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록일 2026-09-07
- 조회수857
-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특별전 전시품 <일반시국은 一飯是國恩> 조사 결과 발표
애국지사 박원근의 유묵이 아닌, 박중양의 유묵으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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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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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 대상품: 박원근 유묵 <일반시국은 一飯是國恩> ▸ 조사 목적: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출품작 필자 문제 제기에 따른 학술적·과학적 검증 ▸ 조사 방법: 서예·역사(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의 교차 검증 종합 ▸ 조사 결과: 해당 작품은 애국지사 박원근(朴源根, 1912~1950)의 유묵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이 일본 유학 시절 또 다른 이름‘朴源根’ 을 사용하여 남긴 것으로 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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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2026. 7. 1.~10. 25.)에 전시되었다가 외부 제보로 철수한 유묵 <일반시국은 一飯是國恩>의 필자 문제에 대해 전문가 조사를 진행하고, 해당 작품이 애국지사 박원근(朴源根, 1912~1950)의 유묵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朴重陽, 1874~1959)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작품은 우리 식문화에 대한 다양한 언어 및 문구, 문학적 표현들을 종합적으로 조사·전시하면서 그중 하나로 포함하게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승병장인 영규대사(?~1592)가 승병들을 모집할 때 말씀한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다’라는 문구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이번 전시품에 선정되었다.
박물관은 해당 작품을 당초 애국지사 박원근이 쓴 것으로 소개하였으나, 낙관落款의 ‘박원근’이 박중양의 또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8월 10일 즉시 철수하고 12일 국민 여러분과 유가족께 검증 절차 미흡에 대해 사과하였다. 이후 박물관은 유물의 내력을 다각도로 교차 검증하기 위해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인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분야별 검증을 진행하였고, 이를 종합해 이번 결과를 확정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애국지사 박원근 유가족께 조사 경위와 결과를 설명하고 거듭 사과드릴 예정이며,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시품 및 전시내용에 대한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사 분야 내외부 전문가풀을 확대할 계획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유홍준 관장은 “각 분야의 독립적 검증이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 만큼, 이번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에 대해 미흡했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알고 마음을 다해 관람해 주신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전시품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분야별 주요 검증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서예·고문헌 분야
이 작품은 행서체로 쓰였고 두인과 자호인自號印을 사용하고 있어 서예를 어느 정도 익힌 인물의 것이다. <일반시국은>과 박중양의 필적을 대조해 본 결과, 획 처리 방식에 유사한 특징이 확인되어 박중양의 필적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붙임2-1) 또한 <일반시국은> 두인頭印에 새겨진 ”圭玷尙可磨 言玷不可爲”는 1932년 말 서예가 김태석이 박중양에게 새겨준 인장의 문구와 일치한다. 작품에 사용된 호인 ‘玉東’은 박중양의 호 ‘海岳’과 일치하지 않으나, 여러 개의 호를 병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므로 이 불일치만으로 박중양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이번 조사 과정에서 일본 등 해외 경매 사이트에 박원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서예 작품 여러 점이 확인되었는데, <일반시국은>과 동일한 글씨체와 인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일본인에게 써준 작품도 있었다. <일반시국은>에 쓰인 ‘韓人’이라는 표현은 외국인, 즉 일본인 앞에서 자신의 국적을 밝힐 때 대한제국기 일본 유학생이나 방문자들이 주로 쓰던 말이다. 박원근(1912~1950)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 머문 기록이 없는 반면, 박중양은 대한제국기인 1896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 간 인물로 ‘韓人’이라는 표현을 쓴 시기 및 정황과 맞아떨어진다.
지하조직 활동 등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박원근이 해외에 유통될 만큼 여러 점의 서예 유묵을 남기고 일본인을 위해 휘호했다는 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거리가 있어,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유묵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 근현대사 분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2009)에 따르면 박중양의 이명은 박원근朴源根, 호는 해악海岳이다, 본관은 ‘반남‘ 또는 ’밀양‘으로 알려져 있는데, 『밀양박씨규정공파 족보』(1980)에 ‘重陽‘이라는 이름은 기재되어 있으나 초명이나 자호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박중양의 회고록 『술회述懷』와 『대한제국관원이력서』(1972)에 수록된 일본 유학·러일전쟁 통역관 활동 기록 등이, 일본 측 사찰 기록에 남은 박원근 행적과 일치하는 점은 이들을 동일인으로 판단하게 한다.(붙임2-2) 다시 말해 해당 인물은 일본 유학 시기까지는 박원근, 1903년 귀국 무렵부터는 박중양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중양은 청소년기에 『통감』, 『맹자』 등 한문을 익혔고, 박원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일본 유학 시절에는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휘호를 팔아 경비를 충당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번 전시출품작과 해외 경매 사이트에 유통되는 작품들 역시 이 당시에 남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보존과학 분야
<일반시국은>의 장황은 일본식 문인 표구의 하나인 일문자대표구一文字袋表具 방식이다. 장황은 天·地·柱 모두 종이를 사용했고, 화면 상하 일문자一文字에 사용된 직물은 평직 바탕에 평박을 가로실(위사, 緯絲)로 고정하여 문양을 낸 것으로 근대 일본식 표구에 자주 쓰인 방식이다. 하축下軸은 후에 교체된 것으로 보이나, 장황 자체의 제작 시기는 19세기~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위와 같은 근거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품 <일반시국은>이 애국지사 박원근이 아닌,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절 ‘朴源根’이란 이름으로 남긴 서예 작품일 것이라고 최종 판단하였다.
붙임 조사 대상품 정보 및 분야별 주요 자료
- [보도자료 2026-100] 특별전 전시품 '일반시국은' 조사 결과 발표_최종 자료 (1).hwp(670.0KB) [보도자료 2026-100] 특별전 전시품 '일반시국은' 조사 결과 발표_최종 자료 (1).hwp(670.0KB)내려받기 [보도자료 2026-100] 특별전 전시품 '일반시국은' 조사 결과 발표_최종 자료 (1).hwp(670.0KB)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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