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명칭
白磁墓誌, 백자묘지, 平原大君墓誌銘, 평원대군 묘지명
- 국적/시대
한국 - 조선
- 재질
도자기 - 백자
- 분류
사회생활 - 의례생활 - 상장 - 묘지
- 크기
너비 26.8cm, 길이 41cm, 두께 2.2cm
- 소장품번호
신수4333
평원대군(1427~1445)은 천연두로 죽었으며, 묘는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에 있었다. 평원대군은 아들이 없었기에 성종 때 그의 제사를 예종 왕자인 제안대군(齊安大君)으로 하여금 받들게 하였다. 이에 따라 제안대군의 묘 역시 평원대군 묘역에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제안대군 묘지도 함께 입수되었다. 평원대군의 묘지는 번조 과정에서 글씨가 흐려졌기에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맨 앞 판에는 제목이 아닌 정통(正統) 십년 을축 사월 일묘지라는 글씨만을 크게 썼다. 이어지는 첫 판 처음에 제목인 "유명조선국 평원대군 증시(贈諡) 정덕공(靖德公) 묘지명을 적었다. 이어 지은이(집현전 응교 정창손鄭昌孫), 이름(림琳), 자, 호(근행당謹行堂), 평원대군이 당시 국왕의 제7자이고 동궁의 아우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 이하에는 대군(大君)으로의 봉군, 혼인, 졸일(1445년 1월 16일), 장지(경기도 광주 탄동), 명(銘) 등을 순서로 적었다. 맨 밑에는 글을 지은 날로 볼 수 있는 정통(正統) 십년(十年) 사월일 지(誌)를 다시 적었다. 평원대군의 졸기는 『세종실록』 27년 1월 16일에 실려있다.
