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 전시명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 전시장소

    중근세관 조선2실

  • 전시기간

    2020-06-25~2020-09-13

  •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강민경

    (02-2077-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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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지키고 이어가다>(2020.6.25.~9.13.)를 개최합니다.

이 전시는 70년 전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빠진 문화재를 지키고 문화의 맥을 잇고자 했던 국립박물관을 조명하며, 국난 극복과 평화의 교훈을 공유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1위기에 빠진 우리 문화재에서는 625 전쟁으로 인해 수난을 당했던 문화재들을 소개하고, 서울 점령 이후 928 수복 때까지 국립박물관이 겪은 위기와 피해상황을 살펴봅니다.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되다 19511월 월정사가 소실되면서 불에 녹은 선림원지 동종 등의 유물이 그 날의 참상을 전합니다.

2문화를 지키고 세계에 알리다에서는 195012월 부산으로 피난한 국립박물관이 피난지에서도 한국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벌였던 노력을 조명합니다. 국립박물관의 이전을 승인한 문교부장관 백낙준(白樂濬, 1895-1985)의 허가서를 비롯한 관련 자료들이 선을 보입니다.

또 이번 테마전은 상설전시실의 전시품 중에서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국보 제3), 청자 사자 모양 향로(국보 제60)처럼 625 전쟁 당시 피해를 입거나 국립박물관이 소개疏開시켰던 것을 선정하여 관람객들이 팜플렛을 들고 위치를 찾아볼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70년 전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조상이 남긴 문화재를 지키고 새 문화를 이어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수호하고 가꾼 것은 한국의 문화요, 세계에 내보일 자부심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들의 자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파일 다운로드

   -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테마전 팜플렛
   - [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 붙임 전시품 설명자료



○ 동영상

인트로 <제목>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전시 준비 – 패널, 그래픽 배치하기 전시 준비 – 유물 배치 유물들이 점점 자리를 찾아간다 녹아버린 범종과 김환기의 그림 신라의 토기들 그리고 찬란한 신라의 금관을 전시하기까지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6월 25일부터 9월 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층 조선2실에서 열립니다. 휴관이 끝나면, 우리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요.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전시 인트로 (01:29)

