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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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개요
인류가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남북국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통사적 전시 공간입니다.

전시관 규모 3,284.00㎡

전시실 소개

  • 통일신라실에서는 사천왕사四天王寺 <녹유신장벽전綠釉神將甓塼>과 <전傳 보원사普願寺 철불鐵佛> 등 절정에 이른 불교문화재를 전시하였다. 또한 월지月池, 왕경王京 등 당시 수도였던 경주의 주요 유적 출토품과 함께 창녕 말흘리 유적, 울릉도 천부동 무덤, 익산 미륵사 터[彌勒寺址] 등 지방 각지에서 출토된 생활용품도 소개한다. 아울러 주변 국가와 교류하였음을 보여 주는 각종 자기류와 와당 등도 전시하여 통일신라인의 국제적 면모를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 신라는 당唐[618~907]과 연합하여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당을 물리치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이후 698년에 고구려의 옛 땅에 발해渤海[698~926]가 건국되어 원산만 이남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양상으로 변화했다.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융합하고 주변국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여 조화롭고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불국사佛國寺, 석굴암石窟庵,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같은 최고의 걸작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9세기 이후 권력 다툼으로 왕권이 약화되면서 농민이 궁핍해지고 지방 호족이 일어나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타 견훤甄萱[867~936]과 궁예弓裔[?~918]가 각각 후백제[892~936]와 후고구려[태봉泰封, 901~908]를 세워 각축을 벌였다. 세력이 약해진 신라는 935년 고려 왕건王建[877~943, 재위 918~943]에게 투항하여 천년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전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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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숭고한 불국토의 세계'에 대한 대체 텍스트입니다, 석굴암 숭고한 불국토의 세계 seokguram grotto the sublime world of buddhism 석굴암은 위대한 불교 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통일신라 제 35대왕 경덕왕(742-765재위) 때의 서라벌 왕경(지금의 경주) 당시 신라는 불교문화의 최전성기로 그중심에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었다. 석굴암은 서양에서 기원한 돔 천장구조를 응용하여 이상적인 세계를 나타냈다. 화강함의 판석을 하나하나 다듬어 짜 맞춘, 유례가 없는 인공석굴이다. 불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금강역사 불국토를 지키는 사천왕 손에 경전을 든 보살 중생을 구제하는 십일면관음 손에 잔을 든 보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수받은 열명의 제자들 본존울이 세워짐 본존불 주위로 차곡차곡 배열되는 받침돌 나란히 놓은 받침돌 홈에 나비모양의 고정쇠 삽입 받침돌 위로 배열되는 29개 판석과 팔각기둥 전실과 연도의 판석 위에 쌓은 첨차석 주실의 판석 위에 쌓은 이맛돌 팔각기둥을 결구시키는 홍예석 주실의 판석 위에 만든 감실 뒤편에 자리 잡은 광배 본존불을 바라보면 이마의 백호와 광배 중앙이 일치 돔을 고정하기 위해 삼입되는 감잡이돌 감잡이돌이 삼입되며 완성되는 돔 세 부분으로 쪼개진 채 돔 천장에 올려지는 천개석 감실에 안치되는 부조상들 돌과 흙을 덮어 완성 보존을 위해 1960년대에 보호각 설치 production 국립중앙 박물관, 유라시아디지털문화유산연구소, (주)위프코

석굴암, 숭고한 불국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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