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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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개요
북쪽 전시공간은 3차원의 조형물이 빚어내는 입체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불교조각실, 금속공예실, 도자공예실[청자, 분청사기, 백자]로 나누어 700여 점에 이르는 명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규모 2,698.41㎡

전시실 주요소장품 전시실 미리보기[VR]

전시실 소개

  • 도자기는 흙과 불,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예술이다. 특히 ‘자기磁器’의 제작은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내는 자기는 최상의 기술로 완성된 섬세한 예술품이다.
  • 한국에서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무렵이다. 그동안 쌓아온 토기 제작 기술과 중국 월주요越州窯 자기의 영향으로 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현재의 개성)에 가까운 중서부 지역에 있었다. 1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두 지역을 중심으로 청자가 제작되었고, 초기에 비해 제작 기술이 정교해졌다.
  • 고려자기는 11세기 중엽부터 눈에 띄게 발전하여 12세기에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다. 특히 청자는 다양한 무늬로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그릇과 같은 일상용품을 비롯해서 기와나 타일 등 건축자재까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유약이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翡色 청자’의 완성과 도자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연 ‘상감象嵌’ 기법의 개발이다.
  • 고려는 13세기에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나라 안 사정이 매우 어려워졌는데, 이런 상황은 청자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색 청자의 우아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은 점점 사라지고, 청자의 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14세기 후반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남부지방이 황폐해지자 강진과 부안의 장인들 또한 살길을 찾아 내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때문에 자기 생산이 널리 확대되고 자기를 사용하는 계층의 폭이 넓어져 고려 말의 상감 청자는 조선시대 ‘분청사기粉靑沙器’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시 동영상

고려청자

  • '분청사기粉靑沙器’의 뿌리는 고려 말에 제작된 질 낮은 상감청자에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 들어와 독특한 미감을 가진 새로운 도자기로 발전하였다. 분청사기는 그릇 표면에 흰색 화장토를 입히고 어떤 방법으로 무늬를 나타냈는가에 따라 상감象嵌 · 인화印花 · 조화彫花 · 박지剝地 · 철화鐵畵 · 귀얄 ·분장粉粧(덤벙)의 7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각 기법은 저마다 다른 장식 효과와 개성 있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고려청자가 귀족적인 취향과 부드러운 곡선미를 나타냈다면, 분청사기는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표현, 거침없이 시원스러운 조형, 생동감 넘치는 미감을 자아낸다. 분청사기실은 시기별 ·기법별로 전시되어 각각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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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백자와 분청사기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에 걸쳐 약 150년 간 제작된 데 비해 백자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고 조선인의 일상생활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절제와 순수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자는 유교적 이념을 구현한 새 왕조와 사대부층의 사상과 생활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조선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 조선 백자의 역사는 왕실과 중앙 관청용 백자를 제작한 가마인 ‘관요官窯’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관요는 경기도 광주廣州에 설치된 사옹원司饔院(궁중의 음식을 담당한 관청) 소속의 ‘분원分院’을 말하는 것으로, 분원 관요의 설치와 운영에 따라 초기·전기·중기·후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초기는 경기도 광주에 왕실과 중앙관청용 백자 제작을 맡은 관요가 설치되지 않았던 시기로, 전국의 가마에서 최고급 백자를 운반하여 왕실과 중앙관청에서 사용하였다. 전기는 세조 말 예종 초(1467-1468) 분원 관요가 왕실용 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한 때부터 임진왜란 직전까지의 시기다. 중기는 임진왜란 이후 관요가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 정착한 1752년 이전까지이고, 후기는 1752년부터 관요가 민영화되는 1884년까지다.
  • 관요가 민영화된 이후는 왜사기가 밀려들어온 시기로, 조선 백자는 이미 쇠퇴하여 이를 말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백자실은 이러한 시기 구분을 염두에 두고 큰 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시기별 명품들을 선별하여 조선시대 백자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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