전시소개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합니다. 70년 전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었던 전쟁이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진행된 6‧25 전쟁 이 6‧25 전쟁으로 인해 이 땅의 사람뿐만 아니라 문화재 또한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전쟁만 아니었던들 우리 곁에서 우리의 역사를 말해 줄 문화재가 얼마나 더 많았을까요. 하지만 전쟁의 와중에도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6‧25 전쟁 7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는 그 어렵던 시절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전시입니다. ○위기에 빠진 우리 문화재 전쟁이 터졌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말 없는 문화재에도 전쟁의 위기는 닥쳤습니다. 아니, 오히려 말 없는 문화재였기 때문에 전쟁의 상처를 더 크고 깊게 입었는지도 모릅니다. 1948년 발견된 선림원지 범종입니다. 이 종은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되던 중 1951년 1월오대산의 여러 절이 북한군의 은신처가 되는 것을 막고자 국군과 연합군이 지른 불에 녹아버렸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찰스 슈미트가 철원 인근에서 어떤 스님에게 북한군으로부터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건네받았다는 보살상입니다. 전쟁의 격랑 속에서 이 보살상도 바다를 건너갔다가 1999년에야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요계관방지도입니다. 드문드문 발자국이 찍혀 있습니다. 이 발자국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군홧발 자국입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박물관이 있던 경복궁의 건물에 군인들이 드나들면서 유물들이 상당히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발자국도 그런 과정에서 생기지 않았을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박물관의 위기 전쟁이 터지고 사흘 뒤 서울이 함락당했습니다. 북한은 국립박물관을 접수하고 국립박물관의 문화재와 그 당시 서울에 있던 개인 소장가들의 문화재를 북한으로 가져가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립박물관의 직원들은 최대한 천천히 문화재를 포장하면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굶주림과 협박 속에서도 문화재를 헛되이 뺏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드디어 9월 28일, 서울이 유엔군과 국군에 의해 수복되었습니다. 국립박물관의 문화재들도 북한으로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점령 아래 있던 동안 국립박물관의 문화재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제짝을 잃어버린 국립박물관의 소장품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칼은 해방 이후 16자루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거치면서 15자루가 사라지고 오직 한 자루만이 남아 전합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정부는 경주박물관에 있는 중요문화재 139점을 비밀리에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이 신라시대의 말 탄 사람은 그때 미국으로 갔다가 1957년 최초의 한국 문화재 해외 순회전시에 출품되어 미국인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문화재입니다. 휴전 협정을 맺고 일 년 뒤 국립박물관은<War Damage to Korean Historical Monuments>라는 소책자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6‧25 전쟁 당시 한국의 문화재가 입었던 피해 상황이 흑백 사진으로 여러 장 실려 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시면 불과 7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처참했던 한국 문화재의 피해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문화를 지키고 세계에 알리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이 다시 위태로워지던 1950년 12월 국립박물관은 문화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부산으로 옮기고자 하는 계획에 착수합니다. 초대 국립박물관장 김재원(1909-1990)은 당시 부산 미국공보원(USIS) 원장이었던 유진 I. 크네즈(1916-2010)의 도움을 받아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수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교부 장관의 허가서를 받아 여러 차례에 걸쳐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안전하게 부산으로 가지고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국립박물관은 그 어렵던 피난 시절에도 박물관 본연의 역할인 발굴과 전시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전쟁으로 인해서 쇠약해져 가던 한국의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려는 박물관의 노력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1957년 미국의 8개 도시를 도는 순회 전시 “Masterpieces of Korean Art”가 개최됩니다. 이는 한국이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이처럼 찬란한 문화를 잃지 않고 있었음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였습니다. 이 전시에 출품되었던 문화재들은 대부분 이 땅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사람들이 지켜낸 것들이었습니다. 70년 전 그들이 지켰던 것은 단순히 옛날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지켰던 것은 이 땅의 문화요 세계에 내보일 한국의 자부심이었습니다.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6월 25일부터 9월 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층 조선2실에서 열립니다. 문을 열게 되면, 우리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요. 기다리겠습니다.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지키고 이어가다 전시 소개 (08:29)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The Museum and the War – Protecting Cultural Heritage 70년 전 이 땅은 전쟁터였습니다. 하지만 국립박물관은 한국의 문화재를 지키고 새로운 한국의 문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박물관이 치렀던 또 다른 전쟁을 지금 만나러 가보실까요? Seventy years ago, this land was a battlefield. However,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protected its Korean cultural heritage So that Korean culture could flourish once again. Let's meet here another war the museum had to go through. 