데, 이러한 그림들은 실제로 조선시대의 전기(前期)에 해당하는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3~1573)라는 매우 한정된 시기에 유행하였고, 그린 화가들도 주로 선종(禪宗) 사찰에서 활동한 승려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무로마치 시대에 수묵 위주로 그린 그림을 가리켜 ‘무로마치 수묵화(室町水墨畫)’라고 부릅니다.
일본의 초기 수묵화는 한문학에 정통한 선종 승려들이 향유한 새로운 경향의 그림
일본미술사학계에서는 현전하는 무로마치 수묵화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시화축(詩畫軸)’이라는 용어를 자주 씁니다. 시화축이란, 수묵 위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해 한 편 이상의 한시(漢詩)를 엮은 회화 형식을 말합니다. 시화축 또한 수묵화와 마찬가지로 한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매우 일반적인 용어처럼 들리지만, 일본에서 시화축은 한시를 읊고 중국 문화를 즐겼던 시회(詩會) 혹은 차회(茶會) 자체가 무로마치 시대 중에서도 오에이 년간(應永年間, 1394-1428)에 성행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새로운 그림 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회를 향유하고 시화축을 주로 감상한 집단이 무로마치 막부의 정치적 후원을 받았던 선종 사찰의 승려들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당시 무로마치 시대의 선승들은 수행자였던 동시에 중국 문화에 통달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중국을 직접 다녀온 사람들도 많았고, 중국 또는 조선의 지식인들과 교우하기 위해 한문학적 소양을 겸비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시문을 만드는 데 열성적이었으며, 문예 모임을 만들어 시회와 같은 사적인 모임을 자주 가졌습니다.
일본 선종 사찰의 '탑두(塔頭)'라는 건축물은 오늘날에는 좌선(坐禪)과 같은 종교 수행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지만, 무로마치 시대 당시에는 선승들이 모여 한시와 한문학을 향유하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탑두의 건축물을 손님을 접대한다는 뜻으로 '객전(客殿)'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공간에서 선승들은 막부의 쇼군(將軍)을 비롯한 정치적 후원자들을 대접하기도 하고, 선승들끼리 친목 모임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문학을 공유한 선승들끼리 다양한 사건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고 시문을 남겼는데, 현실의 풍경이 아니라 청아한 산과 물에 둘러싸인 소박한 초암이나 누각과 같은 건축물을 그렸습니다. 이는 세속에서 벗어난 이상향(理想鄕)의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감상하고 있는 이 수묵산수화 또한 일본의 선승들이 상상한, 세속에서 벗어난 은거의 삶과 같은 한문학의 주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적 이상 세계를 그린 산수화가 시화축의 주된 주제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시화축이 산수화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수묵화로는 화조화와 도석인물화 또한 많이 유행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화조화는 산수화보다 더 이른 시기에 등장하는데, 게이아이(藝愛, 15세기 활동)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연화백로도(蓮花白鷺圖)>는 수묵화조화로 애용된 주제였습니다.
구3351, 구3352
일본의 수묵화는 일본 문화 속의 중국[漢] 문화 요소를 대표하는 그림
수묵화는 중국에서 들여온 새로운 장르의 그림이었고, 이러한 중국 그림을 들여온 것은 중국을 왕래한 선종 사찰의 승려들이었습니다. 선종 불교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막부가 제도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입한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막부에서는 선종과 더불어 중국의 한문학을 포함한 중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무로마치 막부까지 이어져 두 막부 모두 ‘가마쿠라 오산(鎌倉五山)’ 그리고 '교토 오산(京都五山)'이라 하여 선종 사찰을 직제화하기에 이릅니다. 이 때 막부에서 내세운 문화는 일본의 천황가와 귀족층이 선호한 화려한 채색의 에마키(繪卷)나 금벽 장벽화와는 매우 대비되는, 중국의 문인들이 향유한 시화축과 같이 지적인 미감을 강조하는 문화로서, 일본적인 ‘화(和)’와, 중국적인 ‘한(漢)’의 개념을 서로 대비해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이해가 다소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서 ‘화’라는 개념과 대비되는 ‘한’의 개념으로 중국 문물을 바라보고 중시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이 시기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하고 다시 한 번 간테이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쌍폭의 두 그림을 바라봅니다. 이 수묵산수화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화면 한쪽으로 치우친 구도입니다. 이는 ‘변각(邊角) 구도’라 하여 무로마치 수묵화의 특징으로 자주 언급되는 요소입니다. 작품들에서 이러한 변각 구도와 앞서 살펴보았던 중국 풍경의 요소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 또한 무로마치 수묵화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묵화가 주로 시회나 차회에서 걸어두고 감상했던 그림이며, 보통 이 두 폭을 마주해 걸었다고 생각할 때, 이 산수화는 단독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두 폭이 마주 보는 구도를 생각함으로써 시각적 균형을 위해 변각 구도를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부 표현을 살펴보면, ‘하규 양식[夏珪樣]’을 대표하는 도끼로 찍은 듯이 표현한 바위 표면과 꺾임이 심한 소나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규(夏珪, 12세기말~13세기 초 활동)는 남송(南宋, 1127~1279)을 대표하는 궁정화가로 일본에서는 중국 산수화의 '대가'(大家)로 인식되어 그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작품들이 무로마치 쇼군의 보물로 진중히 여겨졌습니다. 하규가 활동하던 당시 중국에는 그 이외의 수많은 화가들이 있었음에도 유독 일본 수묵산수화에 하규의 화풍이 유입되어 유행하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합니다. 이는 일본에서의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보여주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수묵화가 가진 특색이자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