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지난전시 테마전
활자의 나라, 조선
  • 전시명

    활자의 나라, 조선

  • 전시장소

    고려 3실

  • 전시기간

    2016-06-21~2016-11-13

  •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이재정

    (02-2077-9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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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는 82만 여자에 달하는 조선시대 활자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활자들은 대부분 17~20세기 초까지 중앙 관청과 왕실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한 왕조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관리한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 있는 예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특히 50여만 자에 달하는 금속활자는 양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이며, 질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82만자라는 수는 조선시대 중앙 관청과 왕실에서 만든 전체 활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교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던 조선의 왕들은 통치의 근간이 되는 책을 간행하기 위해 수십 차례 활자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활자 전모를 최초로 공개하는 이 전시에서는 세계 최고, 최대의 활자가 담고 있는 이러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활자와 함께 소개되는 활자 보관장들은 활자를 직접 사용하고 책을 찍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주목받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독특한 활자 분류와 보관 방법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습니다. 공식 기록에서는 알 수 없는 이들의 독창적 세계를 만나는 것 역시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활자의 나라, 조선(2016)'에 대한 대체텍스트입니다. [자막]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4년)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1377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금속활자 기술 [나레이션]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금속활자와 인쇄술!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기록유산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조선의 활자!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조선의 활자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한해 300 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비밀스런 공간이 있는데요. 박물관에 전시되는 소장품 유물들을 보관하는 수장고입니다. 소중하고 신성한 유물들을 보관하는 이곳에, 수 백 년을 이어 온 조선의 활자들이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현재 수장고에 보관 중인 조선시대의 활자는 무려 82만 여 자! 활자의 종류 또한 다양합니다. 이 활자들은 대부분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중앙 관청과 왕실에서 사용한 것인데요. 한 왕조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또 관리했던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 있는 예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인터뷰/자막] (소재구/ 前 국립고궁박물관장) 금속활자라는 것은 우리 조상이 발명한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문화재라고 생각됩니다. 책이라는 것은 인문, 사회, 과학 이런 것을 상당히 높은 경지로 올리는 중요한 하나의 물질이었는데 그런 책을 쉽고 빠르게 인쇄해서 보급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문화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나레이션] 82만 여 자라는 엄청난 양의 금속활자가 남아있지만, 이것은 조선시대에 만들고 사용했던 전체 활자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조선의 대표적인 활자를 살펴보면, [자막] 계미자 (태종1403년) [나레이션]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는 태종 때 만들어진 계미자입니다. [자막] 갑인자 (세종1434년) [나레이션] 세종의 갑인자는 우리나라 활자 인쇄술을 고도로 발전시켰으며, 조선 말기까지 여섯 번이나 개량되면서 사용된 대표적인 활자입니다. 그리고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는 정리자를 만들어 직접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수많은 책을 편찬하고 간행하는 일을 진두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자막] 정리자 (정조1796년) [나레이션]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왜 그렇게 많은 활자를 만든 것일까요? [자막] 오륜행실도 정조가 백성들에게 오륜을 가르치기 위해 간행 [나레이션] 조선은 유교 이념과 법전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왕들은 책을 통해 이를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고 자연히 책을 만들 활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죠. [인터뷰/자막] (송의정/ 국립광주박물관장) 책이 많이 제작돼서 배포가 된 데는 사실은 유교 이념을 널리 퍼뜨린다 하는 조선 왕실의 생각도 많이 배경이 됐죠. 