위기에 빠진 우리 문화재 Korean Cultural Heritage in Crisis 경복궁 만춘전 Manchunjeon Hall of Gyeongbokgung Palace 남묘 A Southern Shrine Dedicated to Guan Yu 덕수궁 석조전 Seokjojeon Hall of Duksugung Palace 월정사 Woljeongsa Temple 국립박물관 National Museum of Korea 6.25 전쟁 당시의 국립박물관(현재 경복궁 자선당 자리) 전쟁이 터지고 사흘 뒤, 서울이 북한군에 함락되었습니다. 북한은 국립박물관의 소장품과 개인 수집가들의 소장품을 북한으로 옮겨가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립박물관 직원들은 문화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포장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t the time of the Korean War Three days after the Korean War broke out, the capital of Seoul fell to the North Korean army. The North Korea Cabinet tried to confiscate the collections of the National Museum as well as several private collections to bring them to North Korea. However, in an effort to delay and thus thwart the loss of these Korean treasures, museum employees packed up the museum collection as slowly as they possibly could. 홀로 남은 유리구슬 고려 Glass bead Goryeo 개성 인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유리구슬입니다. 박물관이 입수할 당시에는 구슬이 모두 5점이었다고 전하는데, 6‧25 전쟁을 겪으면서 지금은 이 구슬 하나만 외롭게 남았습니다. This glass bead from the Goryeo dynasty is presumed to have been unearthed near Gaeseong. It is said that there were five beads when the museum acquired that, but only one remains after the Korean War. 6.25 전쟁 당시 국립박물관 수장고로 쓰이던 경복궁 협경당 Hyeopgyeongdang Hall in Gyeongbokgung Palace, which was used as for National Museum storage during the Korean War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서울 시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복궁의 일부 건물과 박물관 소장품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북한군은 쫓겨났고 문화재들은 다행히 남을 수 있었습니다.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n military forces successfully made an amphibious landing at the port of Incheon and fierce battles raged across downtown Seoul. Some of the buildings of Gyeongbokgung Palace were destroyed during this fighting and items inside these buildings were severely damaged. Nevertheless, the North Korean army was driven from Seoul and many cultural heritage pieces survived. 1950년 미국으로 건너갔던 옥피리 ⓒ국립경주박물관 Jade Flutes 남쪽으로 피란을 가던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은행의 금괴를 미국으로 보낼 때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의 유물들도 함께 보냈습니다. 이는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립박물관의 유물들을 북한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이때 건너갔던 유물들은 미국 은행의 금고 안에 보관되다가, 1957년 한국문화재 미국 순회 전시에 포함되어 1959년 무사히 귀국하였습니다.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hich was on its way to the south, sent the gold bars of the Bank of Korea to the United States, along with cultural heritage pieces from Gyeongju National Museum. It was a move intended to keep the relics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hich symbolized the legitimacy of the nation, from being taken away by North Korea. The cultural artifacts that went to the United States were kept in the Bank of America safe for a while, but were included in the travelling exhibition Masterpieces of Korean Art. They returned home safely in 1959. 한국의 문화를 지키고 세계에 알리다 Preserving Korean Culture and Introducing it to a Wider World 부산 광복동에 있던 국립박물관 임시청사 내부 평면도 Interior diagram of the temporary museum building in Busan, Gwangbok-dong 피란열차에 문화재를 싣고 부산으로 내려온 국립박물관은 1950년 12월 12일, 부산 광복동 1가 52번지에 있던 경남 관재국管財局 소속 내화耐火 창고 4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그림은 부산 피란 시절 국립박물관이 사용하던 공간의 평면도입니다. 당시 박물관은 유물상자를 활용해 공간을 구획하였고, 경관과 수위를 두고 있었습니다.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ollection was brought to Busan on a train to be placed in a warehouse on December 12, 1950 for safekeeping. This floor plan depicts the space used b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during the evacuation of Busan. At that time, the museum used boxes containing artifacts to divide up the space and security was managed by a police officer and guard. 제1회 현대미술작가초대전 포스터 Poster of “The First Annual Exhibit of Works of Modern Artists” 1953 1953년, 국립박물관이 전쟁으로 부산 일대에 피란을 와 있던 현대미술가들을 초대해 열었던 전시회의 포스터입니다. 이때 이중섭(1916-1956), 김환기(1914-1974) 같은 유명한 화가들이 이 전시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전쟁 중이었음에도, 국립박물관이 단순히 문화재를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현대문화 발전에 기여했음을 보여줍니다. This is a poster of an exhibition held in 1953 b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viting contemporary artists who were in the Busan area due to the war. Famous artists such as Lee Jungseob (1916-1956) and Kim Whanki (1914-1974) participated in the exhibition. Even during the war,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did not simply protect the existing cultural heritage, but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modern culture in Korea. 