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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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개요
인류가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남북국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통사적 전시 공간입니다.

전시관 규모 3,284.00㎡

전시실 소개

  • 부여·삼한실에서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불러오는 배경이 된 새로운 생산 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생활상을 소개하였다. 이 시기에는 철기를 일상 도구로 널리 사용하였으며,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이 도입되어 굴가마에서 높은 온도에 토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특히 삼한의 생활과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창원 다호리 무덤’에서 나온 통나무 널과 많은 껴묻거리를 전시하고 있다. 이 자료는 중국 역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과 함께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중요하다. 이와 함께 고대국가로의 성장을 촉진했던 중국 중원中原, 오르도스, 왜倭 등 주변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 고조선이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히다가 사라질 무렵, 만주 지방에는 부여와 고구려, 한반도 북부 동해안 지방에는 옥저와 동예, 중남부 지역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삼한이 자리를 잡았다. 부여는 중국과 교류하며 발전하였고, 고구려는 주변 세력과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역량을 강화하여 일찍이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 옥저와 동예는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마한·진한·변한은 백제百濟·신라新羅·가야加耶로 통합되면서 고대국가의 기반을 마련해 나갔다.

전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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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삼한'에 대한 대체 택스트입니다. 부여· 삼한 buyeo kingdom·samhan period 경기 김포 운양동 유적/귀걸이 부여,삼한토기 부여,옥저,동예 토기 경북 경주 탑동 경남 창원 다호리 중부 지역의 마한 토기 호남 지역의 마한 토기 영남 지역의 변,진한 토기 옥저, 동예의 토기 삼한의 허리띠 고리 삼한의 말갖춤 삼한의 장신구 점치는 뼈 오리 모양 토기 경북 경주 탑동 출토 방제경 곰 모양 장신구 삼한의 문자 환경, 연필, 지우개, 공책

부여·삼한

'낙랑군 설치'에 대한 대체텍스트입니다. 낙랑군의 설치 installation of lelang 고조선은 한과의 전쟁에서 1년여에 걸쳐 맞설 만큼 강성한 국가였으나 내부 분열로 인해 기원전 108년 멸망하였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하였다. gojoseon was a powerful state that batteld the han dynasty for almost a year before collapsing in 108BCE, largely as a result of internal conflicts. the han dynasty took control of the former gohoseon territory and installed military outposts, including lelang commandery. 낙랑군의 문화 culture of lelang 시간이 흐르면서 고조선 문화와 북방 문화, 그리고 중국 문화가 결합하여 독특한 낙랑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다가 고구려가 남쪽으로 진출하여 낙랑(313년), 대방군(314년)을 모두 아우르게 되었다. 낙랑군의 중심지 center of lelang commandery 낙랑군의 중심지는 평양설, 요동설, 요서설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행해진 발굴조사 결과와 최근 북한의 발굴 결과 공개에 의해 평양으로 파악하는 설이 학계의 통설로 인정되고있다. different theories have placed the center of lelang commandery in either pyeonyan, yodong, or yoseo, but archaeological evidence gathered since the early 20th century, including excavations in north korea, suggests that pyeongyang was most likely the center. 낙랑 대표 무덤, 석암리 9호 tomb9 at seoham-ri:representative burial of lelang 석암리 9호 무덤은 구덩이 속에 큰 목곽을 만들고 그 속에 다시 목관과 목관을 넣는 형식의 귀틀무던이다. 껴묻거리 중에는 칠기, 청동거울, 장신구 등 중국에서 수입된 문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무덤의 규모와 껴묻거리로 볼때 낙랑의 최고급 분묘로 판단되며, 기원 8년의 명문이 적힌 칠기가 출토되었다. 낙랑 대표 무덤, 석암리 9호 tomb9 at seoham-ri:representative burial of lelang

낙랑군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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