왜냐하면 유교라는 것도 지금 우리가 현대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굉장히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기본 이념은 모든 권력의 출발은 민심이고 민심이 곧 천심이기 때문에 왕은 그 천심을 따라야한다는 거고, [자막] 병인양요1866년 [나레이션] 병인양요 당시 《조선원정기》라는 글을 썼던 프랑스 군인 쥐베르는 [자막] 장 앙리 쥐베르(Jean Henri Zuber) <조선원정기> 집필 [나레이션] 조선의 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기록했는데요. 아무리 가난한 집안이라도 집집마다 책이 있고 글 읽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자막]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인들은 조선인들의 집을 보고 놀라했다. 아무리 가난한 집안이라도 집집마다 책이 있고, 글 읽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인터뷰/자막]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유교 이념을 담고 있는 여러 가지 책들을 통치자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 알게 함으로써 교화를 통해서 통치하려는 그런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태종이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를 만든 이후에 조선의 왕들은 다 금속활자를 만들고 이것으로 통치에 필요한 여러 가지 책들을 찍어내는 것을 자신들의 통치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막] 2015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 사무동 [나레이션] 2015년 3월, 박물관의 수장고 안 깊숙이 보관 되어 있던 조선의 유물들을 드디어 만나게 됩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활자 보관 서랍들... 활자를 보관했던 곳이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으면서 손상을 입었고, 그 상태에서 무거운 활자를 계속 보관하면 더 상하게 될 것을 염려해 박물관은 그동안 서랍을 분리해서 별도로 보관해 왔는데요. 《활자의 나라, 조선》 특별 전시회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전시품들에 대한 조사부터 진행하기로 했는데요 그 양이 워낙 방대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작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인터뷰/자막]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일부는 정리가 되어있고 일부는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이걸 꼭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글자별로 부수별로 정리를 한 다음에 이걸 어떤 순서로 보관을 할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규장각에 이 활자를 조선시대에 보관할 당시의 기록인 ‘자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봤더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자전의 순서와 굉장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정리할 때는 이것이 굉장히 생소하고 연구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한자 자전의 체계에 따라서 부수 순, 획수 순으로 분류해서 [나레이션] 보관장의 활자들을 분류하는 일부터 시작됐습니다. 활자들을 마지막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건 조선총독부 시절이었는데요 이를 조선시대의 분류 방식과 비교해보기로 했습니다. 규장각에는 이 활자들을 제작할 당시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보, 즉 활자목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자보에 맞춰보니, 오늘날 통용되는 분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관련 연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오늘날 통용되는 방식으로 활자를 분류하기로 했습니다. 활자 분류가 끝날 즈음,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는데요. 바로 활자를 보관했던 활자장에 대한 조사였습니다. 수 백 년 세월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활자장... 박물관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3개의 활자장이 보관돼 있는데요. 하지만 지금까지 활자장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나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었습니다. 과연 이번 조사에서 우리는 이 활자장에 담긴 새로운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우선 오랜 세월 손길이 닿지 않았던 활자장을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양석중 소목장이 복원작업을 맡기로 했습니다. [자막] 양석중 소목장 [음성] 남 : 훨씬 더 안에 들어갈 게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고 만든 거 같은데요. 이런 쇠목을 보면 또 똑같거든요. / 남 : 이렇게까지... / 여 : 무거울 필요가 없지 않나 / 남 : 네.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 거 같고요. / 여 : 처음부터 이렇게 반만 만든 거죠? / 남 : 그랬던 거 같은데... 