이조회화전 출품작 설명카드 Labels of art works in “Special Exhibition of Yi dynasty Paintings” 국립박물관은 1953년 6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부산 임시청사에서 조선시대 회화를 주제로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이 설명카드는 당시 국립박물관 전시장에 걸었던 작품 옆에 직접 붙였던 것입니다. 테이프로 벽에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어, 피란 시절 국립박물관의 열악함을 짐작케 합니다. For 10 days, from June 15 to 24, 1953, a special exhibition on Joseon Dynasty paintings was held at the National Museum in Busan. At the time, these labels were placed next to the artwork that hung at the National Museum gallery. Traces of tape attached to the wall remain, which reminds us of the severe constraints placed upon the National Museum during this period of refuge. 국립박물관이 전쟁 당시 발굴했던 유적의 발굴보고서 Excavation of three Silla Tombs: The Ssang-sang Ch’ong, Ma Ch’ong and Tomb No.138 경주 노서리 138호분 발굴 장면 Scene of excavating an Kyeongju ancient tomb No.138 이 보고서는 1953년 6월 국립박물관이 경주 노서동의 고분 3기를 발굴하고 펴낸 것입니다. 이처럼 국립박물관은 부산 피란 중에도 우리 유적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계속 추진하였습니다. This book was published b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June 1953 after excavating three ancient tombs in Noseo-dong, Gyeongju.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continued to investigate and study Korean historical sites even during this period of insecurity. 1957년 미국 순회 전시 당시의 모습(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금관) 1957년 미국 순회 전시 당시의 모습(관람객에게 설명하는 김재원 관장) 1957년, 한국 문화재 최초의 해외 전시 “Masterpieces of Korean Art”가 미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 전시에 출품된 작품 대다수는, 이 나라의 뜻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문화재들이었습니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조상이 남긴 문화재를 지키고 새로운 시대의 문화를 이어나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이 수호하고 가꾼 것은 단순히 옛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문화재이자, 세계에 내보일 한국의 자부심이었습니다. In 1957, four years after the Armistice Agreement, the travelling exhibition Masterpieces of Korean Art was held in eight different cities across the U.S. Most of the objects featured at the exhibition were cultural properties that Koreans had preserved at the risk of their lives. Even under such perilous circumstances, these guardians sustained Korean cultural and enabled later generations to build upon what was saved. What they were protecting and developing was Korean cultural heritage and pride in Korea. 1957년 미국 땅을 밟은 신라 금관 신라, 5세기 경주 서봉총 출토 보물 제339호 Gold Crown Silla, 5th century Treasure No.339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국제사회는 인류가 남긴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무력 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비정부기구 “국제푸른방패”를 설립하여 위험에 빠진 문화재를 구하고자 다방면에 걸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런 노력이 없던 70년 전 옛 문화의 흔적을 지키고 새 문화의 기운을 이으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또 잊지 않고자 합니다. As a result of the two World Wars and the Korean Wa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igned an agreement to protect cultural heritage left by mankind in the event of armed conflict. By establishing a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called the "International Blue Shield", creative efforts were made to save cultural assets in crisis. Seventy years ago, when this kind of effort did not exist to aid South Korea, there were people who protected the old culture and ensure the new culture to come. We want to remember those people and their sacrifice. “다른 것은 어찌되든 우리는 몇 트럭에 달하는 우리 문화재를 살리면 국민에 대한 면목이 선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책임은 두 박물관 진열품을 살피는 것으로 그에 어떠한 실수가 있으면 후대에 죄인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 김재원(1909-1990), 『경복궁야화』 중에서 “Whatever else, we thought we could save face by saving our cultural assets, which amount to a few trucks. My responsibility was to look at the exhibits of the two museums (National Museum of Korea, Duksu Palace Museum), and I had a belief that any mistake in it would be a sinner to future generations.” - In Untold stories of Gyeongbok Palace written by Kim Chewon, first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1952년 부산 국립박물관 청사에 모인 국립박물관 관장과 직원들 The director and staffs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gathered at the Busan temporary National Museum Building in 1952.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 지키고 이어가다” The Museum and the War: Commemorating the 7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2020.6.25.-9.13. 국립중앙박물관 1층 조선2실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 지키고 이어가다 (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