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금속활자
  • 등록일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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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금속활자 수어영상

 [듣고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금속활자



<자막>

여기 손톱만한 작은 글자 조각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널리 사용되었던 금속활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금속활자 약 50만 자, 목활자 약 30만 자를 포함한 약 80여만 자에 달하는 활자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한글 금속활자 750여 자와 목활자 1만 3천여 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 제작한 활자는 중국과 일본, 서양에도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특히 금속활자가 이렇게 많이 체계적으로 남아 있는 예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이렇게 많은 활자를 만들었을까요?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세운 나라로, 책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널리 보급하려 애썼습니다. 조선은 다양한 책들을 인쇄하기 위해 고려시대 발명한 금속활자를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활자(活字, Movable type)는 ‘움직이는 글자’라는 단어의 뜻과 같이, 한 번 만들어 두면 필요할 때마다 판에 조립해서 원하는 책을 신속하게 간행하기에 목판보다 한결 편리했습니다. 목판은 한 번 판을 새기면 다른 내용을 인쇄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조선은 유교 경전, 불경, 의서, 조선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금속활자로 간행했습니다.
오늘날 파악된 조선시대 활자 제작 횟수는 금속활자만 해도 30여 회에 이를 정도입니다. 대부분 국가에서 주도해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금속활자는 1434년(세종 16) 갑인년에 만든 갑인자입니다. 활자의 이름은 대개 만들어진 해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계미년에 만들면 계미자, 을해년에 만들면 을해자 같이요. 갑인자는 세종의 명으로 기존 활자를 개량한 것인데, 활자 모양이 반듯해서 조판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수십 장을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갑인자는 조선 전기 서적을 간행하는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글자체가 부드럽고 아름다워 조선시대 내내 똑같은 모양의 활자를 여섯 차례나 다시 만들어 책을 찍을 만큼 조선을 대표하는 금속활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글 금속활자도 만들어졌습니다. <석보상절>, <능엄경언해>같은 불경, <시경언해>와 같은 유교 경전, <오륜행실도>나 임금의 명인 <윤음>과 같이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책들은 한문과 함께 한글 번역문을 인쇄했습니다.

 

가장 많은 활자를 만든 임금은 정조였습니다. 정조는 세손 시절에 임진자 15만 자, 즉위한 이듬해 정유자 15만 자, 1782년(정조 6)에는 한구자 8만여 자, 이어서 생생자 32만자,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만들기 위해 만들었던 정리자 30여만 자, 또 한글 목활자인 오륜행실자 등 정말 많은 활자를 만들었습니다. 언뜻 세어봐도 백만 자가 훨씬 넘지요. 그만큼 정조는 많은 책을 간행하고, 문화부흥에 힘썼던 셈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금속활자는 나라에서 철저하게 보관하고 관리했습니다. 활자의 수량을 적은 책을 만들고 활자마다 책임자를 두어 관리하게 했으며, 활자를 보관한 장은 열쇠로 잠가 관리했습니다. 그만큼 나라의 보물로 여겼던 것이지요. 이처럼,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단순한 인쇄 도구라는 의미를 넘어 조선의 유교 정치를 상징하는 동시에, 세심하고 정교한 글자체를 그대로 담아낸 당대의 예술과 기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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