아, 원래 이렇게 만들었네요. / 여 : 어떻게 했다고요? / 남 : 원래 이렇게 만든 거예요. 거는 건 얘한테 걸었던 거... [나레이션] 지금의 활자장에서 우리가 확인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6개월 여 간의 복원 작업을 통해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활자장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총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도 했고요. 홍수로 인해 침수된 흔적을 비롯해 모진 세월의 상처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양석중 소목장은 활자장의 원형을 보존 처리하는 방법으로 복원 작업을 계획했습니다. [음성/자막] 그 안에 들어있던 활자가 크기라든가 무게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또 사용상의 편의나 이런 것들이 그때그때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에 보관장의 형태도 달라졌을 거라고 하는 생각 속에서 네 종류가 가진 특징을 원형대로 복원해주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인터뷰/자막] (양석중 소목장) 그래서 무엇이 담겼으며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추정해볼 수 있도록 형태를 복원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주안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레이션] 장인의 손끝에서 조선의 활자장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본연의 모습을 해치지 않는 것이 이번 작업의 목표... 마치 조선의 혼을 되살리듯, 끊어진 세월을 다시 이어주듯, 그렇게 활자장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음성] 너무 많이 썩었어요. 그리고 이게 분명히 저는 홍수 한번 났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리는 확실히 한번 잠긴 적이 있구요. 여기 사이에 끼어있는 돌이 백마사 가루거든요. 작은 알갱이들인데, 그런 돌은 궁궐 마당에나 있어요. [나레이션] 수 백 년이 흘렀음에도 조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한데요. 소목장은 예리한 눈매와 섬세한 손길로,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원형 그대로를 살려내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음성] 이게 유물인데 합성소재 같은 걸 넣으면 제거를 못하잖아요. 이거는 제거가 가능해요, 다. 시간만 걸릴 뿐이지 [인터뷰/자막] (양석중 소목장) 이 활자 보관장은 궁중 가구에서 갖고 있는 다소 화려한, 그런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배제돼 있습니다. 그리고 목재를 사용한 걸 보면, 한꺼번에 다수의 가구를 동일한 도면으로 제작됐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목재를 아주 잘 선택해서, 엄선된 목재로 짜진 보관장도 있고 나중에는 소재가 조금 모자라서 다소 적합하지 않지만 어떨 수 없이 사용했던 것 같은 부분도 존재합니다.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또는 권위를 상징하고 그런 요소보다는 오히려 실용적인, 용도에 충실한 가구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활자장을 복원하는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옛 것 그대로의 본성을 해치지 않은 채로 되살려내는 일이기에 옛 방식을 고수했는데요. 그래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활자장의 복원은 이제, 원래 그곳에 끼워져 있었던 서랍장을 찾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동안 분리해서 보관해왔던 서랍장들을 나무의 재질과 형태, 크기 등 기록에 남아있는 내용과 실물에서 발견된 내용을 조합해서, 진정한 완성체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요. [음성] 이 둘 중에는 이렇게가 더 맞습니다. 여기 밑에 만져보면 까실까실한 게 있거든요. 이게 고정하느라고 박힌 못인데... 사용하던 분들이 자꾸만 이게 변하니까 쐬기를 끼워서 그때그때 조절하지 않으면 안됐던가 봐요 [나레이션] 의지할 수 있는 기록 하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모두가 고민을 거듭하며 작은 실마리를 찾아냈고, 그렇게 하나 둘씩 활자장에 맞는 서랍들을 맞춰갔습니다.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드디어 조선의 활자장들이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활자장 복원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무렵, 《활자의 나라, 조선》 전시회 준비도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기술을 가진 나라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인쇄물로만 그것을 만났을 뿐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 활자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인터뷰/자막]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이번 전시는 82만 자에 달하는 조선시대의 활자를 그 전모를 볼 수 있는 최초의 전시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활자를 사용하고 책을 찍었던 사람들이 활자를 어떻게 분류하고 보관했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될 텐데요. 이런 방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을 수 없는 그 분들만의 아주 독특한 방식입니다. [나레이션]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독특한 활자 분류와 보관 방법을 풀 수 있는 최초의 기회! 