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불이선란도
  • 등록일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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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불이선란도 수어영상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불이선란도



<자막>

난초는 문인화에 많이 등장하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 즉 사군자의 하나입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자라고 그 향이 깊어 고결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난을 그릴 때 이런 뜻을 담고자 애썼으며, 글씨를 쓰듯 난을 그리려 했습니다.
19세기 대표적인 서화가인 김정희 金正喜(1786-1856)도 묵으로 그린 난초를 많이 그려 20대 때에는 검은 난을 뜻하는 현란(玄蘭)이라는 호를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김정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글씨를 쓰듯, 난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오른쪽 하단에서 뻗어나온 난 한 포기는 바람을 맞서는 듯한 꽃대와 바람에 휘어지는 난잎으로 나뉘어집니다. 김정희는 이 그림 위에 네 차례에 걸쳐 글을 썼는데, 난을 둘러싸고 적힌 글들은 마치 그림의 일부인듯 난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는데, 위 아래 두 개의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글들이 난초 방향으로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렇듯 그림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글에는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 이 그림의 주인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왼쪽 상단의 첫 번째 글을 보시죠. 김정희는 20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우연히 그린 난 그림에서 하늘의 본성을 담아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찾아낸 경지를 석가모니의 제자인 유마거사가 불이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침묵으로 대답했다는 유래를 가진 불이선(不二禪)으로 표현했지요. 그래서 그림 제목이 불이선란(不二禪蘭)입니다.
오른쪽 중간에 적힌 글에는 초서와 예서, 기자의 법으로 글씨를 쓰는 듯이 난초를 그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 뜻을 알고 좋아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왼쪽 아래에 마지막으로 적힌 글에는 김정희가 먹을 갈아주던 시동, 달준이에게 이 그림을 주려 했던 것과 이런 그림이 하나만 있지 둘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전각을 배운 소산 오규일이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결국 빼앗아 가려고 하자 “소산이 그림을 보고 억지로 빼앗아 가려는 것을 보니 우습다.”라고도 적었습니다.
그림에 찍힌 인장은 그린 사람의 인장일 때도 있지만, 소장자의 인장인 경우도 많습니다. 인장을 살펴보면 오규일 이후에도 이 그림은 소당 김석준, 20세기 전반 대표적인 서화수집가이자 정치가인 장택상, 그리고 근대 서화가 손재형에게 전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정희의 글씨는 가로획과 세로획의 차이가 분명하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체는 김정희가 1852년 북청 유배에서 돌아와 과천에서 머물던 시절에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김정희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난초 그림의 경지를 실현한 작품입니다. 그림과 글씨가 모두 훌륭하고, 학문과 예술이 일치하며, 화품(畫品)과 인품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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