그것이 이번 전시회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하나씩 그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 남았습니다. [자막] 실록자 / 정리자 / 한구자 / 한글 목활자 [나레이션] 활자 분류와 보관 방법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을 뜻밖에도 활자장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조선 왕조는 활자들을 종류 별로 1만 자 이상씩 만들었는데요.그래야 웬만한 서적을 간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자주 쓰는 글자의 경우 수십 개에서 수백 개까지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이 많은 글자를 보관하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자막] 정리자장 [나레이션] 정리자를 보관한 장을 보면, 세로로 3개의 구획으로 나눠져 있고, 구획마다 13개의 서랍을 끼우도록 설계돼 있는데요. 11단까지는 서랍이 얕고 맨 아래 두 단은 서랍이 깊습니다. 또 칸막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활자를 직접 사용했던 이들이 자신들에게 편리한 분류방법으로 서랍장을 고안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요. 복잡한 부수 체계를 단순화해서 글자의 형태별로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들어 활자를 보관했던 것입니다. 자주 쓰이는 활자는 깊은 칸막이 서랍에 분류해서 활자장의 아래쪽 서랍에 보관했으며, 많이 쓰이지 않아서 제작수량이 적었던 글자는 자보의 부수배열 방식으로 위쪽 서랍에 넣어두었던 것이죠. 또 하나, 얕은 서랍의 바닥에도 활자를 어떻게 분류해서 보관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남아있었는데요. [음성] 이런 흔적들이 있잖아요. 이렇게 정확하게 칸을 지은 게 아니라 적절하게 구획을 해서 이 부수에 해당하는 글자들을 이렇게 넣어서 사람들이 이렇게... (서랍장 돌리고) 위치를 알고, 찾아가서 보고 아~ 그 글자가 어디쯤 있겠다 해서 찾아서 보고 꺼내서 이제 책을 찍는 사람한테 전달하고 이렇게 했을 것으로 이제 추정하고 있는 거죠. [나레이션] 그런데 정리자장의 서랍 안쪽에서 놀라운 기록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소목장 소응룡과 박은문이 무오년에 이것을 만들었다는 기록이었는데요. [자막] 박은문 소목장 송흥룡 무오년(1858년) [나레이션] 소응룡은 19세기 중반 의궤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소목장으로 무오년은 1858년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관련 내용이 서랍에 자세히 기록돼 있었는데요. [음성] 건륭 을묘 11월... 이게 언제 만들기 시작해서 언제 끝났고, 30여 만자를 만들었고, 주자소에 보관했다는 내용이 쭉 나오고 있어요. 실제로 이걸 남촌 균역청에다가 이 활자 만드는 장소를 했다는 기록까지 나와 있는데. 이런 걸 통해서 이게 정리자를 만든, 넣은 거라는 걸 더욱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거죠. [나레이션] 하지만 기록이 없는 활자장의 경우, 연대를 추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보관 중인 활자장 조사에 연륜연대 측정법을 도입해 보기로 했습니다. [자막] 연륜연대 분석 [인터뷰/자막] (송의정/ 국립광주박물관장) 조선시대 때의 기후변화, 즉 강수량의 변화에 따라서 나이테의 폭이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 비율이 쭉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활자장의 아주 미세한 단면을 커팅을 하면 거기서 활자장에 사용한 나무가 언제쯤 벌채됐는지 알 수 있고. [나레이션] 활자장을 만든 목재에 남아있는 나이테로 제작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인데요. 조사결과 위부인자 활자장의 경우,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이 밝혀졌습니다. [자막] 위부인자(갑인자) [나레이션] 위부인자는 세종 때 만들어진 갑인자의 별칭으로, 총 여섯 차례 개량된 활자가 만들어졌는데요. 제작연도로 추정해 보건데, 네 번째 갑인자인 무신자를 보관했음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로 시도되었던 조선의 활자와 활자장 연구를 통해 우리는 많은 정보와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일왕조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긴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조선왕조가 남긴 위대한 유산! 조선의 권력과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엔 활자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소재구/ 前 국립고궁박물관장) 독서와 책과 인쇄와 활자의 문화를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최대의 문화재라고 생각이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가는 획까지 주물(?)이 되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활자가 나오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이 금속활자를 만드는 데에 굉장히 공을 들였고 이것은 예술품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당대 최고의 문화선진국이 아니면 만들 수 없었던 금속활자. 조선의 활자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의미 있는 문화유산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막] 활자를 분류, 정리하고 전시를 개최하기까지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작 국립중앙박물관

활자의 나라, 조선(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